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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129] 한미정상회담 전후 미국 태도에서 주목되는 점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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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6-02 11:5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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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129] 한미정상회담 전후 미국 태도에서 주목되는 점①

이 형 구 : 자주시보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한미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을 잘 대접했고 한국 군인에게 백신을 제공하기로 한 점, 한국이 개발할 수 있는 미사일의 사거리와 탄두 중량을 제한했던 미사일 지침을 종료하기로 한 점 등이 성과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국민은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 번영, 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나라의 자주, 자결을 실현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버려야 한다.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하는 것이 미국과의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다. 만약,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의 대결을 멈추고 평화를 실현하기로 결정했다면 한미공동성명에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며 북한과 경제협력, 사회문화적 교류를 해나가겠다는 내용이 담겼어야 한다.

 

그러나 한미공동성명에는 ▲북한 인권 개선 ▲연합방위태세 향상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이는 한미 당국이 계속 북한을 적대하는 정책을 쓰기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남북관계, 북미관계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우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시사점이란 바로 미 제국주의가 붕괴, 몰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1. 북한에 대한 저자세가 눈에 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선 미국이 북한에 저자세를 보인 게 눈에 띄었다.

 

(1) 북핵 비핵화를 한반도 비핵화로

 

먼저, 한미공동성명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적대정책인 CVID,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았다.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바이든 정부에 CVID 정책을 펴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5월 13일엔 미국 상원의원들이, 5월 19일엔 하원의원들이 각각 한미동맹 기념 결의안을 발표했는데 이 결의안엔 북한의 CVID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한미공동성명엔 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가 들어갔다. 

 

또, 한미공동성명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가 쓰였다. 북한 비핵화는 북한의 핵포기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표현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보다 더 많은 의미를 포괄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미국이 북한을 핵위협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그래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쓴 건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한도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을 골라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와 같은 의미인데 단지 용어를 통일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5월 26일 “미국 바이든 신행정부 출범 이후 초기에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비핵화’를 혼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 계기로 그러한 양측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만한 용어를 통일했다는 의미가 있다”라는 것이다. 

 

정의용 장관의 설명은 궤변이다. 한국과 미국이 모두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 비핵화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그냥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면 된다. 뜻이 명확한 북한 비핵화라는 말을 버리고 왜 보다 의미가 포괄적인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쓰겠는가.

 

포괄적인 표현은 생각 차이가 있는 사이에서 쓴다. 예컨대 북한과 미국은 2018년 싱가포르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했지만,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이 서로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구체화하려고 시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에 넘기고 핵프로그램 신고 및 사찰, 모든 핵 인프라 제거, 핵 과학자 및 기술자의 상업적 활동 제한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게 미국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에는 미국의 핵위협을 없애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북한은 2018년 12월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란)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 제거라는 표현을 고집하고 미국은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고집했다면, 북한과 미국은 정상회담에서 어떤 합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가 함께 동의할 수 있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앞으로 북한과 미국 앞엔 이 한반도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며 북미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 이견을 좁혀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그런데 한미관계는 북미관계와 다르다.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지만, 한국과 미국은 생각이 같다. 한국도 미국처럼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 비핵화’의 의미로 사용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18일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실현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라며 북한 비핵화라고 표현했다.

 

그러면 한국과 미국이 모두 북한 비핵화에 합의하는데 왜 공동성명에선 한반도 비핵화라고 썼을까?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 오히려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한미 당국자들의 국어/영어 작문 실력에 문제가 있는 건지…. 혹시 실수나 잘못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수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한미 당국이 작문 실력이 부족한 것도, 실수도 아닐 것이다. 정의용 장관의 설명도 엉터리다. 한미 당국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단순히 용어를 통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라고 쓰고 싶었지만 북한이 반발이 두려워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순화해서 이야기한 것이다. 

 

(2) 만남 간청

 

미국이 북한에 저자세를 보이는 건 북한이 대놓고 무시하는데도 계속 만나 달라고 간청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미국은 올해 초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바 있다. 그런데 북한은 3월 17일 “미국의 시간벌이 놀음에 응부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거부했다. 심지어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미국의 접촉 시도를 무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재차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5월 5일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을 설명하겠다며 접촉을 시도했지만, 북한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끈질긴 구애는 한미공동성명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국은 한미공동성명에서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 있”다거나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한미정상회담 자리를 빌려서 또다시 북한에 대화를 제안한 것이다.

 

(3)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

 

또한 미국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미국의 NBC 방송에 따르면 2월 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고위 참모 회의에서는 북한을 자극하지 말자는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을 각 정부 부처에 전달했다. 한 당국자는 “풍파를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 후 미 법무부가 북한을 ‘범죄조직’으로 지칭하는 사건이 있었다. 북한의 해커 3명이 사이버 공격과 금융범죄를 일으켰다면서 “북한 정권은 국기를 가진 범죄조직이 됐다”, “국가 자원을 동원해 수억 달러를 훔친다”라고 북한을 비난한 것이다. 

