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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포뉴스 | - 특집 1. - 전설적 빨찌산 여장군 김정숙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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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2-22 09:2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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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1. -  김정숙여사 탄생 100주년 기념


전설적 빨찌산 여장군 김정숙여사 1. 


김정숙여사 탄생 100돐                                          유럽지역 선군연구소

 

올해 12 24일은 조선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류가 《항일의 녀성영웅》으로 길이 칭송하여마지 않는 김정숙여사(1917-1949)의 탄생 100돐이 되는 날이다.

 

역사에는 나라와 민족의 진보와 번영에 기여한 공적으로 이름떨친 여류명사들이 적지 않지만 요사처럼 한생을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신 걸출한 여성정치 활동가는 없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1917 12 24일 조선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함경북도 회령시 오산덕의 극빈한 농가에서 탄생하시였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야만적인 군사적통치(1905-1945)하에 있었다. 1922년 여사의 일가는 나라잃은 민족적설음과 피눈물나는 생활고로 하여 두만강을 건너 이국땅으로 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망국노의 설음을 뼈저리게 체험하며 벌써 10대의 소녀시절에 나라찾는 성전에 나서신 여사께서는 지하투쟁과 유격구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직업적인 혁명가로 성장하였다. 1935년에 김일성주석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 조선이 해방(1945. 8. 15.)될 때까지 손에 무장을 들고 혈전만리를 헤쳐가며 항일의 여장군으로, 유능한 정치활동가로서 명성을 떨치셨다.

 

처창즈 유격구 방위전투를 비롯하여 무송현성전투, 대덕수전투 등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시여 무비의 용감성과 뛰여난 지략, 신묘한 사격술을 보여주시였다.

 

수많은 적들을 단신으로 유인하여 부대의 안전을 지켜내신 이야기, 변변한 재봉도구하나 없는 밀림속에서 몇명안되는 대원들과 함께 600벌의 군복을 단 20일동안에 만들어낸 이야기, 조국해방최후결전의 나날에는 첫 낙하산병이 되여 대원들을 새로운 전법습득에로 고무해 주신 이야기를 비롯한 항일전장에 남긴 수많은 일화들은 오늘도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있다.

 

이 나날 여사께서는 김일성주석으로부터 중대한 정치공작 임무를 받으시고 조선의 북부 국경지대인 신파(당시)지구를 비롯한 각지에 조국광복회(김일성주석께서 1936 5 5일에 창립한 반일민족통일전선체) 조직망을 확대하는 사업도 정력적으로 벌리시여 각계각층의 군중을 항일의 기치밑에 묶어세우고 전민항쟁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꾸려나가시였다.

 

여사께서 민족해방위업에 기여하신 공적중에서 특출한것은 김일성주석을 견결히 옹호보위 하신 것이다.

1940 3월 홍기하전투와 그해 여름 대사하치기전투을 비롯하여 일제군경들의 총구가 주석께로 직접 향해졌던 위기일발의 순간들에 자신의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고 방패가 되시여 그이의 신변을 보위하신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주석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김정숙은 여러번 나를 위기에서 구원해 주었습니다, 그는 내 신변안전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육탄이 될 준비가 되여 있었습니다 라고 회고하시였다.

 

조선해방위업에 쌓으신 여사의 투쟁자취는 당시 항일빨찌산들이 밀림속의 나무들에 새긴 구호들에도 력력히 어려있다.

 

2천만 민족아, 조선의 독립대장은 , 김정숙대장이시다》, 《백두산항일녀장수 김정숙장군은 조선이 낳은 불세출의 녀걸이시다》, 《백두산녀장군 신출귀몰 천지 주름잡으며 왜놈 족친다》…

 

해방후에도 여사께서는 새 조국건설을 위한 주석의 활동을 정력적으로 보좌하시였다. 일제에 의하여 파괴된 공장과 농촌, 어촌 등 나라의 방방곡곡을 찾으시는 주석의 현지지도를 보좌하면서 인민들을 새생활창조, 새사회건설에로 불러 일으키시였다. 자료에 의하면 여사께서는 해방후 4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무려 수백개 단위를 700여차나 찾으시였다고 한다.

 

여사께서는 조선인민이 나라잃은 망국노의 설음을 다시는 당하지 않게 하시려는 주석의 뜻을 받들어 정규무력을 건설하는 사업에도 커다란 관심을 돌리시였다.

 

마침내 1948 9 9일 여사께서 그처럼 바라시던 인민의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되게 되였다.

 

조국과 민족앞에 불멸의 업적을 쌓으시고 인민들의 한없는 사랑과 흠모를 받으시던 김정숙여사께서 1949 922일 너무도 젊은 나이에 생애를 마치시였지만 여사의 한생은 현대조선사에 지울수 없는 자욱을 남기였다.

 

조선의 해방과 새 조선건설에 바치신 김정숙여사의 고귀한 한생은 무궁번영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더불어 길이 빛날것이다.



- 특집 2. -  김정숙여사 탄생 100주년 기념


전설적 빨찌산 여장군 김정숙여사 2.           유럽지역 선군연구소


김정숙여사는 조선민족이 낳은 걸출한 여성혁명가이시다.

 

그는 여성의 몸으로 오랜기간 빨찌산투쟁을 벌리신 녀장군이시였다.

