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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6-25 04:5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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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25.06.2014)
사가 고발한 한국전쟁 도발자》
 
우리 민족이 잊지않는 한국전쟁(1950-1953)이 있은지 6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장구한 세월 미국은 한국전쟁반발의 진상을 곡해왔다.
즉 북조선이 남을 침략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는 전쟁도발의 장본인이 누구인가를 고발한다.
 
미군의 남진주는 한국전쟁을 배태
 
미국은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한반도를 북과 남으로 가르는 38°선을 고안해냈다. 그리고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구실로 저들의 군대를 《해방자》의 감투를 씌워 남에 진주시켰다.
 
미국이 38°선을 고안해 낸것은 대일전쟁에 참가한 쏘련군이 한반도의 37°선까지 내려와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쏘련군이 한반도전체를 차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결정이였다.
 
미국이 한반도의 절반땅이라도 기를 쓰고 차지하려고 한것은 반도를 장차 대 륙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의 교두보로 써먹기 위해서였다.
당시 미국신문기자 마크 게인은 《우리들은 해방군이 아니였다. ... 우리는 상 첫날부터 조선인민의 적으로 행동하였다.》라고 말하였다.
 
미국도서《아메리카현대사》는 《실지에 있어서 월가의 조선인민에 대한 전 쟁은 그 장군들이 남조선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즉 1945 9월에 시작되였 다.》라고 폭로하였다.
이것은 미군의 남조선진주가 없었다면 한국전쟁도 없었을 이라는것은 자 명한 사실을 실증해준다.
 
한국전쟁을 위한 군사적준비
 
미국은 북조선의 무력에 비한 《10;1의 우의》를 목적으로 남군을 조직 확대하고 미국식으로 훈련시켰으며 남군에 대한 통수권을 확립하였다.
 
1945년부터 1949년까지 미국은 남에 무 10US$이상에 달하는 군사원조를 제공하였다. 군은 전투준비를 다그치는것과 함께 38°선일 대에 방대한 무력을 증강 배치하였으며 군용도로들을 신설확장하고 진지를 대 대적으로 설하였다. 문자 그대로 남은 거대한 군사기지로 전변되였다.
 
1950 7월 미국잡지《라이프》는 《전쟁개시에 있어서 이번 전쟁만큼 완 전히 준비하고 있은적은 우리들의 사가 시작된 이래 없는 일이였다》고 실토 하였다.
미국도서《한국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에는 《북조선에 대한 공격준비는 19505월에 일체 끝났다.》라고 기록되여있다.
 
38°선무장도발은 한국전쟁의 서막
 
잡지《사회와 사상》(19906)에 의하면 1947년부터 19506월 전쟁발발까지의 3년반동안에 북조선에 대한 남군의 무장도발이5,150여차례나 있었다.
38°선무장도발의 조직자, 지휘자는 미국이였다.
 
미국은 도발행위들을 통하여 몇가지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였다.
그 하나는 38°선무장도발을 확대하고 그 연장으로 북침전쟁을 일으키자는 것이였다. 다른 하나의 목적은 거기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전 술적으로 유리한 지역들을 점령함으로써 차후 무력침공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 하자는데 있었다. 한편 이 과정에 남군의 실전능력을 판정하고 전쟁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려고 하였다.
 
미국이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1949년과 1950년 상반기에 진행된 무장도발은 그 규모에 있어서나 도발회수에 있어서 전면전쟁을 방불케 했다.
미국도서《한국전쟁;대답없는 질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한극전쟁은 1950 625일 새벽에 갑작스레 일어난 충돌의 결과가 아 니였다. 전쟁이 일어나기전 여러해동안 반도 량쪽사이의 충돌은 계속되였으며1949년에는 서울의 압력에 따라 그 격렬성이 더해갔다. 일부 조선문제전문가들 은 전쟁이 사실상 그해에 시작되였다고 생각하고있다.
 
한국전쟁의 발발
 
전쟁준비를 최종적으로 완성한 미국은 그 실행에 착수하였다.
트루맨대통령은 북침전쟁도발준비상태를 현지에서 검열, 확정하고 전쟁개시 명령을 하달하기 위하여 미국방장관 죤슨, 미합동참모본부 의장 브래들리를 도꾜에 있는 맥아더사령부에로, 미국무성고문 덜레스를 자기의 특사로 남조선에 파견하였다.
 
19506월 남조선에 날아들어 38°선일대에까지 나가 공격준비상태를 최 종적으로 검토한 덜레스는 승만대통령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것은 전쟁준비상태를 직접 보고 부족점이 없 다면 곧 북진을 단행하라는 트루맨대통령의 명령을 가지고왔다. 준비가 된 이상 북진을 하루도 늦출 필요가 없다》
 
트루맨대통령의 전쟁명령 제29호에 따라 미군고문들의 지휘하에 남군은 드디여 1950 625일 새벽에 북조선에 대한 전면적무력침공을 감행 하였다.
당시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왜 25일을 택하게 되는가. 여기에 우리의 심중한 의도가 있다. 25일은 일요일이다. 그리스도교국가인 미국이나 남조선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있다. 우리가 일요일에 전쟁을 개시하였다는것을 믿을 사람은 아마도 없 을것이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전쟁을 먼저 일으키지 않았다는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전쟁의 승자
 
조선전쟁에서 승자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하여 견해는 각이하다.
자료는 다음과 같은 자료로 그에 대한 해답을 주고있다.
 
