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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뉴스 | - 특 집 - 20세기의 위인 김일성 주석님을 회고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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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7-07 09:0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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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최대의 추모의 날에 즈음하여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당과 정부, 군대의 간부들 숭고한 경의 표시


- 특 집 -  20세기의 위인 김일성 주석님을 회고한다 1. (종합) 

 

20세기의 위인 김일성 주석님께서 199478일 서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거 24돐에 즈음하여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8일 0시 당과 정부, 군대의 간부들이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인 김영남동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최룡해동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이며 내각총리인 박봉주동지를 비롯한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우당위원장, 당중앙위원회, 정권기관, , 중앙기관 성원들이 참가하였다.

또한 무력기관 성원들이 함께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립상에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존함을 모신 꽃바구니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의 공동명의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공동명의로 된 꽃바구니들이 진정되였다.

당과 정부, 군대의 간부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립상을 우러러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영생홀들에서 당과 정부, 군대의 간부들은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삼가 인사를 드리였다.

당과 정부, 군대의 간부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천세만세 높이 받들어모시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주체의 사회주의조선의 존엄과 위용을 더욱 빛내여나갈 굳은 결의를 가다듬었다.   로동신문 보도


세월은 흘러 김일성 주석께서 서거하신지 어느 듯  24년이 되었다.

2018년 한(조선)반도는 세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4.27일 남북 정상회담, 6.12 싱가포르 조미정상회담은 한(조선)반도와 세계의 정세를 급변시키고 있다.

이 변화의 시기에 유럽선군연구소는 김일성 주석의 생애와 업적을 회고하여 기고한다.

이 글은 북측의 자료를 중심으로 하였으며 남북의 표현을 함께 혼용하였다.

코레아뉴스 편집실   

 

 - 특집 - 20세기의 위인 김일성 주석님을 회고한다


1.1994년 7월 7일                   유럽지역 선군연구소

20세기 위인중의 위인이신 김일성주석(1912.4.15.-1994.7.8.)께서는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시였다. 199477일 이 하루만 놓고 보아도 그이의 위대한 헌신의 세계를 잘 알 수 있다.

 

역사의 새벽

199477일 새벽 430분 이 시간은 김일성 주석의 아침 산책시간이였다. 하지만 주석의 집무실 창가에는 벌써 오래전 부터 불빛이 흘러 나오고있었다.

그이를 보좌하는 일꾼이 방에 들어섰을 때 주석께서는 책상위에 놓인 부피 두터운 문건을 번지시며 깊은 사색에 잠겨 계시였다. 일꾼은 주저하던 끝에 아침산책시간이 다 되였다고 알려 드리였다. 주석께서는 이 문건을 빨리 완성해야하니 오늘만은 산책시간을 어겨야 할 것 같다고 하시며 또다시 문건에 눈길을 돌리 시였다. 그 문건인즉 반세기가 되여오는 민족분열의 비극을 끝장내고 조국통일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게 될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역사적인 문건이였다.

주석의 가장 큰 소원은 우리 민족에게 통일된 하나의 강토를 안겨 주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조국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안아오게 될 최고위급회담을 어떻게 하면 잘 진행할 것인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시였다. 외세가 몰아오는 핵전쟁의 불구름을 가시고 북과 남이 힘을 합쳐 통일을 이룩할 방도들이 바로 서있는지, 반세기동안 쌓여온 겨레의 숙원이 제대로 반영되여 있는지, 오늘의 세대는 물론 후대들의 행복한 앞날까지 담보되여 있는지, 설정된 문제들에 사상과 이념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접수될 수 있는 최선의 합리적인 해결책이 강구되여 있는지를 일일이 검토하시였다. 자자구구에 담겨진 미세한 의미까지도 깊이 헤아리시여 구체적인 대안까지 밝혀 넣으시였다.

일꾼이 다시 방에 들어섰을 때 그이께서는 마침내 문건의 마지막 페지를 넘기시였다. 펜을 드신 그이께서는 문건에 힘주어 《김일성 1994.7.7.》이라는 력사적인 친필을 남기시였다.

