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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뉴스 | 김일성주석을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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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7-02 02:4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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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이름이 빠진 한국현대사는 기만적 역사이다.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한지 20년을 맞이한다. 그는 우리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남측에는 지금도 김주석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세력들이 있지만 이는 자기 조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매우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김일성 이름이 빠진 한국현대사는 불구적 역사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김일성주석을 영원한 태양이라 칭송한다.
김일성주석을 태양으로 칭송하고 있는 것은 무엇때문 일까?
김일성, 그분의 성함은 태양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이름 그대로, 태양의 속성인 밝은 빛으로 민족의 앞길을 비쳐주고 뜨거운 열로 인간사랑의 화원을
펼쳐주고 거대한 인력으로 만인을 끌어않았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주체사상을 창시하여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가 나아갈 앞길을  밝혀
주었다.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 대중에게 있다는",
 
다시 말하여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며 자기 운명 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자신에게 있다"는
주체사상은 인류사상사에 처음으로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의 길을 과학적으로 밝혀준 사상이다.
이 위대한 사상 의 창시로 지난날 역사밖에 밀려나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만 되여오던 근로대중이
역사의 주인으로 동장하는 자주시대가 펼쳐지게 되였다.
 
김일성주석은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일제의 군사적강점으로부터 조국을 해방하였으며 동방
에서 처음으로 인민이 주인된 인민민주주의국가를 창설하였다.
 
또한 세계 최강을 떠들던 미제국주의에게 역사상 처음으로 참패를 안기고 미제가 내리막길에 들어
서는 시초를 열어놓았다. 주체사상은 거대한 생명력과 견인력으로 만인의 심장을 틀어잡았으며 세
계 적판도에서 자주위업이 막을 수 없는 시대적흐름으로 도도히 굽히쳐 흐르게 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뜨거운 인간애로 사람들을 따뜻이 품어주시였다.
 
한평생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신 그분은 인민을 위하여 자신 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그에 의하여 북조선에는 무상치료, 무료교육, 세금철페와 같은 인민적시책들이 실시되고 누구나 서
로 돕고 이끄는 인덕의 대화원이 펼쳐지게 되였다.
 
인간에 대한 그이의 뜨거운 사랑은 민족을 초월하여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감복시켰다.
 
그분은 북조선을 방문하던 기네방송국 사장 에밀레 똠빠빠가 사경에 처하였을 때 긴급치료전을 벌
려 기적적으로 소생시키게 한 사실, 전 오스트리아수상 부르노 크라이스키가 말년에 두다리를 못쓰
게 되였을 때 북조선의 유능한 의사들을 보내여 다시 대지를 활보하게 해준 사실을 비롯하여 그의
숭고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수많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있다.
 
전 포르투갈대통령 프란시스꼬 다 꼬스따 고메스는 김일성주석은 인덕 으로 세계를 움직이시는 위
인이시라고 회고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거대한 포옹력으로 만사람을 끌어않았다.
 
그는 생전에 7만여명에 달하는 외국의 정계,사회계, 언론계의 저 명한 인사들과 각계각층의 사람들
을 만나주시였다. 그를 만나는 사람 들은 누구나 그의 위인적 풍모에 매혹되였다. 이전 쏘련의 쓰
딸린, 중국의 모택동과 주은래, 꾸바의 피델 까스뜨로,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유고슬라비아의 티
토, 월남의 호지명, 일본의 가네마루 싱, 도이췰란드의 루이저 린 저, 프랑스의 미떼랑등 그를 만
나는 동서방의 수많은 저명한 국가수반 들과 명인들이 한결같이 그의 위인적풍모를 칭송하였다. 미
국의 전 대통 령 지미 카터는 김일성주석은 미국의 건국과 운명을 대표하였던 죠지 워싱 톤, 토마
스 제퍼슨, 에이브라함 링컨 3대 대통령을 합친것보다 더 위대한 분이라고 하였다.
 
한없이 넓은 도량과 숭고한 국제적의리를 지신 그분은 아프리카 나라들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의
민족해방투쟁과 반제투쟁, 새 사회건설 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분은 비록 서거하시였으나 태양이 영원하듯이 그의 사상과 위업은 길이 빛나고있다.
 
북조선은 그를 금수산태양궁전에 영생의 모습으로 모시고 영원한 수령으로 길이 받들어 모시고 있
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 국가수반들과 각계 인사들, 국제기구들이 그분께서 서거하신 후에도 그분께 훈
장과 메달, 명예 칭호, 정성어린 선물들을 계속 드리고 있다. 해마다 태양절을 맞으며 김일성화축
전,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등 성대한 행사들이 진행되고있다.
우리 민족이 그처럼 존경하든  김일성주석님은 영원한 태양으로 인류의 심장속에 영생하고 계신다.

김일성주석의 생전 어록  (북측 출판물에서 옮김)
 
1977년 4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나라에서 내준 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 이 보고싶으시여 어느한 지
방의 중학교를 찾으시였다.
 
