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의 아들 우리 로수희 의장님~[김광수 박사 추도사] 로수희 의장님의 영전에 부쳐 김광수 > 코레아뉴스

본문 바로가기
코레아뉴스

남코레아뉴스 | 조국통일의 아들 우리 로수희 의장님~[김광수 박사 추도사] 로수희 의장님의 영전에 부쳐 김광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11-07 23:14 댓글0건

본문


'조국통일의 아들' 우리 로수희 의장님!"


[김 광 수 박사 추도사]  로수희  의장님의  영전에 부쳐



"'<자주연합> 강화’, '반 트럼프만의 투쟁이 아닌 반제·반미 투쟁’, '조국 통일에 대한 열망’”

 

선생님들, 동지들, 후배님들!

 

오늘 우리는 자주통일의 그 한길에서 단 한 번도 당신의 삶을 이탈하지 않은 한 충직한 통일 운동가이자 혁명가이신 노수희 의장님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추도의 시간을 가져 의장님의 삶에서 무엇을 총화하고, 추도할 것인가?

 

묻고, 답하려 합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부고에 우리의 심장 고동은 잠깐 멈췄지만, 기나긴 한생을 이 땅 식민 조국에서 단 한시도, 아니 단 일각도 자주통일에 대한 생각과 투쟁을 멈추신 적 없는 우리 의장님이시기에

 

자주통일 투사로서의 로수희,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던 혁명가로서의 로수희,

범민련 마지막 전사로서의 로수희,

조국의 대지와 민중의 견결한 아들로서의 로수희,

다정한 우리 모두의 벗 로수희,

 

영전 앞에 우리 모두의 마음을 붙들어 놓습니다.

 

기억 방식을 수놓습니다.

 

첫째, 의장님은 그 누구보다도 조국 통일운동의 구심체 범민련을 사랑하셨고, 범민련 그 자체였습니다.

 

의장님 생에 범민련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삶 자체가 범민련이었습니다. 약력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빈민 운동에서 시작해 영면하는 그날까지 오직 조국 통일 그 한길만을 걸으셨고, 범민련에 대한 사랑과 걱정은 ‘정말’ 지독했습니다. 당신의 삶은 그렇게 마감됐습니다. 영면 12일 전 저와 밤샘 얘기를 하면서도 마지막 당부의 말씀은 범민련 후신인 <자주연합> 걱정뿐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진로와 전망에 대한 고민뿐이었고, 당부뿐이었습니다.

 

로수희 전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약력

 

1944년  전북 군산 출생

 

1963년  전북 이리 남성고등학교 졸업

 

1964년  중앙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 입학

 

1968년  중앙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 중퇴

 

1980년  세운상가 근처에서 노점상 시작

 

1987년  도시노점상연합 부회장 역임

 

1988년  전국노점상연합 수석 부회장 역임

 

199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 준비위원회 가입  

 

1991년  송파투쟁으로 구속

 

(~97년) 민주주의민족통일서울연합 공동 의장

 

           전국빈민협의회 공동 대표

 

(~94년) 전국노점상연합 의장

 

1992년  (~95년) 전국빈민연합 부의장

 

1994년  (~98년) 범민련 서울연합 부의장,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역임

 

1996년  범민족대회 사건으로 구속(2심 집행유예)

 

1998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의장 권한대행

 

1999년  (~04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공동 의장

 

2000년  (~05년) 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

 

2001년    6.15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통일연대 공동대표

 

2005년    6.15공동선언실천 서울본부 공동대표, 서울진보연대 공동대표

 

2006년  (~19년) 범민련 서울연합 의장,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계승연대) 이사 역임

 

2011년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직무대행

 

2012년  (2월23일~7월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100일 맞아 조의 방북 조의 방북 건으로 구속(4년)

 

2016년  (7월 4일) 만기 출소 

 

2019년  (~24년)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2022년  (~25년) 자주통일만세투쟁본부 활동

 

2025년  (~현) 자주연합 명예회원,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고문, 계승연대 이사

 

2025년  11월 06일 오전7시51분 급성심장마비로 운명(향년 82세)

 

고지식함도, 우공이산도 이런 우공이산이 없었습니다. 80성상 자주통일 노선만이 당신의 철칙이었고, 그 길에서 오직 당신의 투쟁 일대기만 수놓아 오셨습니다. 그 어떤 샛길은 없었고, 오직 자주통일의 범민련 노선만 있었습니다.

 

로수희가 범민련이었고, 범민련이 로수희였습니다.

 

범민련을 떠난 의장님을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이렇게도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생애와 업적, 일대기는 오직 범민련 안에서만 성립되었습니다. 간직하고 품은 변혁적 디엔에이(DNA)는 오직 자주통일의 범민련뿐이었습니다.

 

둘째, 의장님의 제1전선과 참호는 언제나 자주통일운동이었고, 그래서 그 어떤 풍파와 시류에도 흔들리지 않은 자주 통일운동의 큰 버팀목이었습니다.

 

그 모두가 '광풍’ 같던 국가보안법이 무서워 범민련을 회피할 때도 의장님은 앞선 약력에서 보았듯 범민련을 지켜내셨고, 자주통일운동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변혁운동을 빈민운동(민주노점상전국연합)에서 시작해 기·승·전 자주통일운동이었습니다. 자주통일이 갖는 변혁적 의미를 알고서부터는 의장님은 오직 그 한길, 통일의 영마루를 안아오기 위한 그 한길뿐이었습니다. 코로나와 범민련 해산도 당신의 그런 신념과 의지는 꺾을 수 없었고, <자주통일만세투쟁본부> 등에서 활동한 것만 봐도 이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자주통일 투쟁만이 ‘당신을 당신답게’ 하는 삶의 의미였고, 당신 삶의 정답이셨습니다.