 

헌신의 낮과 밤

199477일은 주석께 있어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더없이 바쁜 시간의 연속이였다. 이날 오전에 주석께서는 장마철이 다가오는 것과 관련하여 큰물피해방지대책과 관련한 사업을 지도하시였다. 오후에는 복잡다단한 국제문제들과 관련한 사업을 보시였고 이어 중유발전소건설과 관련한 사업을 지도 하시였다. 밤에는 또 밤대로 휴식도 없이 사업을 계속하시였다. 그러시느라 때늦은 식사마저 제대로 들지 못하시였다.

 

80고령인 그이께서 너무 무리하시는 것이 걱정되여 한 일꾼이 식사를 하실것을 말씀올렸다. 주석께서는 어쩐지 밥생각이 없다고, 이제 일을 더 하느라면 식사할 생각이 날것이라고 하시며 일손을 놓지 않으시였다.

그 일꾼은 식사도 드시지 못하고 어떻게 집무를 보시겠는 가고 말씀 올리며 그만 쉬실 것을 간청하였다. 하지만 주석께서는 우리가 인민을 위해 할 일이 많은데 일손을 놓으면 안된 다고 하시며 사업을 계속하시였다. 밤은 깊어만 갔으나 그이의 사업이 언제 끝날지 알수 없었다. 문건을 보시다가는 전화를 하시고 또 문건을 보시고…

 

이렇게 김일성주석의 인민을 위한 헌신의 날이 흘러갔다. 199478일새벽 2시 애석하게도 위대한 그이의 심장이 고동을 멈추었다.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는 김일성주석의 영상이 위대한 어버이의 모습으로 영원히 간직 되여 있다.

 

2.세기의 위인

위인의 빛나는 삶은 생을 마친후 더욱 위대해진다는 말이 있다.

199478일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시였다는 비보가 세상에 전하여졌을 당시의 여러 나라 고위인사들의 반향은 그이께서 세계정치계의 대원로로, 위인으로서 얼마나 높은 권위를 지니고계시였는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당시 쿠바 국가리사회 피델 카스트로 루쓰위원장이 보내여 온 조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본식민주의와 미국의 침공을 반대하는 조선인민의 영웅적투쟁에서 현명한 영도력과 확고한 결심, 원칙과 의지를 지니시고 특출한 역할을 수행하시였습니다.

우리는 김일성동지께서 쁠럭불가담운동과 모든 정의의 위업, 자유와 평화, 인민들의 복리를 견결히 옹호하시고 세계사회주의 사상발전에 기여하시였으며 조선반도정세의 안정을 위하여 커다란 노력을 하신데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김일성동지와의 상봉에 대하여 감회깊이 회고하고 있으며 그이께서 우리 혁명과 인민에게 사랑과 존중을 표시해주시고 쿠바인민이 나라의 존엄을 고수하고 침략을 반대하여 기울이고 있는 노력과 의지에 전적인 지지를 보내주신데 대하여 두 나라사이의 경제과학기술협조를 위한 모든 방안들을 지지하여주신데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파키스탄 수상 이였던 베나지르 부토는 보내여 온 조전에서 나는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시였다는 불행한 소식에 접하여 커다란 충격을 받고 슬픔을 금할수 없습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세계무대에서 전례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귀국이 그이의 가장 현명한 영도를 받아야 할 중요한 시기에 서거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 계시지 않는 세계무대는 우리들에게 허전한 감을 주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당시 인도 수상이였던 피. 브이. 나라심하 라오는 이 나라 주재 조선대사관을 조의 방문하여 비통함을 금치못해 눈물을 흘리면서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심으로써 세계는 전설적인 위인을 잃었다, 김일성주석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걸출한 정치가이시며 영도자이시였다, 그이는 인도인민의 흠모를 받고계시는 위대한 수령이시였다고 말하였다.


당시 토고대통령 그나씽 그베 에야데마장군은 자기의 대통령궁전에서 추도식을 진행하고 조의록에 김일성주석께서 민족들간의 친선과 련대성을 위하여 노력하시던 소탈하고 너그러우신 그 정력적인 모습은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있습니다, 이 가슴아픈 순간에 우리는 조선인민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토고인민과 정부와 그리고 나자신의 이름으로 조선인민에게 가장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 합니다 라고 쓰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김일성주석각하는 조선인민뿐 아니라 토고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조선을 방문하여 민족의 위대성은 령토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령의 위대성에 있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참으로 김일성주석각하는 세계적인 위인이시였으며 그이께서 인류사에 쌓아올리신 업적은 영원히 빛날것이다.