 

그러자 백악관 고위 참모들은 “단어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북한을 도발할 수 있다”라며 법무부를 질책했다. 애초 바이든 대통령은 자기 정권에선 법무부가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그런 자신의 약속을 어겨가면서 법무부를 제지한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라는 기조에 맞게 3월 16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바이든 정부를 비난했을 때에도 저자세를 보였다. 김여정 부부장이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깔보는 태도로 비난했는데도 미국은 “북한에서 나온 발언에 직접 언급이나 답변할 것이 없다”라며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한미정상회담 오찬 장면

 

▲미일정상회담 오찬 장면

 

 

2.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을 정중히 잘 대접해줬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에서 잘 대접받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할 나위 없는 대접을 받았다”라고 했다.

 

한미정상회담에선 단독회담, 소인수 회담, 확대회담이 진행됐다. 애초 정상회담은 1시간 동안 진행될 계획이었지만 예정 시간을 넘겨 2시간 51분 동안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원형 탁자에 앉아 오찬과 함께 단독회담을 진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크랩 케이크(게살을 주재료로 한 미국의 해산물 요리)를 대접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식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 오찬은 미일정상회담과 비교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오찬을 할 땐 2m 정도 되는 긴 탁자에 앉아 멀찍이 떨어져서 오찬을 진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날 땐 마스크를 벗고 만났지만 스가 총리를 만날 땐 마스크 두 장을 겹쳐서 썼다.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전 참전용사 명예훈장 수여식에 함께 참석한 것도 화제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해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고의 순간, 최고의 회담”이라고 평했다.

 

이런 대접은 트럼프 때와도 다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을 별로 존중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2019년 4월 한미정상회담을 보자.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회담을 할 시간에 갑자기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 기자회견에서 예정된 시간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단독회담은 진행되지 못했고 곧바로 확대회담으로 넘어갔다. 이때 기자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한 질문은 골프 대회에서 누가 우승할 것 같냐는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모욕하기 위해서 사전에 기획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2018년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단독회담 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하자 “통역은 필요 없다. 왜냐하면 예전에 들어봤던 내용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당히 무례하게 대한 것이다.

 

이렇듯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 때나 미일정상회담과 비교해도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을 정중히 잘 대접한 듯하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을 잘 대접한 이유는 한국이 미국에 44조 원 규모의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리가 있는 분석이긴 하다. 이런 분석이 나오는 걸 보고 있노라면 미국이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누가 투자하겠다고 하면 버선발로 뛰쳐나가 극진히 대접해야 할 만큼 미국이 궁색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계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걸 이런 데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돈을 투자했다는 게 잘 대접받은 주요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 2017년 6월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도 5년 동안 총 약 40조 원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바 있다. 

 

그렇다면 바이든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을 잘 대접한 건 무엇 때문일까?

 

(1) 바이든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다?

 

앞서서 미국이 북한에 저자세를 보인다는 걸 살펴봤다. 미국이 북한에 저자세를 보여야 하는 상황이 문재인 대통령을 잘 대접한 것과 연관성이 있는 건 아닐까?

 

미국은 북한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대단히 초조해한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5월 27일 “북한이 탄도미사일 역량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라며 “북한은 미 본토를 타격하려고 하는 야욕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증가하는 군사력에 대응하면서도 북한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프랭크 켄달 미 공군장관 지명자는 5월 25일 “(북한은) 위성통신과 위치추적, 항법 등을 목표로 한 전파방해를 통해 미국의 우주 역량에 일정 수준의 위협을 가할 역량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미국은 북한이 미 본토를 공격할 야심에 불타 핵무력 역량을 계속 강화하고 있고 전파공격까지 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미국이 피해망상증을 앓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피해망상이란 어떤 사람이 자기를 괴롭히고 고통과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증상이다. 피해망상증이 일으킨 유명한 사건이 있다. 1988년에 MBC 뉴스데스크 도중 한 사람이 난입해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이라고 외치는 방송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 사람은 생방송 난입 사건 외에도 자기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는 걸 경찰이 은폐하고 있다며 수차례 알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미국의 행태가 이 피해망상증과 비슷하다. 미국은 북한이 언젠간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믿고 공포에 질려있다. 밥 우드워드가 쓴 책 ‘격노’를 보면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장관 재임 시 북한이 언제 미사일을 발사할지 몰라 군복을 입은 채로 잠을 잤다고 한다. 