학생들이 입은 새 교복에서 손수 실밥도 뜯어주시고 쎄타가 몸에 맞는 가도 가늠해보시며 학생들의
옷차림을 하나 하나 보아주시던 그이께서는 새 교복의 세타무뇌가 알락달락한것이 곱고 좋다고 못
내 기뻐하시였다. 한 녀학생의 앞에 이르시여서는 신발이 꼭 맞는가고 물어도 보시고 허리를 굽 히
시여 신발의 앞부문을 꼭꼭 눌러보기까지 하시였다.
 
학생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시며 옷맵시를 보아주시던 그이께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시더니 《나
보다 더 신사로구만》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 으시였다.
 
그러시고는 학생들의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자신께서 직접 사진을 찍어주고 그 사진을 자신께서
도 한장씩 가지고 가시겠다고 하시며 사진 기를 드시는것이였다.
 
뜻밖에 차례진 영광으로 하여 감격과 기쁨을 금치 못하는 학생들 한명 한명을 차례차례 세우시고
그이께서는 한장한장의 사진을 찍어주시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사진을 찍으시는 그이께 일군들과 교원들이 이제는 그만하실것을 거듭 말씀드렸
지만 그이께서는 사진기를 놓치 않으시였다.
 
《내 60평생에 오늘처럼 기쁘기는 처음이요! 정말 내마음이 이렇게 즐겁기는 처음이요.》
그이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계속 사진을 찍어주시였다.
이날 주석님께서는 전체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까지 찍으신 다음에야 자리를 뜨시였다
 
김일성주석님의 기쁜날
우리민족의 영원한 수령이신 김일성주석(1912-1994)께서는 한평생 인 민을 위한 헌신의 길에서 기
쁨을 찾으신 위대한 분이시다.
그를 보여주는 몇가지 사실을 전하고저 한다.

생신날에 헤치신 진펄길
 
1954년 4월15일에 있은 일이다.
이슬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밭머리에 농민들과 허물없이 마주 앉으시여 조합형편이며 농사일에 대
하여 하나하나 의논하시던 그이께서는 이 부근에 샘물터가 있다는것을 아시고 그곳으로 걸음을 옮
기시였다.
 
한 일군이 그이께 거기는 못가신다고, 이만저만한 진펄이 아니라고 말 씀올리였다. 그러자 그이께
서는 이전에 나라를 해방하기 위해 일제놈들과 싸울 때에는 그 보다 더 험한 길도 다니였다고 하시
며 진펄길에 들어서 시였다.
일군들이 후날 길을 낸 다음에 와보시는것이 어떤가고 다시금 그이께 말씀드리였다. 하지만 그이께
서는 무릎까지 빠져드는 진펄길을 앞자에서 헤치시며 샘터로 향하시였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서야 샘터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샘터주변의 습지를 일일이 밟아보시고 여기에다
양어장을 건설하면 좋겠다고, 샘터에서 나오는 물을 리용하여 물고기를 길러 인민들에게 공급하면
정말 좋을것이 라고 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조합의 여러 단위들과 마을들을 돌아보시며 온 하루를 현지지도의 길에 바치시였
다.
 
그날 저녁 늦게야 숙소로 돌아오신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오늘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생일을 쇠였
다, 휴식이란 먹고 노는것이 아니다, 나라일이 잘 되여 마음이 즐겁고 기분이 좋으면 그것이 곧 휴
식이다, 요즘 농업협동 화도 잘되여가고 나라일이 잘되여가니 마음이 즐겁다고 기쁨에 넘쳐 말씀
하시였다.
이날은 김일성주석님께서 조선전쟁(1950-1953)이 끝난후 처음으로 맞 으신 생신날이였다.
 
기쁨속에 부르신 노래
 
조선동해에서 명태잡이가 한창이던 어느해 겨울날이였다.
내각의 한 일군을 전화로 찾으신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명태잡이배 기름 문제때문에 찾았다고 하시며
물고기를 많이 잡아내는것과 함께 그 수송 에서도 빈틈이 없도록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잡은 물고
기를 제때에 수송 하여 자강도와 량강도같은 산간지방에서 살고있는 사람들도 생선국을 먹을수 있
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이제부터 명태잡이소식을 자주 알려달라고, 이제부터 시작 해서 동지때까지 가면 몇십
만t은 잘 잡을수 있다고, 더우기 요새 명태는 홀태가 없고 다 알배기라고 하시며 더없이 흥겨워하
시였다.
 
그러시던 주석님께서는 문득 일군에게 《〈떠나갈 땐 빈배로 〉가지만하고 그 다음에 뭐더라?》라
고 행복에 겨우신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순간 일군은 주석님께서 물으시는 뜻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의아해 하 였다.
《거 왜 〈바다의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지 않소?》
그제서야 일군은 《예. 그 다음에는 〈돌아올 때는 배전에 〉넘친다입니 다.》라고 가사를 말씀올
렸다.
 
그러나 주석님께서는 《그래, 그래 배전에 넘치지》라고 하시더니 오늘 은 절로 마음이 흥겨워진다
고, 정말 기쁘다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러시고는 푸짐한 밥상을 받아안은 인민의 기쁨이 눈앞에 어려오시는 듯 즐겁게 노래를 부르시였
다.
떠날갈 땐 빈배로 가지만
돌아올 때는 배전에 넘친다
오늘처럼 기쁘기는 처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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