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에 부여된 역할과 과제

가. 개괄

올해 2021년 상반기 한반도정세와 남북관계는 <미국과 남한이 합동군사훈련을 강행하고, 이에 대해 북한이 강력한 대응을 예고하고 있는 것>으로 상징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체제붕괴를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군사적, 경제적 압박 강화 방향’을 분명히 하면서, ‘북의 비핵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고 천명하고 있다. 대화와 협상을 폐기하고 대결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거듭된 접촉제의를 언론용, 시간벌기용에 불과하다며 모두 거부했으며, 미국이 ‘대북적대시정책’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어떤 대화나 협상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 대북제재의 틀 속 갇혀 남북정상합의를 이행하지 않아온 남한정부는 한미합동군사훈련 실시를 비롯해 정상합의를 위반하는 데로 한 걸음씩 더 나아가고 있다.

작년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조치를 취했던 북한은 ‘3년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힘들 것’, ‘우리를 적으로 대하는 남조선당국과는 앞으로 그 어떤 협력이나 교류도 필요없다’면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정리하고, 금강산국제관광국을 비롯한 대남 협력, 교류 관련기구들을 없애버리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하였다.

북한이 대미, 대남관계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임기말기에 들어선 남조선당국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 ‘(미국은)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 등이 암시하는 바는 핵시험, 미사일발사를 비롯한 무력 과시를 재개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미가 합동군사훈련을 강행하자, 3월 21일 단거리순항미사일 2발(미국과 남한당국의 추정)을 발사했으며, 3월 25일에는 새로 개발한 신형 전술유도탄을 시험 발사했다.)

치열한 북미대결의 장에서 벗어나, 남북이 힘을 합쳐 한반도평화와 민족통일의 역사를 개척할 수 있었던 기회는 사라지고 있다.

이는 예속적인 한미관계를 남북관계보다 절대시하고, 통일정책을 미국의 대북정책을 실행하는 것으로 대한 현 정부가 초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정세는 2017년의 전쟁위기국면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남북관계는 2018년 4.27판문점선언 이전에서 2000년 6.15정상선언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2021년의 북미관계는 북에 대해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제재를 더 강화하려는 미국의 적대정책과 미국의 도발과 봉쇄를 무력화시키려는 북의 공세적 대응이 어우러지는 첨예한 대결로 될 것이다.

올해의 한반도정세와 남북관계를 한마디로 예견하자면 ‘군사적 대결을 위주로 한 북미대결이 격화되는 속에서 남북관계는 전면 차단되고 급속히 후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 북미관계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오랜 적대관계를 마감하는 역사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고 기대한 북미관계는 다시금 대결국면으로 들어섰다. 미국이 백년에 한번 올까말까 하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전임 미합중국 대통령 트럼프가 ‘군사적 압박과 경제적 봉쇄로 북한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는 미국의 주류정치세력, 대결주의자들의 책동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 미국 대통령자리에 들어앉은 바이든은 대외정책, 특히 대북정책에서 역대 어느 미국대통령보다 과거 회귀적이라 할 수 있다.

전임 대통령인 트럼프가 추진하려 한 대북관계 개선정책을 폐기한 것은 정권이 교체되면 통상 있는 미국 정치의 통과의례라 할 수 있지만, 바이든의 북한에 대한 입장, 한반도에 대한 이해 정도는 ‘전략적 인내’를 간판으로 내걸고 8년 동안 개점휴업상태를 면치 못한 버락 오바마보다도 훨씬 저열하다고 할 수 있다. 바이든이 북한과 한반도에 대해 내뱉고 있는 말들은 조지 W 부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지적 능력과 정책 결정력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미국 정치는 사회양극화가 극심해지는데 따라, 민주-공화 양당이 정권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서, 주류정치와 비주류정치의 험악한 싸움판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작년 대선에서 주류정치, 즉 워싱턴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기성이익집단과 네오콘이 승리하였다. 물론, 2019년 하노이회담에서 네오콘의 압박에 굴복한 트럼프가 재선되었다하더라도 북미관계는 별반 달라질게 없었을 것이다.