 

비범한 군사적지략과 신비한 사격술                                    

 

김정숙여사께서는 백전백승의 령장이신 김일성주석의 휘하에서 신묘한 유격전법과 지략을 체득하시였다.

 

1936 1월에 진행된 내도산전투는 여사의 기묘한 우등불전술로 승리한 전투였다. 일제는 이 전투에 유격전에 숙달됐다는 특수부대와 일본군 박격포중대를 비롯하여 800여명에 달하는 병력을 투입하였다. 이때 녀사께서는 내도산의 일부 고지들에 우등불들을 지펴올려 아군의 위치를 일부러 로출시킨 다음 유리한 위치에 매복해있다가 불의에 답새기는 전술적방안을 내놓으시였다. 전투는 여사께서 예견하신 그대로 벌어졌다. 적들은 유격대의 불의의 타격앞에 무리죽음을 당하고 패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여사의 신출귀몰하고 천변만화한 임기응변의 전략전술들은 그후 수많은 전투들에서도 전설처럼 전해지고있다.

 

여사께서는 누구도 따를수 없는 신비한 사격술을 지니고 계셨다.

 

적의 총구에서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그곳에 대고 총을 쏘면 영낙없이 비명소리가 울리군 했다는 이야기, 수백메터의 거리에서 투명한 유리병의 목만 쏘아맞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캄캄한 야밤에 어스름한 달빛속에서 단 한발의 총탄으로 전주대에 매달린 전화선을 끊어버린 동강전투이야기는 더욱 유명하다.

 

국제련합군시절 중국과 쏘련군장병들은 여사의 명사격술에 탄복하여 그이의 총탄에는 《눈이 달렸다》고 말하군 하였다.

 


무비의 담력과 뜨거운 인간애


김정숙여사께서는 무비의 담력을 지니고계시였다.

 

1933년 김일성주석의 전략적의도에 따라 《평일군》이라는 중국인반일부대와 연합할데 대한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의 일이다. 일제의 민족리간책동에 넘어가 조선사람이라면 무턱대고 죽이던 그들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여사께서는 반일부대 두령과의 담판을 제기하고 서슴없이 그를 찾아가시였다. 그는 어린 처녀의 몸이였지만 총을 들고 달려드는 보초병들을 도도한 기상으로 물리치고 두령과 마주 앉으셨다. 첫 대면에서 부터 위압적이고 적의감을 가지고 대하는 두령앞에서 여유작작 하고도 자신있는 태도와 겸손하고 사리정연한 논조로 일제의 조중 인민 이간책동의 본질에 대해 하나하나 까밝히시였다. 그이의 출중한 품격에 마침내 반일부대 두령도 탄복하여 담판은 성공하게 되였다.

 

여사는 녀장군이시였을뿐아니라 뜨거운 인간애를 지닌 분이시였다.

 

녀사께서는 동지들과 인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것 지어 생명을 바치는것도 서슴지 않으시였다. 지하공작을 하실 때 마을의 지주가 열병에 걸린 부엌데기소녀를 산중초막에 내버린 사연을 아신 녀사께서는 지체없이 초막으로 달려가시여 그와 침식을 같이 하시였다. 조직원들이 전염될수 있다고 극력 만류하였지만 그이께서는 희생적인 노력과 간호로 불쌍한 소녀의 생명을 끝끝내 구원하시였다. 이 이야기는 그이의 뜨거운 인간애에 대한 하나의 실례에 불과하다.

 

녀사의 인정미는 민족과 사상, 정견을 초월하였다. 일제가 패망한 후 일본군간호부로 일하다가 귀향길에 오른 일본처녀들이 저택에 동냥하러 찾아들었을 때 녀사께서는 조금도 편견을 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돌보아주시였다. 귀국하게 되였을 때에는 수속도 해주시고 새옷과 도중식사, 로자까지 쥐여주시였다. 25년이 지난후 그들중 한 녀인은 당시의 일을 잊지 않고 일본 도꾜도지사일행의 조선방문편에 감사의 편지를 올리여왔다.

 

수령결사옹위의 호위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전생애를 김일성주석을 옹위하는 호위장군으로 사시였다.

 

대표적으로 대사하치기전투를 들수 있다. 1940 6월 대사하치기전투때  김일성주석께서는 산중턱의 바위우에 서시여 전투를 지휘하고계시였다. 바위곁에 자리를 잡고 주변의 정황을 예리하게 살피고 계시던 여사께서는 무성한 갈밭에 몸을 숨기고 은밀히 기여오른 적들이 불과 몇발자국 안되는 곳에서 일제히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시였다. 이 위기일발의 순간에 여사께서는  온몸이 그대로 방탄벽이 되여 주석을 막아 나서시였다. 번개같이 싸창으로 명중탄을 날리며 갈밭속의 적들을 눈깜짝할 사이에 쏘아눕히셨다

조선혁명의 운명이 위기일발에 놓였던 순간은 이렇게 지나갔다.

 

호위장군으로서의 여사의 자세는 항일전의 나날이나 조선해방후 건국의 나날에나 변함이 없었다.

 

오늘 조선인민은 김정숙여사의 탄생 100돐을 맞이하고있다. 항일의 녀성영웅, 전설적빨찌산녀장군의 숭고한 한생은 조선인민만이 아니라 전세계 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여있을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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