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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16.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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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13 11: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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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글쓴이: 다물흙, 림원섭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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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에 각각 이질적인 정권이 출범한 후 수년 동안 이와 같은 한반도의 극심한 혼란과 학살 및 충돌 상황은 미국 뿐 아니고 한반도 주변국에도 알려져 협의가 있었지만 북한의 우방인 소련과 중국은 잦은 침범으로 위협에 놓인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하지만 한국전쟁의 발발이 세계3차 대전의 시작으로 될 수 있어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 공개적으로 지원할 수 없는 입장임을 밝혔다. 



- 남쪽의 미군정은 북쪽에 넘어가 그 인민들에게 도둑, 폭행, 강도, 강간, 매복, 방화, 납치, 살인, 포사격 등등 무려 3200(북자료는 5200번)번을 1947년1월초부터 1950.6.25일 이른 새벽까지 주야로 만행을 실로 심각하게 저질었다.- 림씀.



그러나 김일성은 38선에서 무력 충돌이 계속되어 1949년 무렵부터 수차례 소련의 지배자인 스탈린과 중국의 통치자인 모택동을 만났으며, 공개된 구소련의 문서에 의하면 그 당시 스탈린은 미국과의 마찰을 두려워하여 무력행사를 기피하였으나, 김일성과 모택동은 전쟁은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침공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 당시 스탈린은 북한에 강력한 군사적 원조를 하고 있었으나, 북한이 미국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단독으로 전쟁을 치르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이 그 후 수차례 그를 설득하여, 결국 중공이 전쟁 원조를 북한에 하는 조건으로 김일성이 남침 하면 소련도 지원하기로 하였다. 

중국은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세계대전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이 북한과 동맹관계에 있으므로 유엔군이 북한 지역을 침범하면 중국이 참전하여 전쟁이 확대될 것이므로 전쟁지역을 남한으로 한정하고 북한지역을 침범하지 말 것을 수차에 걸쳐 요구하였으나 이 요구는 묵살되었습니다. 

8년간 항일투쟁과 4년간의 국공내전의 오랜 전쟁으로 지칠 대로 지쳐 북한을 도와줄 여력이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중공군의 한국전 참전을 예상치 못 했다. 남한에서 북한군을 물리친 유엔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북한 지역까지 침범해 들어갔습니다. 남한을 발판으로 하여 드디어 대륙 침략이 이루어지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중국은 자신의 요구가 묵살되자 동맹국에 의용군을 파병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세계대전으로의 비화를 막기 위해 이 전쟁을 조선족과 미국의 전쟁으로 축소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항미원조 의용군을 조선족으로 조직하였다. 소련도 세계대전으로 되는 것을 염려하여 공식적으로는 참전하지 않았다.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해서 세계대전을 끝내게 한, 세계 최강임이 입증된 미국과의 전쟁은 북한을 비롯하여 주변의 소련 중국 등 어느 나라도 원치 않았으나 북한은 남침을 결행하였다. 미군과 그 휘하에 놓여있는 국군의 48, 49, 50년에 걸친, 점점 강도를 더해가는 북침으로 마침내 강요된 전쟁, 예고된 큰 전쟁이 시작되었다. 

반복되는 북침으로 정권에 위협을 느낀 북한으로서는 근원지역을 공격하기 위한 남침 외에는 달리 선택의 길이 없었다. 한국전쟁이 남북한 간의 전쟁 또는 동족간의 전쟁이나 동족상잔이란 소리는 미군의 침략을 감추려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전쟁 발발 전 까지 10만 명 이상이 희생된 작은 전쟁에 세계는 관심을 쏟지 않고 조선 민족만 계속 피를 흘리는 상황이 계속되어 세계에 호소하기 위한 한국전쟁을 김일성은 결행 하였습니다. 

북한의 발표나 성명으로는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여 전면적인 전쟁 이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당시에는 북한뿐만 아니라 세계 인구의 몇 분의 1인 중국도 미국에 의해서 유엔에 가입을 못한 상태 였습니다. 10억 인구는 무시하고 미국을 위시한 식민지 국가들 자기네들 끼리 세계평화 기구라면서 의논을 하는 꼴사나운 짓을 한 것이 유엔이었습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그 때도 유엔에 가입하고 못하고 하는 것도 미국이 제 맘대로 결정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은 당시 미국의 극단적인 매카시즘과 여기에 행동으로 나타난 팽창주의로 말미암아 예고된 전쟁이었다 . 한국전쟁이 남침에서 비롯됐다는 남침주장은 진위여부를 가릴 수 없는 문서만 있을 뿐이고 반면에 미국에 의한 북침 주장은 문서로서 뿐만 아니고 문서와 당시의 상황이 딱 들어맞고 있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침이냐 북침이냐의 결론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이 발생한 원인이다. 남침이냐 북침이냐보다 전면적 충돌을 낳은 요인이 중요하다 고 브루스 커밍스도 주장했습니 다. 전쟁이 발생한 원인은 해방된 한국인의 독립국 열망과 미국의 대륙으로의 세력 확대가 상충했던 것이 근본 원인이다. 

미국은 당시에 합리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소하려고 하는 대신에 무력으로 해결 하고자 하는데서 반인륜적인 범죄를 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반인륜적 범죄를 수단으로 해서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던 것이 한국전쟁이다. 

남한에서와 달리 북한에서는 소련군이 완전히 철수하였다. 그러나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공급받아 적들의 계속되는 무력침공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소련 중국과도 6.25전에 이미 남침을 협의해 두었다. 

전날인 24일이 토요일이어서 숱한 장병이 외출·외박을 나갔다. 부대원 절반 정도가 전선을 떠나 있던 상황이었다. 6월 들어 비상상황이 이어져 외출·외박을 금지해 오다가 모처럼 육군본부가 병사들을 내보냈다고 누군가 설명해 줬다. 그나마 문산 방면의 13연대가 검열준비와 야외훈련으로 병력 대부분이 대기하고 있던 것이 큰 다행이었다. 라는 수기는 무엇을 말해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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