특별한 능력이 없고, 식견도 부족하며, 대중적 인기도 별로인 고령의 바이든은 네오콘에게 훨씬 손쉬운 존재다. 바이든은 대북대결주의자들의 입장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는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는 북한과 한반도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는 바이든이 북한에 대해 발언한 것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미국의 북미대결주의자들은 북한은 붕괴직전이며 군사적, 경제적으로 좀 더 압박하면 붕괴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이는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경험, 그리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일부 나라들의 현실로부터 신념으로 된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신앙이 북한에서도 구현될 것인지는 다른 문제다. ‘북한붕괴론’과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적대적 압박이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을 압박해 온 지난 30여 년 동안, 북한의 체제는 더 공고해졌고, 군사적 능력은 더 강화되었다.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정책을 수립하겠다면서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일본과 남한을 방문했고, 북한에 여러 차례 접촉제의도 했다. 하지만 북미대결에서 힘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으므로 바이든 행정부가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대화와 협상의 길에 나서지 않는다면, 버락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의 짝퉁을 답습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행정부 때 합의한 ‘한반도비핵화’라는 용어 대신 ‘북한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고 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은 미국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존재’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미국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라고 주장하는데, 적대정책을 근간으로 삼는 조건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라는 말은, 북한의 체제붕괴를 추구하겠다는 말과 같다. 바이든 행정부는 앞으로 여러 가지 엇갈린 행보를 보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적대적 대결정책을 재추진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미일군사동맹에 예속시키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일 간 현안에서 남한이 양보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얼마 전 하버드대학 교수라는 작자가 엽기적인 논문을 발표하고 미국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미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으로 구성된 군사협력체(Quad+)에 남한의 참여를 강요하고 있다.

2개의 미사일방어체제를 남한에 더 설치하고, 군사공항과 미사일통제기지 등을 제주도에 건설하려하며, 세균전시설도 전국 주한미군기지에 모두 들여놓을 계획이다. 부산을 비롯한 지방에 있는 군사공항의 기능도 확충하려 한다.

물론 이는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 한반도에 대한 미국-일본의 군사적 지배력과 영향력 증대가 수반되며, 필연코 대북적대정책을 강화하게 만든다.

북한이 조선로동당 8차대회에서 채택한 노선과 정책을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것인데, 대미정책에서는 미국이 대화를 제의하건, 군사적 압박을 하건, 제재를 강화하건 개의치 않고 자기가 설정한 목표를 자신의 힘으로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대화나 협상을 통해 미국과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것을 폐기하고 힘의 대결을 통해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북한이 확정한 전략적 방향이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무력화하는 군사적, 경제적 역량을 더 높은 수준에서 구축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는 김정은 총비서의 표현에 담겨있듯, 이에 대한 북한의 자신감은 매우 강하다.

북미관계는 마감 짓지 못한 힘의 대결을 최종 결산하는 데로 가고 있다. 어느 한쪽의 빛나는 승리와 다른 쪽의 처참한 패배를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대화와 협상으로 결속될 수도 있었던 북미대결의 기관차는 극한 대결의 종착점을 향해 다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다. 남북관계

지금 남북관계는 4.27판문점선언 이후 최악의 상태이며 6.15공동선언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남과 북, 온 민족을 설레게 했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지 불과 3년 만에 이런 상황이 된 원인은 무엇보다 청와대의 태도와 입장에 있다. 판문점선언과 그해 가을 평양공동선언에서는 맨 앞에 자주의 원칙에 대해 합의하였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남측의 행동은 맺은 약속들과 너무나 달랐다.

한미합동군사훈련 실시를 놓고 남북관계가 전면파탄의 기로에 서있던 지난 3월, 청와대는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자 핵심이다’, ‘ 한미동맹을 안보는 물론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다’는 발언을 버젓이 공개하였다.

남북관계에서 현 정부가 취한 행위들은 미국의 ‘눈치보기’를 넘어 ‘알아서 기는’ 수준이었다. 이 치욕스러운 사태의 근원은 ‘미국에 엇서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청와대의 대미굴종주의, 그리고 의식 속에 뿌리박혀있는 적대적 대결의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남한의 당국자들이 ‘북한이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대화와 협상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경제형편이 좋지 않으니 결국 우리가 제시하는 경제협력안을 받아 물것이다’는 식의 생각을 버리지 못한 것도 남북관계파탄에 적잖게 기여하였다.

