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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21.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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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30 03:3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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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6.25는 도대체 무엇인가?

코리아(북미)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                                                          다물흙 림원섭


이 글은 2010년9월 자료다.
21.
1945년 8월 15일 8.15 해방이 되자 '위대한 박헌영 선생이여 빨리 나오시라'는 격문이 돌았다. 박헌영이 자작으로 붙였던 것이다. 미제는 일제시대 '박헌영 변절' 내용을 담은 자료를 고스란히 접수하였고 이를 통해서 미제는 박헌영을 협박하고 회유하여 간첩으로 포섭했던 것이다. 박헌영이 이러한 미제의 공작에 넘어갔던 것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양심' 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남한의 친일파 당국은 김일성이 박헌영 일행을 숙청 했다고 비난 하였다. 그 후 박헌영 일당이 미국이 보낸 스파이였다는 것이 비밀 해제된 미군 문서에 의해 밝혀졌다. 가증스런 사기꾼 미국은 전쟁이 나자 뜻밖의 전쟁이 난 것처럼 연기하였다. 음모를 꾸미는 기관인 미 CIA 극동지역 고위 책임자였던 하리마오 는 6.25 한국전쟁은 미국의 작품이었다고 불편한 진실을 털어 놓았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 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전개과정에서 미국은 한 민족에게 천추에 씻지 못할 죄를 범했다고 증언 하였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미국은 자신의 국익만을 위해 한반도에서 무자비하고 처참한 전쟁판을 벌렸던 것입니다.


 한국전쟁이 일본에 원폭투하로 일본이 항복하여 예상보다 빨리 종전되었고 그 이후 유럽 및 아시아에서 돌아온 500만 명의 참전 군인들의 일자리가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다. 1949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7%까지 떨어져 실업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나타났다. 1930년을 전후한 대공황이 다시금 오리라는 비관적인 예측이 나와 워싱턴은 어디에선가 전쟁발발 같은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5백만 명 이상의 한국국민이 죽었고, 사망자의 4분의 3은 민간인이었다. 그리고 천만 이산가족이 발생하였다. 집집마다 가족이나 친척이 죽거나 행방불명되었다. 미군은 타민족의 시체 더미위에서 축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야수들이었다.


 북한 김일성은 응당 남침의 권리가 있다.  남한은 조선 땅이지 미국 땅이 아니다. 김일성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항일투쟁을 해 왔지 북한 지역만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다. 일제가 망하여 조국이 해방이 돼서 김일성은 자신의 선조의 묘가 있는 전주에 가서 조상께 인사를 올리려고 하였으나 외세인 미국이 삼팔선을 가로막고 가지도 오지도 못하게 하는데 노예처럼 시키는 대로 따르겠는가?


당연히 외세를 물리치고 나라 전체를 완전 독립시켜야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남조선에서 괴뢰 정부를 세우기 위해 마을을 불태우고 어린이와 여자들까지 수만 명을 죽였다.


조선 사람이라면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누구나 가슴 아픈데 애국자 김일성이 우리민족이 그렇게 많이 죽은 걸 전해 듣고 얼마나 가슴 아파했겠습니까? 이렇게 참고 참아 인내심에 한계에 달할 정도인데 이번엔 38선에서 남조선 군대를 지휘하는 전직 일본군 장교들이 자신을 냉대하는 북한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휘하의 장병들을 이끌고 끊임없이 북침 무력도발을 감행하고 있어


죄 없는 남북한 장병들만 기약 없이 피를 흘리는, 조선민족이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는 이러한 수없이 반복되는 국지전을 끝낼 6.25같은 전면적인 전쟁 외에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2007년 04월 25일의 [중앙일보] 의 북침설을 잠재운다 는 기사를 보면 옐친이 넘겨준 문서에 김일성의 남침기획 과정 소상히 담겨있다 면서 문서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50년 5월 29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당시 평양 주재 소련 대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소련이 지원한 무기와 장비가 이미 대부분 북한에 도착했다"며 "6월까지 완전한 전투준비 태세를 갖추게 됐다"고 통보했다. 북한의 남침이 김일성의 기획과 소련의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자료였다. 

이에 앞서 50년 5월 14일 스탈린이 마오쩌둥에게 보낸 특별전문에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통일에 착수하자는 조선인들의 제창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마오쩌둥은 중국이 북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스탈린에게 전달했다.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승인했다 면서 한국전쟁이 김일성이 일으켰다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말대로 하면 한국 전쟁은 승인이 있어야 행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김일성 보다 결정권한이 있는 스탈린이 일으켰다고 해야 맞는 것이죠. 조정을 받고 움직인다는데 전쟁을 일으키고 말고 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전쟁이 나자 미국의 핵폭탄이 무서워 자국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중국인민지원군 군복을 입혀 위장을 시키고 조종사들 간 교신도 중국어와 조선어로만 하도록 하고 압록강 유역 까지만 전투기를 보내고 탄로날까 두려워 도망치듯 되돌아간 소련이 전쟁을 일으킨 목적이나 타당한 이유가 있는가?

강력한 독재자 스탈린이 B-29기가 북한지역에 폭탄을 소나기처럼 쏟아 부을 때 미그-15기를 출동 시키지 않고 사람들이 죽고 집들이 파괴 되는 걸 보고만 있을 거면서 남침을 지시하거나 승낙 했다는 게 이치에 합당한 소리인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은 누구!

보안법으로 먹고 사는 자들이다

40년 왜놈 식민지 시절에 ’치안유지법이라는 것은 왜놈들의 노예가 계속되게 하기 위해서 그 쪽발이 상전의 이익을 위해서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항일 독립 투사들을 뒷조사 하고, 이간매도하며 가두고고문하고 가족까지 철저히 괴롭히며 때때로  많은 애국자들을 모두  무지막지하게 고문하며 죽였다

그렇게 주야로 행동을 한자들은 왜놈에게  잘보여 진급하고 출세하려고  앞잡이 한국 년놈 (조선)들은 애국자 자기동족들을 주야로 괴롭혔다.  잡것들이 그때 당시 총독부에서 왜놈들의 똘마니 노릇했던 자들이 바로 헌병순사(경찰인간쓰레기 나부랭이들이였다 

오늘엔 그 ’치안유지법이라는 것이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으로 바꿔 대한민국이 미국의 식민지 노예를 계속하며 주야로 퍼주는 것을 반대하는 반미 민족통일 애국자들을 왜놈 시절과 똑 같이 진급히고 출세해보려고 미양키들의 앞잡이들은 -

그 애국자들을 
뒷조사하고매도하고헐뜯고도청하고 주야로 괴롭히는 자들이 바로 이 민족에 역적들이 70년째 한국에 미국 대사관청와대새누리당국정원공안 판사검사경찰기무사조중동국영방송뉴라이트 등등 민족에 대 역적 인간쓰레기들이다그 나브랭이들이 기득권을 쥔 약 35%

이 사대 매국 역적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데 있다.


고조선  5200 
단군사   43430924 
서양/기독교  20101030.
서양/기독교 201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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