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 경기도 연천군 군남댐 인근 ‘남북농민공동통일경작지’에서 모내기 행사를 진행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박흥식 의장을 만났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오는 11일 경기도 연천군 군남댐 인근 ‘남북농민공동통일경작지’에서 모내기 행사를 진행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박흥식 의장을 만났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남북교류가 꽉 막힌 가운데도 32개 시군에서 ‘통일쌀 모내기’를 진행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오는 11일 또 하나의 특별한 모내기 행사를 진행한다.

박흥식 제18기 전농 의장은 지난 3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11일 경기도 연천군 군남댐 인근 3만 2천 평의 경작지에서 모내기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11일 아침부터는 모내기를 하고 행사는 11시에 한다”며 “일단 통일부 장관하고 경기도 평화부지사, 그리고 6.15남측위원회가 함께한다. 앞으로는 ‘6.15남측위원회 농민본부’가 실제로 이 사업을 주도할 수 있도록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5년 전까지 농사를 지었던 군남댐 홍수조절지 일대에 조성된 3만 2천 평의 부지에 경기도농수산진흥원과 전농 경기도연맹이 실질적인 운영관리와 경작활동을 담당하게 된다. 

박 의장은 “남과 북이 다시 6.15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에서, 미국의 내정간섭이 이미 선을 넘어서고 그래서 더욱더 남북의 통일을 가로막는 이 시점에서, 결국 우리 국민의 힘으로 밖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우리 농민이 먼저 나서야 되지 않겠나. 남북의 농민이 통일농업을 위한 공동경작지를 조성을 해서 이 문제를 좀 풀어가자고 한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나아가 “지금은 북의 농민들과 함께하지 못하지만 앞으로 멀리 바라봤을 때 남과 북의 농산물을 교류하는 공간으로까지 발전시키고 싶다”며 “남에서 농사지은 것과 북에서 농사지은 것을 서로 물물교환을 하면서 통일의 기틀을 만들고자하는 것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바람을 전했다.

또한 “단순하게 남북통일 경작지가 아니라 남과 북이 함께 가는, 종자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농업에 대한 정보교류와 미래 후손들한테 어떻게 우리 농업을 유지하고 계속적으로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장이라든가, 이런 공간으로서 통일경작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지고 시작을 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농은 올해 전국 37개 시군에서 통일모내기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제공 - 전농]
전농은 올해 전국 37개 시군에서 통일모내기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제공 - 전농]

오는 10일 저녁 7시, 전국 각지에서 모일 농민들과 더불어 전야제 행사를 가진 뒤 10일 아침부터 모내기에 들어가고 오전 11시 기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이제강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이 이양기에 시승하는 등 이벤트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손모심기는 코로나19와 민통선 출입인원 제한으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

학생운동을 마치고 1986년께 고향인 전북 김제에서 농민운동에 뛰어든 박흥식 의장은 2002~2003년 전농 사무총장으로 ‘30만 농민 대항쟁’을 함께 이끌기도 했고,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35년의 농민운동의 요구가 지금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다고 했다.

더구나 코로나19 팬더믹으로 “노인층 농민들이 마을회관에서 서로 정담을 나누면서 밥도 같이 먹고 이러는데, 마을회관이 폐쇄되면서 정말 공동체가 무너지는” 상황을 맞고 있어 안타까움은 더해 간다.

박 의장은 “남과 북이 함께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농지를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라며 “우리가 식량 주권을 세우기 위해서는 식량자급 기반을 만드는 문제하고, 종자 주권을 확보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도시민과 시민사회단체까지 함께하기 위한 식량주권운동본부를 꾸려서 우리가 소비자들의 주권과 농민의 주권, 그리고 우리 남과 북이 함께 가는 통일농업을 좀더 소비자들에게도 인식시키고 그래서 우리 농업이 유지되고 발전되면서,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가기 위한 그 틀들을 만들기 위한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암울한 상황이다. “남과 북이 함께 품앗이 농사를 하기 위해서, 트랙터를 가지고 북쪽에 가서 농사도 돕고 서로 교류도 하기 위해서 ‘통일품앗이 트랙터’를 모금을 했는데, 26대가 민통선 안 물류기지에 지금 보관돼 있다”며 “이번 통일경작지 사업을 계기로 해서 교류의 물꼬가 터진다면 이 통일트랙터를 몰고 가서 북에서 북한 농민과 함께 품앗이 농사를 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그나마 기대를 갖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다. “현재 후보를 결의한 농민후보는 20여 명이 넘고 거의 30명까지 넘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다”며 “아마 내년에 지방자치 선거에서는 많은 후보들이 당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생각한다”고.