청와대가 미국에 대한 강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2020년 6월에 뜬금없이 ‘체제경쟁은 끝났다’는 발언이 나온 것을 보면, 어떤 이데올로기의 영향 속에 갇혀있는 지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남한의 최고당국자의 마음속에 통일은 있지 않고 분단고착화 정도만 있을 뿐이라는 판단을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2020년 6월 8일, 북한 통일전선부가 성명에서 ‘적은 역시 적’이라고 한 것은 ‘청와대가 미국의 대북정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와 능력이 희박하다’는 인식과 ‘적대적 대결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북한은 곧이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그런데도 통일부를 비롯한 남한의 당국자들은, 미국의 대북제재에 충실히 복종하는 경제지원사업 제안이나 늘어놓고 있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이런 비상식적 제안들이 나오는 이유는, ‘북한은 언젠가는 붕괴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붕괴론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열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한반도평화와 민족통일에 옳게 기여할 수 없으며, 무엇을 하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집행자 노릇을 면치 못한다.

4.27판문점시대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참으로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기회였다. 하지만 남한의 최고책임자는 이 중대한 역사적 시점에, 민족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통일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굳은 의지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으로 될 것이다.

현 정부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남북관계, 남한의 대북정책을 미국의 대북정책에 종속시킨 것이다. 이로 하여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힘들게’ 되었으며 남한 당국은 북한으로부터 냉대와 수모를 받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비핵화

미국은 비핵화를 대북정책, 한반도정책의 최우선 목표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 모순이며 현실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무장은 미국이 추진한 대북적대정책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기 시작하자, 미국은 군사적 압박(전면전쟁 포함)과 경제봉쇄를 통해 북한의 붕괴를 촉진시키려 했다. 그리고 북의 ‘핵개발의혹’을 이런 일을 벌이는 명분으로 제기했다. 클린턴은 핵개발의혹을 앞세워 북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추구했지만, 북한의 맞대응에 꺾여 결행하지 못했고, 오히려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합의서(제네바합의, 1994년)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얻은 것이라곤 ‘북한의 핵개발의혹’ 이란 말이었다. 그런데 이 ‘의혹’은 오히려 북한에게 협상 카드를 쥐어준 격이 됐으며, 핵개발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미국은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목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온갖 술수를 부려 제네바합의를 파기해 버렸고, 경제봉쇄와 전쟁도발책동을 지속했다. 하지만 미국이 내세운 비핵화라는 명분은 6자회담에서 되려 자기 입장을 궁색하게 만들었으며, 2005년에 이르러서는 6자회담의 결과물인 ‘9.19공동성명’에 원치 않으면서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북을 ‘악의 축’이라 지칭하며 붕괴책동을 노골적으로 벌인 미국 부시행정부는 6자회담 합의이행을 거부했고, 유엔안보리를 이용해 경제제제를 확대 강화하는 것으로 북한붕괴를 실현시키려 했다. 미국이 내세운 제재 명분은 북의 핵개발과 미사일개발이었다.

하지만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미국의 선동, 끊이지 않는 전쟁도발책동은 북한에게 모든 나라가 가지고 있는 핵개발본능을 깨워주었으며, 미사일개발 의지를 더 높여주었다. 상황타개를 위한 어떤 일도 하지 못한 버락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8년의 시간과 한반도전면전쟁위기가 고조된 2013년, 북미간 군사대결이 극한점에 도달한 2017년을 거쳐, 결국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고, 미국본토타격능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무기, 미사일 능력은 미국이 북한을 붕괴시키려고 책동한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북미협상의 전제조건, 일차적 목표로 ‘북한의 비핵화’를 내거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며, 현실성도 없는 것이다. 한 두 나라를 빼고 세상에 어떤 바보가 적대정책에 맞서 자위력으로 구축한 군사적 능력을 실질적인 보장도 없이 포기하려 하겠는가.

제재해제, 체제보장, 불가침협정(평화협정) 등은 핵무기포기와 교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불가역적인 적대정책의 폐기, 관계정상화만이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으로 된다. 따라서 비핵화는 북미관계정상화의 목표나 결과로 삼을 수 없고, 대화나 협상의 전제나 선차적인 목적으로도 될 수 없다.