지난 조선전쟁에서 창건된지 2년도 채 안되는 청소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 화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군사력과 경제력, 오랜 침략력사를 가진 미국을 선두로 하는 제국주의연합세력간의 치한 대결전을 벌.
1950625일새벽 미국이 남군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키자 북조선 군이 즉시에 방어로부터 반공격에로 진격하였다.
이것은 기성의 군사론이나 교법, 다른 나라들의 경험에도 없는 새롭고 독창 적인 방공격전략이다. 세계전쟁사는 아무리 강대한 군대와 막강한 경제군사적 잠재력을 가지고있는 나라라 하더라도 전면적인 불의침공을 받으면 혼란에 빠져 자기의 힘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멸망하거나 일정한 기간 혼란과 시련을 겪은 후에야 전선을 수습하고 힘을 마련한 다음 비로소 반공격으로 넘어갔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하지만 김일성주석의 독창적인 전력에 따라 남한군의 불의의 침공을 즉시에 좌절시키고 반공격으로 넘어간 북조선군은 전쟁개시 3일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불과 한달남짓한 동안에 남조선 전지역의 90%이상과 인구의 92%이 상을 해방하는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였다.
 
당시 미극동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이였던 맥아더는 미합동참모본부에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썻다.
《적은 공세적이며 잘 훈련된 직업적군대이고 군최고수뇌도 우수한 지휘를 할줄 알며 작전전술의 원칙도 잘 용하고있다.김일성주석 적들의 기도를 정확히 간파하고 군대가 그에 따르는 전략전술을 능숙하게 적용하도록 하였다.
 
미군측의 크리스마스총공세를 여지없이 좌절시킨것이 그 하나의 실례이다.
1950 11월에 미국이 새로 대병력을 투입하면서 크리스마스총공세준비에 열을 올리고있을 때 김일성주석 미군의 총공격개시날자가 1124일이 라고 하시면서 1125일에 총반격전에 진입할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시였다. 미군과 연합세력들은 북조선군의 드세찬 반격에 만신창이 되였으며 무질서하게 패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것을 직접 목격한 서방의 한 기자는 자기의 글에 이렇게 썼다.
 
《미군의 공격날자를 알지 않고서는 인민군대가 그렇게 즉시적으로 반공격을 단행할수 없었을것이다. 그것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작전능력에 실로 한계 가 없다는것을 다시한번 보여주었다. 미군의 총공격날자를 바로 알아맞힌것도 상상밖의 일이지만 모든것을 빈틈없이 잘 타산한 반공격시간의 선택도 참으로 놀라운것이였다.
김일성장군의 독창적인 전법들을 내놓고 그를 활용하여 현대전쟁사의 빛나는 페지들을 장식해였다.
일성장군에 의하여 한반도의 지형조건과 군대의 무장장비 현대전의 특성에 맞는 산악전 갱도전, 습격전, 비행기사냥군조운동, 탱크사냥군조운동을 비롯한 수많은 군사전법들의 창조되게 되였다. 그중 갱도전법만 놓고보아도 산이 많은 한반도의 지형적특성과 기술적우세에 의존하고 있는 적군의 상태를 과학적으로 타산한데 기초하여 창조된 현명한 전법이였다.
 
 
당시 세계에 널리 알려졌던 1211고지방위전투에서의 북조선군의 승리도 다 름아닌 갱도전법이 가져다준 결실이였다. 19519월 전선동부의 1211고지 계선까지 나온 김일성주석 미군의 추기공세를 짓부셔버릴 방향과 방도를 명확히 밝면서 방어진지들을 갱도화하기 위한 대책들을 철저히 세웠.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북조선군은 고지마다에 선야장간을 꾸리고 적군의 포탄과 폭탄파편쪼각들을 녹여 정과 망치, 곡괭이를 비롯한 공구들을 자체로 만들어 갱도를 뚫었다.
 
이리하여 북조선군의 방어진지들은 더욱 철벽으로 다져졌다. 북조선군들은 줄폭 탄이 쏟아지는속에서도 갱도안에서 충분한 휴식을 하였을뿐아니라 화선악기에 맞추어 노래도 부르고 춤판까지 벌리였다.
당시 갱도화된 북조선군의 방어선에 의하여 패배만을 거듭하고 있던 미극동군 사령관 릿지웨이는 《그 방어선은 아마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 것중에서 가장 위력한 방어선일 것이라고 비명을 질렀었다.
 
이 자그마한 사실적 자료를 놓고 보아도 전쟁의 승자는 과연 누구인가를 잘 말해주고있다.
조선전쟁시기 마카오주둔 포투갈군 참모장으로 있었던 포투갈 전 대통령 고메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당시 미국이 만든 작전계획은 미국편에 선 서방나라들의 참모장들, 군 사전문가들인 수십명의 장군들이 여러차례 모여서 토의한 끝에 만든것이다. 그 런데 김일성장군은 그것을 단독으로 격파하였다. 나는 이것을 내 눈으로 보고 김일성장군이야 말로 이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는 천재적인 군사전략가이며 위대한 영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www.corea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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