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준220] 신냉전이 아니라 다극화 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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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10-31 20:37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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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20] 신냉전이 아니라 다극화 체제다
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10월 30일 서울
냉전 해체 후 일정 기간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형성되었다가 미국의 패권이 점차 무너지면서 다극 체제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냉전이 부활했다는 뜻으로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신냉전보다 다극화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입니다.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습니다.
신냉전은 과거의 냉전, 구 냉전과 유사한 질서가 다시 생겼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과연 오늘날 국제질서가 구 냉전 시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구 냉전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진영과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진영으로 나뉘어 실제 전쟁(열전)은 하지 않지만 이념적,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대립을 하며 전쟁에 준하는 위기가 이어지던 질서를 뜻합니다. 여기에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제3세계 비동맹진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3세계 국가들도 완전한 중립은 아니고 미국과 소련 중 어느 한 나라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종속되지는 않더라도 둘 중 한 나라에 더 가까운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구 냉전 질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좀 더 복잡한 구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진영에서 프랑스가 중립 노선을 선언하면서 1966년 나토에서 탈퇴하고 나토군을 추방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 사회주의진영에서 중국이 소련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 행보를 하면서 경쟁했는데 미국이 이 틈을 활용해 중국과 손을 잡고 소련을 견제했습니다. 이 시기가 일시적으로 미소 간 대립이 완화되는 이른바 ‘데탕트’ 시기인데 일부에서는 이 시기의 질서를 다극 체제라 부르며 이후 다시 양 진영이 대립하는 1980년대를 신냉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20세기의 절반은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기본으로 한 냉전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진영, 특히 동유럽은 소련의 강력한 통제 아래 있었습니다. 소련은 종종 동유럽 국가들의 정치에 간섭했습니다. 또 사회주의진영은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세브)라는 기구를 중심으로 경제 운용을 했는데 소련은 이 기구를 통해 전체 사회주의진영 국가들의 경제를 종속시켰습니다. 당시 소련은 코메콘 회원국 에너지 자원의 90%, 인구의 70%, 국민소득의 65%를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습니다.
|  ▲ 1964년 코메콘 집행위 회의. | 
그러다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소련이 해체되고 사회주의를 포기합니다. 그러자 소련에 종속되어 있던 동유럽도 함께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로 돌아섰습니다.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진영이 붕괴하자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진영이 승리를 선언했고 이후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국제질서를 보면 당시와는 근본적인 차이들이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의 대척점에 있는 진영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 나라 중에는 러시아, 중국처럼 영토가 넓고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강한 나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예속하고 간섭하지 않습니다. 서로 자주권을 존중하며 경제 협력은 하지만 경제의 자립성을 포기하고 남에게 의존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경제 규모로 세계 2위, 무역 규모로 세계 1위를 차지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다른 나라 경제를 장악하고 약탈하는 모습은 없습니다. 중국은 미국처럼 다른 나라에 특정 부문 예산을 증액하라고 요구한다거나, 특정 경제 정책을 도입하라고 강요한다거나, 관세를 무기로 거금을 투자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구 냉전이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었다면 신냉전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척점에 있는 중국이 다른 반미국가를 대표하거나 지휘하지도 않습니다.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등 각국이 서로 협력하면서도 각자 자기 국익에 따라 독자적인 판단과 군사, 외교, 경제 분야에서 미국의 횡포에 맞서며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냅니다.
구 냉전과 지금의 차이점이 또 있습니다. 당시에는 소련, 중국이 서로 사회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며 대립하고 견제했습니다. 심지어 1969년에는 국경분쟁까지 벌였습니다. 그리고 두 나라에 종속되지 않고 자주적인 태도를 보이는 북한을 두 나라가 각각 압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북·중·러가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며 협력합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2023년 중국에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사용권을 제공했습니다. 원래 연해주는 청나라 땅이었지만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러시아 땅이 되었습니다. 소련은 중국이 연해주에 중국인을 이주시킨 후 경제력으로 장악해 땅을 되찾으려 할 수 있다는 우려로 중국의 연해주 진출을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그런데 양국 관계가 발전하면서 신뢰가 쌓여 이제는 러시아가 중국의 연해주 진출을 허용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또 러시아와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하며 미국 책임론을 제기합니다. 지난 5월 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중정상회담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강압적 조치와 무력 압박, 동북아지역 군사화 정책과 대결을 유발하는 정책을 포기하면서 한반도 긴장을 줄이고 무력·군사 충돌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실질적 조처를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내용이 들어갔습니다. 대북 제재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 냉전과 지금의 국제질서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냉전이 아니라 다극화가 정확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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