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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0]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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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5-30 16:3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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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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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0]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 입문, 김일성-김정일주의 창시의 사상정신적 원천은 무엇인가?



[연재 10]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 입문

재미동포전국연합 편집국

 

김정은위원장이 제14기 최고인민위원회에서 국무위원장으로 재추대된 직후 4월 12일 역사적인 시정연설을 하였다. 온 세계가 이 연설에 주목하고 있다. 많은 재미동포들 또한 이 연설내용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며 김일성-김정일주의에 대하여 더 알고 싶다는 의견을 우리 편집국에 알려왔다.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김현환회장이 2016년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입문]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김일성-김정일주의>에 대하여 상세히 해설하였기에 편집국은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 책의 중요 내용을 다시 연재로 소개한다.  


 

 

김일성-김정일주의 창시의 사상정신적 원천은 무엇인가?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자기의 고유한 사상정신적 원천에 근원을 두고 창시되었다. 새로운 사상은 결코 빈터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해당시대의 사회역사적 조건에 기초하고 지난 시기에 존재한 사상들과 필연적인 연관관계를 맺으면서 창시된다. 선행한 사상을 토대로 하여 그것을 계승하고 혁신하는 과정 속에서 나오는 것은 사상의 발생발전에 작용하는 일반적 합법칙성이다.

 

인류의 사상사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사상이 어떠한 사상을 토대로 하는가 하는 것은 그 본질과 특징, 사상의 창시과정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된다. 시대와 역사발전을 힘있게 추동하고 민중의 심장을 억세게 틀어잡는 위대한 혁명사상은 그 사상정신적 원천에서도 다른 사상들에 비할바 없이 우월하다. 민족수난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웠던 망국의 초엽에 태어나 격변하는 내외정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의 첫걸음을 시작한 김일성주석은 어린 시절부터 토탄에 빠진 겨레의 고통을 체험하며 조국과 운명을 함께하고 민중과 희로애락을 나누는 길을 걸었으며 이 과정에 민중을 하늘처럼 여기는 <이민위천>의 사상을 지니고 남다른 애국, 애족, 애민의 넋을 키웠다.

 

김일성주석은 또한 어린 시절에 벌써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선구자였던 선친 김형직선생이 남긴 유산인 <지원의 사상과 정신>을 이어받았고 선행한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상과 이념에 공감하였다. 이로 인하여 김주석의 사상정신 세계는 혁명의 길에 나선 첫 시기부터 투철한 자주독립의 사상과 사회주의 사상, 열렬한 조국애와 민족애, 민중애의 넋으로 일관되고 고결한 인간애와 동지애가 흘러넘치는 한없이 숭고한 높이에 이르러 있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김주석의 이러한 숭고한 사상정신 세계를 원천으로, 바탕으로 하여 창시되었다.

 

지원의 사상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조선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지도자인 김형직선생의 혁명사상인 <지원의 사상>을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하는 혁명사상이다.

 

김정일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내놓으신 <지원>의 사상은 수령님에 의하여 주체사상으로 계승발전되었습니다.”

 

김일성-김정일주의가 김형직선생의 <지원의 사상>을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한다는 것은 그것이 김형직선생의 지원의 사상과 직접적인 사상이론적 연관을 가지고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흘러나온 혁명사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김형직선생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된 민족수난의 시기에 겨레의 운명을 구원할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역사의 초행길을 남먼저 헤치면서 조선민중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역사적 공헌을 하였다. 조선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지도자인 김형직선생은 종래의 낡고 진부한 타성을 대담하게 배격하고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이룩할 수 있는 새로운 투쟁노선과 방도를 제시하였으며 그 관철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불굴의 투쟁을 벌리다가 너무 일찌기 세상을 떠났다. 김형직선생은 민족해방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지닌 이상과 소망, 사상과 정신을<지원>이라는 소박한 두 글자에 담았으며 이것으로 혁명가들과 민중들을 깨우치고 조직하였다.