비핵화를 전제조건, 당면목표로 삼으면 군사압박과 경제봉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상대에게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는 방법은 적대적인 수단 외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외치는 ‘북한 비핵화’는 핵으로부터 자유로운 한반도나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무장해제 시키자는 것일 뿐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낡은 비핵화의 깃발을 다시 들겠다는 것은 전쟁책동, 적대적 행위를 다시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남한정부가 이런 미국의 비핵화놀음에 맞장구를 칠 뿐만 아니라, 미국이 추구하는 북한 비핵화를 실현해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먼저, 남한정부가 미국의 비핵화 놀음에 맞장구치는 것은 아무런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공격능력을 구축한 것은 남한의 군사적 위협 때문이 아니며, 남한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다. 북의 핵무기는 ‘남침’에 유효한 수단도 아니다.

남한의 ‘안보’라는 개념이 ‘북침’ 또는 ‘북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북의 핵무기는 남한의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북의 핵무장에 의해 한반도에서 전면전쟁 발발의 위험이 줄어들었다는 역설이 작용한다.

그런데도 북이 핵무장을 완성하자, 무슨 난리라도 난 것처럼 야단법석을 친 사람들은 이런 이치를 모르거나 외면하려는 사람이거나, 미국이 북에 대한 전쟁을 실현할 수 없게 된 것을 아쉬워하는 사대매국의 노예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남한정부가 미국의 비핵화 놀음에 맞장구를 치는 것은 남북관계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미국에 다 넘겨주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삼게 되면, 남한당국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비준을 받아야 하며, 북과 하는 모든 합의는 미국의 추인 없이는 실행에 옮길 수 없게 된다. ‘북한의 핵포기를 강제한다’는 핑계로 실시되고 있는 대북제재가 당국관계를 비롯한 모든 남북관계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이 가장 명확한 예로 된다.

비핵화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완전히 폐기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된 단계에서 실현될 수 있는 과제다. 남북관계가 어느 단계까지 발전해야만 현실로 될 수 있는 목표인 것이다.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이 남아있는 조건에서, 비핵화는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북한비핵화를 추구하는 것은 한반도정세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며 전쟁발발의 먹구름을 불러오는 일로 될 뿐이다. 대북적대정책의 다른 표현일 뿐인 비핵화에 매달리는 어리석음과 결별해야 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

연례적이며 방어적인훈련이라고 주장하며 벌이고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사훈련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현재 미국이 구축한 한반도전면전쟁계획, 작전계획5015(Operational Plan 5015, OPLAN 5015, 작계5015)를 실행하는 전쟁연습이다. 작계5015라는 미국의 한반도전면전쟁계획은 1974년에 만들어졌던 남북 간의 재래식 전면전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7, 부시 행정부에서 만들었던 작전계획5030에 이어 2015년경에 만들어진 한반도전면전쟁계획이다.

작계5027는 남북 간의 재래식전쟁을 유발시킨 후 전면전쟁을 벌인다는 계획이고, 작계5030은 북한에 대한 국지적 도발 등으로 군사적 긴장을 유발시켜 북한의 군사력을 약화시킨 후 전면전쟁을 벌이려는 계획이다.

반면 작계5015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에 입각한 전면전쟁계획이다. 작계5015는 북한의 최고지도부를 제거하는 작전을 포함하여,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요충지 700여 곳을 선제타격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여기에 동서 해안에 대규모 부대를 상륙시키고 휴전선 일대에서 북진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이 계획은 북한군에 대해 압도적인 공군력, 우월한 해상전력과 기갑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공중과 해상에 있는 상대를 파괴할 수 있는 각종 미사일들을 개발하여 과시해왔다. 작년 당 창건 기념열병식에서는 세간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현대화된 기갑전력이 공개되기도 했다. 미국의 선제공격이 성공하려면, 상대의 대응보복능력이 무력화된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대륙간 타격능력과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게서 그런 능력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김정은 조선로동당총비서는 ‘우리의 핵은 그 누구를 위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그러나 만약에, 만약에 우리를 침략하려한다면’자신이 가진 권한으로 선제 타격할 것임을 공언하였다.

