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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뉴스 | - 태양절 기념 특집 1. - 세계의 위인 김일성 주석의 탄생과 생애를 회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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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4-09 17:3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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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강서군 청산리농민들과 대화하는 김일성주석


태양절 기념 특집 1. -세계의 위인 김일성 주석의 탄생과 생애를 회고 한다

 


415일은 김일성 주석께서 탄생하신 날이다.                 유럽지역 선군연구소


주석께서는 1912415일 평양 만경대의 가난한 농가에서 조선의 독립운동가 김형직 선생과 어머니 강반석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강탈당하고 모진 억압 속에 살아가던 조선인들의 처참한 생활을 목격한 소년 김성주(김주석 아명)14세 어린나이에 일본의 압제에서 조선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평양을 떠나 아버님과 어머님이 독립운동을 하시는 만주를 걸어서 찾아간다. 이로부터 시작된 항일 독립운동은 참으로 간고한 투쟁을 거처 조선항일혁명군을 창건하였으며 무력으로 일본군을 무찌르는 전설 같은 승리를 수없이 거두어 하늘이 조선인민에게 내리신 장군으로 추앙받기 시작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코레아와 세계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영웅이시다.


(아래의 자료는 북축의 문헌에서 옮긴 관계로 조선식 표기가 있음을 알립니다.)    

 


인민들과 허물없이 어울린 위인

 

조선의 그 어느 유치원, 탁아소에 가보아도 첫눈에 안겨오는 한상의 인상깊은 화폭이 있다.

공원의 소박한 긴의자에 앉아 환하신 웃음을 담고있는 김일성주석의 주위에 어린이들이 오구구 모여 어떤 아이는 그이의 중절모를 척 비껴쓰고 웃음을 짓고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그이의 목을 양팔로 꼭 그러안고 귀속말을 하고있다.


한 나라의 영도자와 어린이들사이의 꾸밈없고 소박하며 혈육의 정이 차넘치는 장면을 형상한 이 미술작품은 그대로 조선에서 수령과 인민들, 아이들사이의 관계가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적화폭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197110월 일본의 도꾜도지사였던 미노베 료기찌가 평양을 다녀간적이 있었다. 공화국의 여기저기를 돌아보는 과정에 그는 변모되여가는 사회주의조선의 모습에서 커다란 감명을 받았는데 한가지만은 이해가 되지 않는것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주석이 공장이건 농촌이건 아무데나 마음대로 다니는것이였다. 한 나라 수도의 최고관직을 가진 지사이기는 하지만 거리에도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하던 그로서는 충분히 가질수 있는 의문이였다. 그래서 주석을 뵙는 기회에 그는 그에 대해 말씀올리였다. 그이는 그에게 인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데 무엇때문에 인민을 무서워하겠는가, 나는 아무데나 다 가도 일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노동자들이 집짓는데도 가고 공장에도 가며 농촌에도 나가 자고 오기도 한다고 말씀하였다.


명백히 그이는 인민의 최고영도자이시였으며 세상이 공인하는 걸출한 정치가였다. 그러나 그이와 인민들사이에는 그 어떤 간격도 없었다.

그이에게 있어서 인민들과 어울려있는 때이상 귀중하고 즐거운 시간이 없었다. 하도 바빠 인민들과 아이들을 찾아가지 못하는것마저도 아쉽게 생각하는 분이여서 자신에게 찾아온 사람들을 나무람하는 일군들을 볼 때마다 서운하고 노여운 마음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이는 자신을 보좌하는 일군들에게 한가지 강조할것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인민들과 허물없이 만나는것을 막지 말아달라, 공장에 가면 노동자들이 나를 둘러싸며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농촌에 가면 농민들과 마주앉아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는것을 막으면 안된다, 인민들은 나를 만나보고싶어하며 나는 인민들을 만나 이야기하고싶다, 나는 인민들을 만나는것을 기쁘게 여기고 인민들은 나를 만나는것을 행복으로 여기고있다, 물론 동무들이 나의 신변안전을 걱정할수 있는데 그것은 공연한 걱정이다, 우리 인민들은 노동당을 진심으로 믿고 받들고있으며 나는 인민들을 굳게 믿고 존경하고있다고 진정을 담아 말씀하였다.

자그마한 간격도 없이 어울리는 수령과 인민, 이것은 끝없이 소탈한 인민의 어버이를 모신 조선인민들에게서만 찾아볼수 있는 특이한 화폭이였다.


부언하면 그이는 직책상의 업무를 보는 시간과 장소가 특별히 정해져있지 않았다.

인민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곧 그이의 업무시간이였고 허물없이 마주하고 앉은 곳이 그이가 당과 국가의 일을 보는 장소였다. 공장과 농촌, 탄광과 광산, 어촌을 비롯한 생산현장, 살림집, 합숙, 회의장, 학교를 비롯한 인민이 있는 모든곳 지어는 길가의 나무밑이나 농촌살림집의 토방, 달리는 열차 같은데서도 그이는 언제나 인민과 허물없이 어울리였다. 농장에 가면 미처 정돈도 하지 못한 탈곡장의 마당에 멍석을 펴고 농민들과 함께 앉거나 풀밭에 그냥 앉아 농사일을 의논하였고 공장에 가서는 구내의 나무밑에서 노동자들과 빙 둘러앉으시여 생산문제를 토론하였다.


그이는 언제인가 김을 매다가 달려온 농민들을 그늘밑에 이끌어 앉히고 《그늘밑에야 밭에서 땀흘리며 일한 농민들이 앉아야지. 난 여기가 좋소.》라고 하며 뙤약볕이 내리쪼이는 자리에 앉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적도 있었다.

주석의 탄생 55돐을 축하해드리려고 평양에 왔던 인도신문 《인디안 타임스》주필이 그이를 만나뵙기 위해 그이가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는 지방으로 내려갔던적이 있었다.


그와 인사를 나눈 주석은 자신은 원래 생일을 잘 쇠지 않는데 이번에도 평양에 있으면 일군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올수 있기때문에 그것도 피할겸 현지지도를 하기 위하여 지방에 내려와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평양에서 나의 생일축하연회에 참가하는것보다 노동자, 농민들속에 있는것이 더 좋습니다.》라고 말씀하였다.


이처럼 인간적인 면을 더 중시하고 평범한 인민들을 허물없이 대해준것으로 하여 그이의 존엄과 권위, 명성은 더욱 높이 떨쳐지고 위인중의 위인으로서의 그이의 숭고한 인간상은 온 세상 인민들에게 더더욱 깊이 새겨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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