 

<지원>이란 문자그대로 뜻을 원대하게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높은 이상과 포부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김형직선생이 내세운 지원의 사상은 결코 그 어떤 세속적인 인생진리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었다. 지원의 사상은 민족해방의 길에 나선 김형직선생이 당시 국내외의 형편과 새로운 시대적 추세, 혁명운동의 교훈을 전면적으로 분석총화한데 기초하여 새롭게 내놓고 한평생 자신의 신념으로 삼은 고귀한 혁명사상이며 혁명정신이었다. 김형직선생은 왜 큰 뜻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하여 의병투쟁과 청원운동을 비롯화여 조선민중이 벌린 반일투쟁의 피어린 교훈과 결부하여 말하면서 문제는 나라를 찾겠다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온 나라 민중을 불러일으켜 원수를 물리칠만큼 힘을 키우는 것이며 마음만 굳게 먹으면 힘을 키울 수 있고 힘만 키우면 능히 강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 온 나라 백성들을 깨우치고 불러일으켜야만 국권을 회복할 수 있는데 이 일은 하루 이틀에 성취할 수 없기에 뜻을 멀리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직선생의 지원의 사상은 결국 개인의 인생의 성공을 위한 큰 뜻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혁명의 큰 뜻을 가져야 한다는 사상이며 그 뜻을 실현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과 방도, 견결한 투쟁정신을 다 담고있는 참으로 심원한 혁명사상이다.

 

김형직선생은 자주시대의 새로운 지도사상을 창시한 김일성주석의 부친이며 동시에 그를 혁명의 길로 인도하여준 스승이었고 혁명선배였다. 김주석은 바로 부친인 김형직선생의 지원의 사상을 자양분으로 삼고 성장하고 지원의 사상으로 혁명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에 자주시대의 가장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을 창시할 수 있었다. 김형직선생의 지원의 사상은 그 사상정신의 심오성과 숭고성으로 하여 영원히 마를줄 모르는 생명력을 가지고 자주시대의 혁명사상의 발전을 힘있게 추동하였다.

 

김정일위원장은 언제인가 일꾼들과 대화하면서 일찌기 김형직선생은 지원의 사상을 내놓았으며 김주석은 그 지원의 사상을 계승발전시켜 조선혁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고, 지원의 사상은 김주석의 대를 거쳐 김위원장 자신의 대에 이르렀다고 감동깊게 말하였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김형직선생의 탁월한 지원의 사상을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하여 창시된 혁명사상이며 이것으로 하여 지원의 사상의 숭고한 이념과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발전완성시킨 자주시대의 위력한 혁명사상으로 된다.

 

<지원>이 담고 있는 민족자주사상을 원천으로 하는 혁명사상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김형직선생의 지원의 사상에서 핵을 이루는 <민족자주사상>을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하여 창시되었다. 김형직선생은 조선의 반일민족해방투쟁사에서 처음으로<민족자주>를 <생명선>으로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다. 김형직선생의 한생은 조선민족 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기 위해 바친 한생이었다.  김형직선생이 밝혀준 민족자주사상을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자주의 원칙에 철저히 입각하고  인류 역사발전의 자주적 흐름을 주도해나가는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될 수 있었다.

 

김일성주석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 아버님께서는 일찌기 <지원>의 사상을 내놓고 우리들을 애국주의 사상, 민족자주사상으로 교양하시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생사존망과 관련된 가장 중대한 문제는 <민족자주>에 관한 문제이다. 자주를 떠나서는 민족의 존재와 발전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 <자주의 길>이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빛내이고 부강번영을 이룩하는 길이라면 사대와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 노예살이의 길이다. 그러므로 사상의 진보성은 그것이 나라와 민족의 자주적 발전의 길을 어떻게 밝혀주는가 하는데 따라 규정된다.

 

김형직선생이 민족해방투쟁의 길에 나섰을 때 조선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실태는 민족자주를 지향하는 새로운 사조의 출현을 목마르게 바라고 있었다. 당시 조선민중은 열렬한 애국심을 간직하고 반일민족해방투쟁에 나섰지만 실패와 좌절의 쓰라린 아픔만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원인은 바로 상층부의 사대주의와 외세의존적 입장에 있었다. 김형직선생은 혁명의 길에 나선 첫 시기에 조선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경험과 교훈, 국제혁명운동의 실태를 전면적으로 분석총화한데 기초하여 나라의 독립은 그 어떤 대국의 힘에 의탁하여서는 성취할 수 없으며 오직 우리 민족 자체의 힘으로 달성하여야 한다는 <민족자주사상>을 정립하고 그것을 꾸준히 신념으로 간직하였다.