포르투갈 이전 대통령이며 원수였던 프란시스꼬 다 꼬스따 고메스는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하고 이런 말을 남기였다.

세상에는 위인들이 많지만 김일성주석과 같은 그런 위인은 없었다, 장구한 인류력사를 돌이켜볼 때 사상가나 군사가로 명망이 높았던 위인들도 많았다, 하지만 사상과 정치, 경제와 문화, 군사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걸출한 그런 위인은 오직 김일성주석 한분밖에 없다, 세계적 위인이신 김일성주석의 서거로 하여 지구가 가벼워졌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 이였던 프랑수아 미테랑은 서방 7개국수뇌자회의 참가자들 앞에서 나는 이 자리에 모인 7개국수뇌자 가운데서 유일하게 김일성주석을 만나뵈온 특전을 지닌 사람이다, 김일성주석은 위대한 국가수반이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후 부터 오늘까지 활동하여 온 위인들중의 한분이시였다고 말하였다.


짐바브웨대통령이였던 로버트 무가베는 이 나라 주재 조선대사관을 조의 방문하고 나와 우리 짐바브웨인민 그리고 아프리카와 전 세계는 위대한 벗을 잃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가 식민지 민족해방투쟁을 벌리던 시기부터 사심없는 물심양면의 원조를 주시였다, 짐바브웨 정부와 인민은 그이께서 우리에게 돌려주신 진실한 원조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의 부강발전과 세계의 평화와 진보를 이룩하는데 불멸의 공적을 남기시였다, 김일성동지는 참으로 위대한 인간이시고 위대한 수령이시며 위대한 어버이이시였다.


당시 시리아대통령이였던 하페즈 알 아싸드는 이 나라 주재 조선대사관을 조의 방문하여 김일겅주석은 나의 가장 가까운 벗이였다, 그이께서는 돌아가시지 않았다, 김일겅주석께서는 조선인민과 세계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생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김일성, 그이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걸출한 영도자, 세기의 위인, 인류의 대성인이시였다.

 

3. 조선에서의 남여평등

올해초 미국의 한 사전편찬업체는 자기 회사에서 편찬한 사전에서 지난해에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가 남여평등권주의이며 이것은 2016년에 비해 70% 늘어난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남여평등에 대한 정확한인식과 요구가 급격히 높아가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

많은 나라들에서 남여평등이 법화되였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뿌리깊이 남아있는것이 바로 남여차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회주의조선에서의 남여평등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고있다.

1945815일 일본의 군사적강점에서 해방되였을 당시 조선에는 남여를 차별하는 봉건적잔재가 우심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1946730일 남여평등권법령이 발포된후 여성들의 지위는 완전히 달라졌다.

오늘 조선여성들은 국가, 경제, 문화, 사회, 정치 등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고있다. 많은 여성들이 최고인민회의(국회)와 각급 주권기관의 대의원으로 선거되여 활약하고있다. , 무력, 정권기관, 사회단체, 경제기관의 책임일꾼으로도 일하고있다.

조선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노동의 권리와 동일한 생활비의 권리를 가지고있다.

오늘의 세계에서 남여차별은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노동보수측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있다. 많은 나라들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중요한 원인들중의 하나로 되고있다. 설사 일자리를 얻었다고 해도 임신을 하게 되면 사직을 권고당하고있다. 노동보수에서의 차별도 심각하다. 올해초 영국BBC방송회사의 중국담당편집장으로 일하던 여성이 같은 급 남성과의 임금격차에 대해 차별이라고 항의하면서 스스로 사임한 사건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자료에 의하면 영국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평균18.4% 적은 임금을, 프랑스에서는 평균 25.7%나 적은 임금을 타고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있으며 특히 아프리카계, 라틴아메리카계여성들은 지어 69%, 58%의 적은 로임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사회생활을 희망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국가가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해주고있으며 남성들과 꼭같은 생활비를 주고있다. 뿐만아니라 노력적위훈을 세운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적극 내세워주고있다. 남여평등권법령이 발포된 때로부터 2016년까지 지난 70년간 공민의 최고영예인 영웅칭호를 수여받은 여성만도 근 500명이나 된다.