 

미국이 피해망상증을 앓고 있다는 관점으로 보면 미국의 행보가 이해된다. 미국이 왜 허구한 날 북한이 공격할 거라며 난리를 피우는지, 왜 수모를 당하면서도 저자세를 보이며 끊임없이 북한에 대화를 간청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북한 문제를 심각하고 절박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을 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라는 북한만이 아니다. 인도,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 등등 많다. 미국은 이런 나라에선 위협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적대적인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미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사거리 15,000km로 알려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41이나 사거리가 11,000km인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쥐랑-2A를 가지고 있다. 상하이에서 캘리포니아까지의 거리가 9,300km가 채 안 되니, 중국은 미 본토를 자유자재로 공격할 능력을 갖췄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차세대 ICBM인 RS-28 사르맛 시험발사를 앞두고 있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18,000km나 된다. 또 사거리 10,000km인 SLBM RSM-56 불라바도 가지고 있다. 이 밖에도 러시아에는 미국 본토를 타격할 무기가 부지기수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와 군사 대결을 벌이기도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미 본토를 공격할지 몰라 위기의식을 느낀다는 식으로 말한 적은 없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군사 갈등은 대만, 남중국해, 우크라이나 같은 지역적인 갈등으로 그친다. 

 

그런데 북한과의 갈등은 다르다. 미국이 걱정하는 건 한반도나 동북아에서의 군사 충돌이 아니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본토를 공격당할 수 있다고 여긴다. 미국이 본토를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대하는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만약, 북한과의 군사갈등을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지역적인 부분으로 줄일 수 있다면 미국으로선 걱정을 한결 덜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막는 방법은 무엇이 있겠는가.

 

첫째는 미국이 북한을 압도하는 군사력이 있으면 된다. 그러면 북한이 뭘 하든 족족 제압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이 ICBM과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에는 북한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이 피해망상에 빠질 만큼 위협을 느끼는 걸 보면, 자기 힘으로 북한을 제압할 수 없는 듯 보인다.

 

둘째, 미국이 프랑스나 영국에게 핵공격을 당할까 봐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북한과의 관계를 좋게 발전시키면 된다. 프랑스나 영국처럼 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중국이나 러시아 정도의 관계만 쌓아도 된다. 

 

미국을 상대로 싸우면 북한도 피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싸워 결판을 보겠다고 할 정도로 북미관계가 적대적이다. 적대관계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북한이 굳이 피해를 감수해가면서까지 미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

 

관계를 발전시키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수교를 맺으면 된다.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충돌을 겪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수교를 단절한 채 살아가진 않는다. 자유 왕래도 하며 교류도 한다. 

 

미국은 북한과도 그렇게 지내면 된다. 꼭 북한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미국은 유독 북한만큼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완전히 전복하려고 한다. 한국전쟁도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회피하며 전쟁상태를 끝내지 않고 있다.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도 철저히 차단한다. 이렇게 철두철미 북한을 적대하니 미국이 북한에게 언제 공격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관계가 악화한 것이다.

 

북미관계를 이 정도로 악화한 건 누구인가. 북한은 미국을 향해 끊임없이 수교를 맺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제재 해제하고 경제, 사회문화 교류를 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면서 적대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건 미국이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을 증오하게 됐다. 김여정 부부장의 전언에 따르면 2019년 6월 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나 ‘미국이 우리에게 강요해온 고통이 미국을 반대하는 증오로 변했으며 우리는 그 증오를 가지고’ 우리식대로 살아나갈 것임을 천명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미국을 제압하고 압도하려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또한 8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겠다고 말했다. 리병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3월 26일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미국 본토에서 제압할 수 있는 당당한 자위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라며 “가장 철저하고 압도적인 군사력을 키워나갈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북한이 미국을 압도하고 제압하려 드는 상황은 사실상 미국이 만든 것과 다름없다. 그래놓고 스스로 불안해하는 꼴이다. 이런 위기를 완화하려면 미국이 북한을 적대하는 걸 중단하면 된다. 한미연합훈련부터 중단하고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등 관계를 개선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한미정상회담에서 보듯 미국은 변함없이 북한을 적대한다. 그러면 미국은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펴면, 부메랑처럼 자기에게 돌아온다.

 

셋째,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계속 유지하면 그나마 상황은 안정된다. 대화가 이어지면 북한이 미 본토를 공격할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방책을 쓴 게 바로 트럼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틈만 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라는 걸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심은 내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제재를 유지하고 있고 북한과 전쟁을 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전쟁을 막았다며 자랑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에 자꾸 대화를 요청하는 것도 바로 트럼프처럼 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북한에서 받아들여야 진도를 나가볼 텐데, 그럴 기미가 없다. 그러니 이 작전도 실패다.

 

넷째, 미국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중국을 이용했다. 

 

중국은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의 최대교역국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을 촉구해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12월 “중국이 북한 문제에 있어 우리를 돕지 않는다면 내가 항상 하고 싶다고 말해왔던 일들을 정말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중국이 북한 압박에 동참하면 경제전쟁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다. 