 

김형직성생은 1910년 봄 경상골 병대마당(조선 봉건왕조 말기의 군대병영 앞에 있던 훈련장)에서 열린 운동회 뒤에 있은 웅변대회에서 조선이 문명국이 되자면 일본의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일부 학생들의 주장에 반기를 들면서 조선의 근대화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연설을 하여 군중의 이목을 한데 모은 사실은 선생의 민족자주정신의 뿌리가 얼마나 깊으며 그것이 얼마나 투철하고 열렬한 것이었는가를 잘 말하여주고 있다. 김형직선생은 폭넓은 안목과 통찰력을 지니고 시대적 흐름을 깊이있게 투시하면서 자신의 민족자주사상을 정립해나갔다.

 

그는 1916년 방학을 이용하여 해외독립운동과 중국혁명의 실태를 직접 요해한 것은 그 중요한 계기의 하나로 되었다. 그는 간도와 상해에 갔을 때 중국혁명은 군벌의 준동과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으로 일진일퇴의 심각한 곡절을 겪고 있었다. 중국혁명에서도 기본장애물은 미국, 영국, 일본을 비롯한 외세였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망명해 있는 적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은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환상에 포로되어 어느 대국의 힘을 빌어볼 것인가 하는 공리공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김형직선생은 간도의 실태를 통하여 조선은 조선사람의 힘에 의하여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는 신념을 더욱 굳게 간직하였다.

 

김형직선생은 민족자주, 자력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담아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조선독립은 누구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역사는 외세의존이 곧 망국의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그 어떤 외세의 힘도 바라지 말고 우리 2천만 민중의 단합된 힘으로 일제침략자들을 쳐물리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그가 지닌 철저한 민족자주사상의 빛나는 결실은3.1민중봉기를 전후한 시기 국내외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반일지하혁명조직의 하나였던 <조선국민회>의 결성이었다. <조선국민회>는 취지서에서 장차 미국과 유럽세력이 동양에 들어오고 일본이 그들과 패권을 다투게 될 시기가 닥쳐올 것은 명백하므로 그 기회에 조선사람 자체의 힘으로 조선독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동지들의 결속을 도모하며 그 준비를 진행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형직선생이 세계적으로 식민지민족해방투쟁 문제가 크게 성숙되지 않았고 더우기 민족자주, 자력에 대하여서는 감히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당시에 <민족자주>를 핵으로 하는 <지원의 사상>을 제시한 것은 반제민족해방투쟁에서의 커다란 사상적 전환을 예고한 것이었다. 그의 지원의 사상은 결국 나라의 독립을 조선민족 자체의 힘으로 달성할 원대한 목표를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해 힘차게 싸워나갈데 대한 <민족자주사상>이었다. 그는 나라의 독립은 외세의 힘을 빌려서가 아니라 조선민족 자체의 힘으로 이룩하여야 한다는 <민족자주사상>을 밝혀줌으로써 조선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앞길에는 자주적 발전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가 밝혀준 민족자주사상에 의하여 반일민족해방투쟁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고 있던 외세의존, 사대주의사상의 허황성이 다 들어나게 되자 민중들은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깊이 부식된 사대주의의 사상적 구속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었으며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앞길에는 밝은 빛이 비치게 되었다.

 

김형직선생의 지원의 사상에 관통되어 있는 민족자주사상은<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나라와 민족, 민중의 지향을 올바로 반영하고 자주의 길로 나아가는 시대의 흐름을 과학적으로 통찰한 것으로 하여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낳은 고귀한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되었다. 그의 지원의 사상, 민족자주사상은 김일성주석의 세계관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김주석이 자주시대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을 창시할 수 있는 확고한 토대로, 자양분으로 되었다.