미국의 작계5015는 문서상의 계획으로만 존재할 가능성이 높게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한반도전면전쟁계획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여태껏 세 번밖에 하지 못한 ‘미 본토에서 대규모 무력을 한반도로 전개하는 실전연습’을 몇 번 더 하여 이 전쟁계획을 완성하려고 하고 있으며, 작계5015 연습이 북한을 굴복시키거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압박으로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이런 한미군사연습을 계속하면, 북한이 이에 대응하느라 국력을 소진하여 ‘구소련처럼 붕괴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다.

군대라면 하게 되는‘군사훈련’이라고 하지만, 선제공격을 골자로 하는 작계5015에 입각해 펼치는 한미군사훈련은 임의의 순간에 실제 전면전쟁도발로 넘어갈 수 있으므로 한반도정세를 극히 위태롭게 만드는 행위다. 전면전쟁도발에 필요한 병력을 미 본토에서 한반도로 이동시키던 이전의 한미합동군사훈련도 전쟁발발의 위험성을 높이는 것이었지만, 작계5015에 의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돌발적 위험성이 비할 바 없이 더 높아지게 만든다.

게다가 ‘실병력의 이동전개 없이 작전지휘소연습만 한다’는 한미양국의 주장과는 달리, 주한미군과 남한군은 합동군사훈련기간을 전후해 연대급, 대대급 합동훈련을 수도 없이 벌였다.

미국과 한국이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는 것은 싱가포르 북미공동선언과 판문점남북공동선언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가 파탄지경에 이른 지금, 그나마 판문점선언 이후 한반도평화분위기를 지탱하고 있는 2018년 9월 평양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해 버리는 위험천만한 일이 된다.

북한은 올해 초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실시여부를 남북관계에 대한 남측의 생각을 보여주는 징표로 간주하겠다면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면 남북관계는 파탄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럼에도 남한당국은 한미군사훈련을 강행하였다. 남북관계 개선보다 한미동맹의 유지를 중시하면서 한반도평화정착을 남북관계의 발전에서 찾지 않은 것이다. 이는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사대주의, 민족허무주의가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전작권환수

전시작전권은 해당 군대에 대한 통수권을 의미한다. ‘전시’라는 희한한 수식어를 붙여놓았지만, 전시작전권을 쥐는 쪽은 군대의 육성, 관리, 운영 전반에 대한 권한을 가지게 된다.

20년 넘게 한국과 미국은 작전권반환, 전시작전권 ‘반환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개인 간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국가 간 사이가 불평등한 관계로 되어있다면, 공정한 협상은 불가능하며, 불평등한 측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가 나올 리 없다.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전권을 반환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앞뒤가 뒤 바뀐 논리이며, 현실로 될 수 없는 억지다.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떤 협상으로 이뤄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극동에 대한 군사적 지배권과 남한에 대한 우월적 영향력의 골간으로 되는 군사지휘권을 순순히 내놓을 리도 없다.

미국은 남한정부의 전작권 반환요구를 활용해 한국의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성을 더 높이고 있다. 전작권 반환을 위한 협상이 매번 미국 무기를 대량 구매하는 것,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비 인상압력에 굴복하는 것으로 결말 지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작권 반환 시한은 이미 몇 번에 걸쳐 연기되었고, 지금은 반환 날짜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을 ‘몇 번의 한반도전쟁위기와 한국군내에 전작권 반환에 반대하는 세력들 때문’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군에 자주적인 군대의 본성이 결여되어있는 데 있다.

한국군 지휘부에 사단급 이상의 군대를 통합 지휘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미국은 이 약점을 이용하여 ‘한국군이 작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검증되면 전작권을 돌려주겠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능력은 줘야하는 쪽도 미국이며, 판단하는 쪽도 미국이다.

전작권을 반환받기 위해, 남북관계파탄을 불사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강행하면서 엄청난 혈세로 미국 무기를 대량 구매하고 있는 게, 지금 남한정부가 하고 있는 일이다. 순진하다고 이해해주기에는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다. 민족자주 정신이 없으면 이런 엉뚱한 일을 벌이게 된다.