 

중국은 이런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제이슨 바틀렛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원은 “중국은 처음부터 항상 북한에 대한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미국과의 협상카드로 사용했다”라며 그 사례로 2019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꼽았다.

 

당시 미국은 중국 화웨이를 공격하고 있었고 중국에선 홍콩사태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이때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에 진지하게 임할 수 있도록 중국이 그 고유한 지렛대를 사용하기를 기대한다”라며 중국에 손을 내밀게 되었다. 이로서 중국은 미중대결에서 주도권을 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바이든 정부도 북한을 압박하는 데서 중국의 도움을 받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중국에 무엇인가를 부탁할 상황이 아니다. 

 

미국은 한미공동성명에서도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를 언급하고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언급했다. 항행의 자유는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반중 군사작전이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대만과의 외교를 단절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대만에 미국 대사를 파견하거나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이 반중국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에 북한 압박을 도와달라며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없다. 미국이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미국의 중국 압박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미국이 중국의 도움을 받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섯째, 미국이 일본과 국힘당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 미국 입장에선 자신을 대신해 친미세력인 일본과 국힘당을 앞장에 내세우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엔 문제가 있다. 미국이 일본과 국힘당의 행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4월 미국과 일본은 정상회담을 가졌다. 스가 총리는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에 대해 CVID를 이루자는 데 합의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나중에 발표된 미일공동성명에는 CVID란 표현이 빠졌다. 스가 총리가 호언장담하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정황을 보면 일본은 미국에 CVID를 하자고 요구했고 미국은 그런 일본의 말을 적당히 맞장구쳐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정말로 일본의 CVID 요구를 들어줄 순 없었다. 미국 입장으로선 CVID 같은 대북강경책을 펴달라는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북한과의 강대강 충돌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과의 강대강 충돌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애초에 미국이 북한과 강경대결을 할 자신이 있었다면 북한에 대화를 간청하는 등 저자세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미일공동성명에는 CVID가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일본이 하자는 대로 할 수가 없었다.

 

국힘당도 대북강경책 일변도인 사람들이다. 이런 국힘당을 내세웠다가 북한과 충돌이라도 빚는 날에는 역시 미국이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국힘당 관련해선 최근 이상한 일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5당 대표를 모아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기현 국힘당 원내대표의 팔을 툭툭 쳤고 이에 김기현 원내대표가 발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사건의 전말을 “(김기현 원내대표가) 계속 트럼프와 바이든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얼굴은 웃지만 뒤로는 많은 것을 잇속을 챙기는 사람이라고 연이어서 이야기를 하더라”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속된 말로 까는 데 동조할 수도 없고, 제1야당 대표가 얘기하는데 외면할 수도 없으니 난처해하다가 어깨를 툭 건드리면서 그만하라는 제스처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현 원내대표의 해명도 비슷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티타임 때 미국에서 굉장히 예우를 잘해주더라고 하기에, 바이든이 원래 상대방 띄워놓고 뒤로 빼간다고 했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왼손으로 내 오른팔을 툭툭 쳤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의아한 점은 김기현 원내대표의 언행이다. 김기현 원내대표가 바이든 대통령을 앞뒤가 다른 사람이라는 식으로 비하한 게 사실인 것 같다. 친미사대주의가 골수에 박힌 적폐세력인 국힘당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미국을 비난한다는 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이상한 일이다. 김기현 원내대표가 대체 왜 그랬을까?

 

정확한 내막을 알 순 없지만 추측이 가는 건 있다. 최근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7박 9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황교안이 미국에 무엇인가를 요청했던 게 아닐까? 아마도 CVID를 해야 한다거나 대북전단금지법 폐지를 논의해달라는 등의 요구사항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황교안의 요청에 알겠다고 선뜻 수락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뚜껑을 열어보니 정작 정상회담에서는 국힘당의 요구사항들이 언급되지 않았다. 국힘당 입장에선 바이든을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그래서 국힘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화가 나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김기현 원내대표가 “바이든이 원래 상대방을 띄워놓고 뒤로 빼간다”라는 말을 한 것이 아닐까?

 

이런 걸 보면, 미국은 국힘당이 하자는 대로 CVID 같은 걸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야말로 CVID를 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인 상황으로 내몰린 것 같다.

 

그럼 바이든에게 남은 마지막 방법이 뭔가. 그게 여섯째 방안, 바로 문재인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만나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을 내세워 대화를 재개해보려 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을 만나 대화를 잘 해서 북미대화도 열게 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 않도록 만들어 보라고 시키는 것이다. 이게 미국이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하게 남은 방법이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도 현재 남북대화를 재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썩 믿음이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내세울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 밖에 없다. 중국이라면 이런 역할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은 지금 중국에 손을 벌릴 만한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바이든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잘 대접해준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북한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 초미의 관심사는 없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중요 의제도 바로 북한 문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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