조선에서는 어린이를 가진 여성들을 우대하고있다. 충분한 산전산후휴가를 주며 그 기간의 생활비와 식량은 국가가 전적으로 보장해준다. 여러 어린이를 가진 여성들에게는 노동시간을 줄이면서도 옹근 생활비를 보장해주고있다. 주민지구뿐아니라 공장, 기업소들에까지 탁아소와 유치원들이 그쯘하게 꾸려져있고 국가의 부담으로 운영되고있어 여성들이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사회생활을하고 있다.

 

4. 김일성 주석의 영도묘술

김일성주석은 현대정치사에 커다란 업적을 쌓고 뚜렷한 자욱을 남기신 정치대가이시였다. 성공적인 정치가로서의 김일설주석의 정치방식과 영도묘술에 대하여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있다.

 

김일성주석의 정치에서 성공의 비결, 영도의 묘술은 다름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라고 말할수 있다. 사랑과 믿음은 인간사회

를 친밀하고 공고한 유대로 결합시키는 바탕이며 기본요소이다.

 

김일성주석은 생애의 전기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정치를 실시하시였다. 사랑과 믿음으로 일관된 주석의 인생철학은 조국해방

을 위한 항일전쟁의 나날부터 형성공고화 되였다.

 

적수공권으로 제국주의강적이였던 일제와의 혈전에 나서시였던 주석께 처음부터 확고한 승산이 있거나 튼튼한 후원이 약속된것은 아

니였다. 있다면 오직 하나, 자기 겨레에 대한 절대적믿음이였다. 겨레와 동지들에 대한 믿음, 인민이 지닌 무궁한 지혜와 힘에 대한 믿

, 그들이 지닌 애국열에 대한 믿음, 이것이 바로 주석의 유일한 투쟁수단이였다.

 

인간과 동지들에 대한 주석의 뜨거운 사랑과 믿음은 수천수만의 열혈투사들을 키워냈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성업에서 거대한 업적을 

쌓게 하였다.


주석의 사랑과 믿음은 지어 반역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사람이나 적의 앞잡이노릇을 하던 사람들까지도 돌려세우는 진실하고 뜨거운것

이였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7권에는 《족제비사냥군》이라는 표제의 글이 있다.


유격대를 도와 나섰던 족제비사냥군이 일본군의 촉수에 걸려 변절하였다. 적들에게 매수된 그의 거동에서 수상한 기미가 여러번 보였


으나 주석께서는 다른 내색을 않으시고 그를 진심으로 대해주시였다.


사령관을 비롯한 전체 유격대 대원들이 자기를 전적으로 믿고 극진히 대해주는데 감복한 사냥군은 끝내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적의 흉


계를 낱낱이 터놓았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이에 대하여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의 흑심이인간본연의 량심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고 위험을 면할 수 있


었다고 회고하시였다.

 

김일성주석의 사랑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조선전쟁시기(1950-1953)정전문제가 처음 상정되였던 1951년으로부터 실지 정전이 이루어지기까지 2년간의 기간이 경과


한 주되는 리유는 포로송환문제였다.

 

주석께서는 포로송환문제를 조국의 아들들에 대한 사랑과 병사들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보시고 그들을 모두 데려와야 한다는 립장을 


견지하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로고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기적을 창조한 김일성주석의 영도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이밖에도 수다하다. 주석의 인간사랑과 믿음의 


정치는 계선과 한계가 따로 없는 무한대의 광폭정치였다.

 

김일성 주석은 인간을 믿는데서 그 어떤 타산도 하지 않으시였다. 그 누구를 만나시여서도 진실한 태도로 그들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먼저 보여주신 그이이시였다. 모든 사람들을 차별없이 대해주고 진실로 믿어주는 김일성주석의 사랑의 정치에 의해 조선에서는 영도자

와 인민의 혼연일체가 마련되였고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들이 창조되였다.