라. 통일운동의 역할과 과제

남북당국관계가 전면 차단된 현 상황은 통일운동에게 더 막중한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통일운동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는 지난 시기 통일운동의 사업과 활동에 대한 뼈아픈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통일운동도 4.27판문점선언으로 열린 역사적 기회가 무산되고 있는 데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판문점선언시대는 남북 간의 정치군사적 문제를 전환적으로 해결, 발전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통일운동은 그에 걸 맞는 활동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대중들속에 민족자주정신, 통일의식을 고양시키는 사업에 힘을 집중하지 못했고, 정부당국이 자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합의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는 투쟁도 힘 있게 벌이지 못했다.

지금 통일운동의 역할은 무엇보다, 한반도정세가 더 악화되고 남북관계가 더 후퇴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한반도정세가 악화되고 남북관계가 파탄 나는 근원적인 이유는, 미국이 대북적대정책, 전쟁도발책동을 다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미국의 전쟁책동, 제재강화놀음을 규탄 저지하는 사업과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비롯하여 새로 벌이는 도발행위나 적대적 정책을 반대, 규탄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예속적인 한미동맹에 기초하여 나라의 주권과 시민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는 각종 군사시설과 전쟁무기, 주한미군기지를 몰아내는 운동을 폭넓은 대중운동으로 벌여야 한다.

이런 활동들은 대중들속에서 식민지노예의식을 청산하고 민족자주의식을 고양하는 것을 목적과 방향으로 삼고 펼쳐야 한다.

4.27판문점시대를 다시 꽃피우는 길은 남한당국이 남북공동선언을 성실히 이행하는 길 뿐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작년 통일운동진영의 거센 요구에도 공동선언 이행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지금 단계에서 정부당국에 공동선언을 이행하라고 재차 요구하는 것은 실효가 없어 보이며, 의미 있는 사업으로도 보기 힘들다.

지금 단계에서 주되게 요구되는 것은 ‘성실한 이행 요구’보다는 ‘합의에서 어긋나는 행위’를 막고, ‘관계파탄을 초래할 일을 벌이는 것’을 규탄하는 것이다. 집권말기에 접어들수록 정부당국의 반민족적 외세굴종적 입장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미-일-한 군사동맹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일본이 한반도 등을 대상으로 군사적 진출을 확대하려는 것’에 협조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이제는 촛불혁명과정에서 이룩했던 반일운동의 성과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 북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정리하고, 금강산국제관광국을 비롯한 대남 협력, 교류 관련기구들을 정리해 갈 것인데, 남북공동기구도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남한이 대선국면에 접어들면 분단적폐들의 반북책동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며, 집권여당에서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자신의 이익을 좆는 사람들도 늘어 날 것이다.

따라서 남북합의이행과 대북적대정책폐기, 한미일군사동맹 구축반대에 뜻을 같이하는 사회적 역량을 더 힘 있게 결집시키는 커다란 대중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 운동은 교류협력사업의 어떤 것을 실현시키려는 사업의 틀에서 탈피해, 남북간에 걸려있는 주요한 정치군사적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벌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통일운동가들과 대중들이 더 고도화된 통일운동의 단계와 현실을 깊게 이해하고, 자기 역할과 사명을 분명히 하는 교양선전사업을 벌여야 한다. 이를 위한 새로운 매체를 창설하고 광범하게 유포시킬 수 있는 방도도 찾아야 한다.

새로운 통일교양사업 선전활동에서는 6.15시대에 주로 벌였던 북한바로알기운동에서 한 단계 발전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판문점선언과 오늘의 현실이 통일운동에게 주는 교훈은 당국관계가 아무리 발전해도 통일운동은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국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하고 빠르게 변화한다고 해서 통일운동이 넋 놓고 있거나, 그 성과에 편승하려고 하면, 남북당국관계의 발전에 장애물로 되기 쉬우며, 관계파탄을 막을 힘도 잃게 된다.

비록 2021년 올해의 한반도정세가 위태로워지고 있고, 남북관계가 전면적인 파탄을 향해 가고 있지만, 통일운동이 제 역할만 한다면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이보다 훨씬 암울했던 시절에도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역사적인 돌파구를 열어내었던 통일운동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