 

자주통일 외에는 그 어떤 좌고우면도 없었습니다.

 

셋째, 의장님은 마지막 가는 그 순간까지 <자주연합>을 걱정하셨고, <자주연합>이 제 궤도로 운행되길 바라셨습니다.

 

회고적 정의를 해도 이는 매우 분명합니다. 의장님의 영면으로부터 12일 전 10월 25일 의장님은 저와 만난 마지막 자리까지 당신의 화두가 '<자주연합> 강화’였습니다. 작금의 투쟁을 '개인’ 트럼프에 초점을 맞춘 '반 트럼프 투쟁만이 아닌, 제국주의 미국을 반대한다는 뜻에서의 반제·반미 투쟁’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조국과 역사 앞에 죄인 되지 말자며 당신 앞에 놓여진 필생의 염원 '조국통일에 대한 열망’도 포효해 내셨습니다.

 

이 모두를 <자주연합>과 관련해 말씀하셨고, '사라진 통일’로 인해 당신의 삶이 부정당하고 싶지 않으셨고, 당신 삶의 평생 염원인 그 '통일’을 위해 당신이 평생 바쳐온 범민련 후신 조직 <자주연합>을 그렇게 올곧게 세우고 싶어 하셨습니다.

 

'사실상’ 마지막 유언은 그렇게 작성되었고, 바로 그 말씀을 전하기 위해 그 노구를 이끌고 일사천리 대전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저와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지샜습니다.

 

아, 로수희 의장님이시여!

 

한없이 '힘 없는’, 아니 너무나 작고 왜소하여 의장님의 그 큰뜻을 다 담아내고 실현해 나가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이 서생 '김광수’를 찾아와 그렇게까지 부탁하셨습니까?

 

<범민련>이 <자주연합>이고, <자주연합>이 <범민련>임을 그렇게 강조하고 싶었습니까?

 

<자주연합>이 본래의 자주통일운동 조직으로 되돌아가길 그렇게 바랐습니까?

 

지구가 태양을 돌듯 <자주연합>이 자주통일의 제 궤도를 돌고 돌아 자주통일의 든든한 기관차가 되고, 마침내는 조국통일의 영마루를 안아오는 최후승리자, 그런 <자주연합>을 보고 싶었습니까?

 

의장님의 '준엄한’ 꾸짖음, '분명한’ 당부는 그러하셨습니다.

 

넷째, 의장님은 위 '첫째’, '둘째’, '셋째’로부터 그 누구보다도 견결한 통일운동가, 자주투사, 원칙 있는 혁명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연과 사연이 쌓여 의장님과의 인연은 모두 달라도, 비례해 의장님을 기억하는 내용과 방식이 모두 달라도 부정할 수 없는 단 한 가지는 매우 분명합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다 똑같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늘 포기하지 않고 자주통일의 그 한길에서 분투했던 사람,

 

누구보다도 늘 학습을 첫째가는 의무로 생각했던 사람,

 

또 있습니다. 늘 현장에서 이탈하지 않고 현장을 지킨 사람,

 

또 있습니다. 늘 영생하는 삶으로의 청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주통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었던 사람,

 

그래서 한순간을 살아도 자주통일의 그 한길에서 생을 마치고 싶어 했던 사람,

 

그래서 앞에서는 후배들을 '따뜻이’ 격려하며 품어 안고 뒤에서는 당신도 이미 선배이지만 당신보다 '더 높은’ 선배님들을 살뜰히 보살핀 사람,

 

분명 그러한 주체형의 혁명가였습니다.

 

모든 인생의 갈피마다는 '자주통일’을 수놓았고, 자국 자국에는 아래와 같은 불멸의 위훈을 수놓았습니다.

 

“당신의 삶은 자주통일의 그 한길에 바쳐진 너무나도 '순결하고 고결한’ 조국 통일운동의 혁명가였고, 연대와 세대를 잇는 빛나는 생애였다.”

 

해서 불러봅니다. 의장님, 의장님, 우리 의장님.

 

너무나도 보고 싶은 우리 의장님.

 

의장님의 심장은 비록 2025년 11월 6일 오전 7시 51분에 그 고동을 멈추었으나 자주통일 운동사는 도저히 지워질 수 없는, 아니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그 불멸의 업적, '조국통일’ 발자취를 혁명적으로 계승, 영원히 영생시키며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심장 속에 '깊이’ 새겨들을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고 로수희 의장님이시여!

 

평생 그토록 이루고 싶어 했던 필생의 염원, 목표는 이제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남은 생을 가진 우리가 반드시 이뤄낼테니,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의 대지와 민중의 품에서 편히 쉬십시오.

 

'조국 통일의 아들' 로수희 영전에 삼가 바칩니다.

 

2025년 11월 8일 

당신과 참 좋은 인연을 맺었던 ‘영원한’ 벗 김광수

<더 통일> 저자, 정치학 박사, 사)부산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페이지  |   코레아뉴스  |   성명서  |   통일정세  |   세계뉴스  |   기고

Copyright ⓒ 2014-2025 조국통일의 아들 우리 로수희 의장님~[김광수 박사 추도사] 로수희 의장님의 영전에 부쳐 김광수 > 코레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