 

인간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절대적인 믿음, 이것이 바로 김일성 주석의 성공적인 정치의 비결이며 신비한 영도 방식인 것이다.

 

5. 주석의 예지

김일성 주석은 예지를 지닌분이시였다. 그이의 예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있다.

 

포화속에서 그려진 복구건설설계도

19511월 조선전쟁이 한창이던 어느날이였다.

미군의 대폭격에 페허가 된 평양시를 바라보시던 김일성 주석께서는 일꾼들에게 전쟁이 끝나면 평양을 새로 건설해야 하겠는데 생각되는것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꾼들은 너무도 뜻밖이여서 미처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있었다. 주석께서는 전쟁이 승리한 다음에 복구건설을 준비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평양시를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도시로 건설할 구상을 펼쳐주시였다. 며칠후 그이께서는 한 설계가를 최고사령부로 부르시여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를 작성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리고 설계일꾼들이 작성한 설계도를 거듭 보아주시며완성시켜 주시였다.

그후 평양의 모란봉지하극장에서는 평양시를 비롯한 각도 소재지복구건설을 위한 설계전람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19525월 중순에는 내각결정 《도시복구신설준비에 대한 제 대책에 관하여》가 채택되였다. 19536월에는 벽돌공장건설을 추진할데 대한 군사위원회명령이 하달되였다. 수도녹화를 위한 나무모생산기지도 이때 벌써 마련되였다. 이 모든것은 주석께서 승리한 내일의 복구건설을 위해 취해주신 대책들이였다.

 

승용차가 멈춰선 자리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김일성주석께서 어느 한 령을 넘고계실 때였다.

차창밖을 내다보시던 그이께서는 차를 멈추게 하시고 길옆 비탈밭에 들어서시였다. 수행한 일군들은 영문도 모르고 그이를 따라나섰다. 그이께서는 밭에 심은 옥수수이삭들의 껍질을 벗기고 길이와 둘레를 뽐으로 재여보기도 하시고 무게도 가늠해 보시였다. 그제서야 일군들은 그 밭의 옥수수가 류별나게 잘 여물고 탐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그이께서 농사가 잘된 것이 기쁘시여차를 세우셨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주석께서는 자갈섞인 비탈밭의 흙한줌을 손에 들고 기뻐하시며 여기에 린회석이 매장되여 있는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였다. 순간 일군들은 깜짝 놀랐다. 린회석 탐사사업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이렇다할 성과가 없어 다른 나라에서 사들여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던 것이다. 주석께서는 비탈밭에 옥수수가 류달리 잘 된것은 바로 린성분이 있기때문이라고 하시며 여기를 탐사해보아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탐사결과 그 주변일대가 몽땅 린회석 매장지 라는것이 확증되였다. 후날 승용차가 멈춰섰던 자리에는 큰 린회석광산이 일떠섰다.

 

20여년전에 내다보신 이전 쏘련의 운명

196410월 흐루시초브가 이전 쏘련당과 국가의 지도부에서 제거되였을 때이다. 조선의 당 및 정부대표단이 10월혁명 47돐행사에 참가하게 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이 대표단에 특별임무를 주시였다. 쏘련의 새 지도부에 질문서를 제기하고 대답을 받아오는 것이였다. 질문서는 쏘련이 미제국주의를 반대하겠는가 안하겠는가,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을 지지하겠는가 안하겠는가,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하겠는가 안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5개항목의 질문들을 담고있었다.

얼마후 대표단이 돌아와 질문서에 대한 쏘련지도부의 입장을 주석께 보고드렸다. 그에 의하면 쏘련지도부는 질문서에 대해 회피하다 못해 변명까지 했다는 것이였다. 이것은 쏘련의 새 지도부가 수정주의노선을 버리지 않을것이며 대국주의적 자세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있었다.

그후 주석께서는 어느한 중요회의에서 쏘련에 대한 환상을 절대로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쏘련이 사회민주주의적 개량주의에 굴러떨어지게 될것이라고 언명하시였다.

그이의 예언대로 이전 쏘련은 사회민주주의적 개량주의의 산물인 개혁, 개편놀음을 벌리다가 종당에는 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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