그러나 전농이 배타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진보당 소속 농민후보들이 지방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의 진보당 득표율이 너무 저조했기 때문이다.

박 의장은 농촌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공공농업’을 모색하며 이를 법제화한 ‘농민기본법’을 구상하고 있다면서 “통일농업을 통해서 남과 북이 함께, 겨레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식량에 대한 기반과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소재 전농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사무총장할 때 ‘30만 농민 대항쟁’ 진행, 정치세력화 방침 정해”

박흥식 전농 의장과의 인터뷰는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소재 전농 의장실에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흥식 전농 의장과의 인터뷰는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소재 전농 의장실에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어느 지역에서 언제부터 농민운동에 나섰나?

■ 박흥식 의장 : 전북 김제 출신이다. 85년도 전경환(전두환 동생)의 소 수입으로 인해서 많은 농민들이 힘들었다. 많이 비관자살도 하고. 나는 그때 당시 풍물패, 그 다음에 전북지역 그림패 ‘땅’ 소속으로 문화운동을 했다.

그때 당시 소머리탈굿으로 농민들의 소몰이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 전북지역에서 다섯 군데가 소싸움을 했었는데 완주, 익산, 임실, 진안, 부안에서 소머리탈굿 공연을 했다. 마지막 부안 싸움에서 경찰들이 워낙 심하게 탄압하면서 농민들이 단식농성을 들어가는데, 도움을 주면서 함께 있었다.

그 날도 김인술 씨가 휘발유를 가지고 와서 자기 몸에 불을 지르려고 하는 것을 다행히 우리가 먼저 발견해서 막았다. 그 정도로 사람들이 절박했다. 소를 키울 때 그냥 자기 자본이 있어서 키운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돈을 모아서 하는 것을 보면서 ‘야, 어렵구나’ 느꼈다.

그때 당시에 그림패 땅에 대한 탄압이 있어서 임실로 들어갔다. 임실에서 1년을 살다가 김제에서 동학농민회라는 자주적 농민단체를 만든다는 연락이 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농민회를 시작했다. 86년부터 의식적으로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나?

■ 했다. 그때 당시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서 독재타도를 외쳤다. 4학년 때인 84년에 서울에서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학자추)가 뜨면서 봄부터 독재타도 투쟁이 진행이 됐고, 전북에서는 원대(원광대)에서 하반기에 학자추를 띄웠다. 그때 친구들이랑 중심이 돼서 처음으로 원대에서 그러한 집회도 하고, 유인물 만들어서 학교하고 싸우면서 그때부터 운동을 했다.

□ 전농 의장은 언제 맡았나? 임기와 연임 여부는?

■ 2020년 2월에 의장을 맡았고, 내년 2월까지 임기다. 지금 집행간부들이 너무 힘들어 해서 연임은 안 갈 것 같지만 그때 가봐야 안다.

2002년, 2003년 사무총장할 때 ‘30만 농민 대항쟁’을 진행했고, 그때 당시 전농이 정치세력화 방침을 정했다. 그래서 전농이 민주노동당과 함께 했고, 각 지역에 지역위원회를 만들고 정치세력화 사업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다.

□ 지금은 진보당과 같이 하고 있나?

■ 정치적 방침으로 진보정당에 배타적 지지를 표명했고, 현재는 진보당과 함께 하고 있다. 우리 이념과 우리가 하고자하는 운동의 방향성을 함께 할 수 있는 진보당이 그래도 우리가 같이할 수 있는 정당이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식량 주권, 종자 주권 문제 해결해야

농민들은 농사뿐만 아니라 '아스팔트 농사'도 열심히 지었지만 농촌과 농민들의 삶은 벼랑에 몰려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농민들은 농사뿐만 아니라 '아스팔트 농사'도 열심히 지었지만 농촌과 농민들의 삶은 벼랑에 몰려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지금 코로나19가 오래 가고 있다. 농민들에게 타격이 큰가?

