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코레아뉴스 | 간첩 제조기가 제주도 아저씨를 간첩으로 둔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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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2-10 21:39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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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제조기’가 제주도 아저씨를 간첩으로 둔갑시켰다
박 명 훈 기자 자주시보 2월 10일 서울
민주노총 간부 활동을 했던 경력을 살려 노동자들에게 장기 투쟁용 물품 지원을 위한 사업체인 ‘장투닷컴’을 꾸린 사업가. 제주도로 터전을 옮긴 뒤엔 진상규명 투쟁을 지원한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인연으로 세월호기억관 운영위원장을 맡은 활동가.
제주4.3항쟁 당시 학살당한 주민들의 상흔이 서린 역사, 제주 특유의 자연이 펼쳐진 곶자왈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해설가. 활동가들이 머물며 쉴 수 있도록 동료들과 사비를 털어 만든 제주평화쉼터의 대표. 여행도 즐겨 하며 아들과 딸을 둔 가정의 아버지.
그러다가 2023년 1월 18일 난데없이 간첩으로 낙인찍혀 압수수색과 체포를 당했고, 26차례의 재판 끝에 2025년 9월 25일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
모두 ‘윤석열 공안탄압 피해자’인 신동훈 세월호기억관 운영위원장 한 사람의 이야기다. 신 위원장의 사연은 9일 민형배·손솔·한창민 국회의원실과 (사)양심수후원회, 민애청이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국가보안법 피해자 연속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을 통해 알려졌다.
신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 때인 2023년 1월 18일 이른바 ‘민주노총 전·현직 간첩단 사건’에 휘말린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다. 국정원과 경찰은 신 위원장뿐만 아니라 석권호 민주노총 전 조직국장 등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당시 윤석열 정권은 민주노총을 탄압하고 있었고, 이런 흐름 속에서 신 위원장 등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를 대상으로 한 공안기관의 간첩 조작이 자행됐다.
공안기관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쓴 주요 언론은 신 위원장 등 간첩 조작 피해자들을 ‘민주노총 간첩단’, ‘제주 간첩’, ‘세월호 간첩’으로 낙인찍었다.
제주도는 4.3항쟁 당시 주민 3분의 1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고통과 비극이 지금도 짙게 배 있다. 그래서 간첩단 조작 사건이 터지자 제주도 주민의 공포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봐도 훨씬 크고,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신 위원장은 전했다.
공안기관의 간첩 조작 기획은 집요했다.
국정원은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7년 1월부터 신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CCTV 영상을 수집했고, 이를 6년 뒤 윤석열 정권의 ‘민주노총 탄압’ 국면에 맞춰 터뜨렸다.
2017년 1월, 신 위원장은 제주도에서 동료와 숲 해설을 했다. 국정원은 이를 ‘북한 공작원을 만나기 전 사전 모의를 위한 부부 회합’으로 둔갑시켰다. 하지만 신 위원장이 만난 이는 숲 해설을 함께하는 동료였으며 아내가 아니었다.
2017년 9월, 신 위원장은 장투닷컴 사업을 위해 캄보디아를 찾았다. 당시 신 위원장은 자신이 묵던 호텔 근처에서 고개를 숙이며 파라솔 밑을 지났다. 그런데 국정원은 이를 북한 공작원에게 인사한 장면이라며 ‘지령 수수를 위한 회합’으로 조작했다.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며 북한에 다녀온 이력,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활동, 사업과 여행 등으로 100차례가 넘는 해외 방문 이력. 이러한 신 위원장의 삶이 국가보안법을 명분 삼은 “(국정원의) 좋은 먹잇감이 됐는지도 모른다”라고 사회를 맡은 김태중 민애청 사무국장이 말했다.
국정원은 2017년 1월부터 신 위원장이 해외에 갈 때 출국장에서 나오고 들어가는 장면 등이 포함된 영상 자료를 증거로 제출했다.
신 위원장이 북한 공작원과 내통했다는 결정적 증거로는 “눈빛 교환” 영상을 제시했다. 신 위원장이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과 눈빛을 교환하며 신호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영상을 본 재판부가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눈빛 교환을 했다는 건가’라고 황당해하는 상황도 있었다.
국정원이 휴대전화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도깨비’라는 제목의 삭제된 영상이 무엇인지 답하라고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신 위원장이 기억나지 않아 밤새 고민했더니, 아들이 보고 싶다고 한 인기 드라마 「도깨비」의 영상이었다고 한다.
신 위원장의 과거 기록 33만 건 중 1,600건이 압수수색 대상이었다. 신 위원장은 자신이 간첩이라는 “어떤 증거물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게 다였다”라며 증거가 없기에 국정원이 자신이 간첩이라는 증거를 조작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정원은 교도소에서 법정으로 가는 차량 등 변호사가 없는 상황에서 ‘거짓 자백’을 받아내려 회유를 시도했다. “(검찰에) 송치 안 할 수도 있다”, “변호사 없이도 언제든지 우리(국정원)한테 얘기할 수 있으니까 교도소 측에 언제든지 전해라”, “진술해라. 그러면 아까 얘기한 대로 구속을 취소시켜 줄 수도 있다” 등등.
견디다 못한 신 위원장이 “한 번만 진술을 종용하면 확 자결해 버리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수원구치소 측은 신 위원장을 독방으로 옮겼고, 혹시나 자해하지 않을지 CCTV 영상으로 감시했다고 한다.
구치소에 수감된 신 위원장은 2024년 11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윤석열이 12.3내란을 일으키자 자신도 수거 대상이 될 수 있었다며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후 신 위원장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2025년 9월 25일 최종 무죄를 확정받게 됐다.
![]() © 박명훈 기자 |
그렇다면 신 위원장은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국정원이 신 위원장과 접촉했다고 주장한 북한 공작원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진짜로 있긴 했던 걸까?
이에 관해 김태중 사무국장은 공안기관이 신 위원장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미리 심어둔 “간첩 제조기”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했다. 왕재산 사건 등 이전에 여러 간첩단 사건 때마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던 사람이 신 위원장 재판에도 출석했다. 이로 미뤄볼 때 공안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북한 공작원을 만들고, 여기에 끼워 맞춰 사건을 조작했을 거란 추정이다.
법정에서 공안기관의 간첩 조작이 드러났고, 신 위원장은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주변에선 “솔직히 얘기해 봐. 나한테만 얘기해 봐. (북한 공작원을) 만나긴 만난 거지?”라는 말도 나온다고 신 위원장은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가까운 이들, 자신의 기억도 믿을 수 없도록 만드는 점 또한 국가보안법의 폐해라 할 것이다.
신 위원장은 재판 과정을 돌아보며 “하나의 기억이 어긋나도, 하나의 단어가 잘못돼도 무죄가 유죄로 바뀌는 그런 사안”이었기에 피 말렸고,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놨다.
또한 자신은 운이 좋아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라며, 모든 과정에서 묵비하며 수감 중인 다른 사람들을 떠올렸다. 자신이 겪은 고충을 그들도 똑같이 겪고 있으리라 걱정하면서. 신 위원장과 함께 기소된 다른 2명은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된 상태다.
신 위원장은 이전까지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잘 몰랐는데 간첩으로 몰리고 나서야 “아, 이게 국가보안법이구나!”라고 깨닫게 됐다면서 관련 공부를 하고, 고심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현재 신 위원장은 국정원, 경찰, 검찰을 상대로 ▲자신과 가족 ▲상처받은 제주도민 ▲고통받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종 무죄 판결이 나오자 국정원은 이종석 국정원장 명의로 신 위원장에게 이례적인 사과를 했다. 하지만 신 위원장을 간첩으로 둔갑시킨 국정원 직원이 어떤 책임을 졌는지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간첩 조작 사건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며, 국가보안법이 뿌리박힌 토양도 바뀌지 않았다.
예를 들면 국정원에는 일단 간첩 혐의로 기소시키면 5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포상금으로 주는 규정이 있다. 그렇기에 공안기관이 특정 대상을 찍어 억지 혐의를 들씌우는 ‘간첩 조작 장사’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민애청은 ‘국가보안법 피해자 연속 증언 프로젝트 목소리들’을 진행하고 있다. 두 달 뒤에는 네 번째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 유족이 증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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