■ 코로나19 팬더믹 상황으로 전 세계가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 하나로 이렇게 세계질서가 무너지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삶이 자유롭지 못하는 이 시국은 문명이 낳은, 산업화로 인한 재앙이라 생각한다.

특히 농민들은 식당이나 소비가 안 됨으로써 농산물들 판로가 막혀 있다. 학교급식이 중단된 친환경 농가, 행사가 취소된 화훼 농가, 그리고 소비가 위축된 여러 농산물로 보이지 않게 힘든 상황이다. 딱 드러난 어려움 보다 서서히 젖어가는, 그러한 힘든 상황들이 진행되고 있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지금 고령화로 인해서 농촌 마을 단위가 거의 자연 양로원이 돼 있다. 그래서 노인층 농민들이 마을회관에서 서로 정담을 나누면서 밥도 같이 먹고 이러는데, 마을회관이 폐쇄되면서 정말 공동체가 무너지는, 많이 어려워하는, 이런 것들이 참 보기가 안타까운 거다.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고 생활이 어려운 것은 좀더 노력해서 어떤 형태든 극복이 되겠지만 생활이 코로나로 구속되고 있는 어른들을 봤을 때 마음이 아프다.

□ 전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겠지만 식량주권과 통일농업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개략적으로라도 설명해 달라.

■ 전농은 농업문제를 바라볼 때 남측의 농업 상황만을 보지 않는다. 남과 북이 함께 살아가는 우리 농업의 방향을 기본적 방향으로 본다. 전농의 강령에 자주, 민주, 통일이 있고, 그 속에서 식량주권은 남과 북이 함께 살 수 있는 식량자급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그리고 남측은 어느 정도까지 식량자급을 이뤄내야 하는 것인지, 이런 문제가 고민이 된다.

현재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이 21.6% 정도 된다. 쌀을 빼면 4%도 안 되는 심각한 식민지국가가 돼 있는 상황이다. 식량을 자급하려면 농지가 확보돼야 하는데 농지 문제가 심각하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 농지는 거의 43%가 농사를 짓지 않는 외지인들이 소유하고 있고, 농민들은 거의 60%에서 많게는 70%까지 임대농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남쪽의 식량자급만 보더라도 농지가 협소하고, 부족한 상태다.

결국 남과 북이 함께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농지를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우리가 식량 주권을 세우기 위해서는 식량자급 기반을 만드는 문제하고, 종자 주권을 확보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IMF 사태로 인해서 종자 주권이 훼손이 됐다. 현재 일본이라든지 미국이라든지 다른 나라의 종자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의 종자가 없어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앞으로 식량이 무기화 되듯이, 종자도 무기화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종자 주권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지금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환경과 농촌이 무너지고, 농민들의 주권이 훼손되는 이 시점에서 환경과 농촌의 주권, 농민의 주권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가 숙제다. 그래서 지금 고민하는 것이 ‘농민기본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 있는데 신자유주의 농업개방을 전제로 이 법이 만들어졌다. 이게 농업에 있어서는 모법인데, 철학이 잘못됐다. 앞으로 통일대비, 그리고 미래세대 우리 국민들이 살아갈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 틀을 완전히 전환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농민기본법을 올바로 잡기 위한 논의가 지금 되고 있다. 내년 대선 국면에서 이슈화시키고자 현재 고민하고 있는 사안이다.

우리가 통일농업을 이룬다는 것은 농업개방으로 인해서 농촌이 어려워지고 있고, 우리의 농산물이 외국의 농산물에 서서히 잠식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남과 북이 함께 살아가는 기본 틀, 그리고 농업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다.

통일농업을 통해서 남과 북이 함께, 겨레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식량에 대한 기반과 교류가 필요하다. 그리고 남과 북이 함께 좋은 유전자가 있는 토종종자를 확보해서 지금 시대에 맞는 종자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쌀부터 통일하자’는 기치로서 통일모내기도 하고 통일농사를 지었다.

지면 한게로 중략됩니다.  통일뉴스를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코레아뉴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