 

김일성주석은 바로 김형직선생의 민족자주사상을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하여 조선사람 자체의 힘으로 나라와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룩하여야 하며 그러자면 혁명을 그 누구의 승인이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에 따라 자기가 책임지고 수행하고 혁명투쟁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참된 진리를 밝혀주었다. 김일성주석이 창시하고 김정일위원장이 심화발전시킨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자주성>을 나라와 민족, 민중의 생명으로 내세우고 혁명과 건설에서 민족자주의 원칙을 견지하는데 모든 것을 철저히 복종시켜 나가는 철저한 자주의 혁명사상이며 그 뿌리, 원천은 바로 김형직선생의 민족자주의 이념과 정신에 있다.

 

김형직선생의 지원의 사상과 뜻은 곧 민족자주를 지향하는 원대한 사상과 뜻이었으며 그것을 근본원천으로 창시된 것으로 하여 김일성-김정일주의는<자주>로 특징지어지고 <자주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될 수 있었다.

 

지원이 밝힌 민중중시사상을 원천으로 하는 혁명사상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김형직선생의 지원의 사상에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민중중시사상>을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하여 창시되었다. 김형직선생의 지원의 사상에서 민중중시의 사상은 민족자주의 사상과 밀접한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김형직선생이 민족 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본 것은 바로 민중, 광범한 무상대중의 힘을 믿고 그들을 독립운동의 주인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김일성주석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아버지는 반일민족해방운동 안에서 파벌싸움을 하여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없으며  오직 민중을 묶어세워가지고 그들의 힘에 의거하여 싸워야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혁명은 결코 한두명의 개별적인 사람들의 힘으로 수행할 수 없다. 오직 광범한 대중이 각성되어 궐기할 때에만 승리적으로 개척되고 전진해나갈 수 있다. 혁명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민중이며 민중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과 입장을 확립하는가 하는 것은 혁명운동의 성패와 관련되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김형직선생이 독립운동의 길에 나서시었을 때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독립운동단체들은 광범한 민중에 의거하여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려고 할 대신에 민중과 떨어져 파벌싸움만을 일삼거나 단순히 군자금이나 바쳐야 하는 대상으로 천시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독립운동의 실태에서 심각한 교훈을 찿고 3.1운동을 비롯한 거족적인 투쟁에서 발휘된 민중들의 무궁무진한 힘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데 기초하여 오직 무산대중만이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이룩할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굳은 확신을 간직하였다.

 

김형직선생이 본 민중은 지주, 자본가를 비롯한 착취계급이 아니라 사회의 최하층에서 온갖 천대와 멸시를 다 받으면서도 독립에 대한 열렬한 지향과 념원을 소중히 간직하고 민족해방투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나서는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무산대중이었다. 그는 이들을 선진사상으로 깨우치고 하나로 굳게 묶어세울 때 그 힘은 무궁무진하며 이 힘에 의거하여서만 나라의 독립을 민족 자체의 힘으로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김형직선생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조선을 독립하려면 영원히 마를줄 모르는 샘물과 같은 힘의 원천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힘의 원천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민족 자체의 힘이며 민중의 힘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철저히 민중을 위한 것으로 되어야 하며 민중의 힘에 의거하여야 합니다.”

 

김형직선생이 내놓은 민중중시의 사상은 지금까지 민중을 우매하고 무력한 존재로만 보면서 그들의 피땀을 짜내고 개별적인 몇몇 사람들에게 의거하는 방법으로 독립을 달성해보려고 하던 그릇된 견해와 투쟁방식을 반대하고 민족해방투쟁을 광범한 민중이 참가하고 그들의 힘에 의거하는 전민족적인 투쟁으로 전환시켜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김형직선생이 조선민중의 반일민족해방투쟁사에서 이룩한 큰 업적으로 되는 민족해방투쟁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시킬데 대한 방침도 바로 민중중시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김형직선생은 1919년 7월 청수동회의에서 무산혁명의 역사적 필연성을 논증한데 기초하여 8월 중국 관전현 홍통구에서 <조선국민회>의 각 구역장들과 연락원들, 독립운동단체의 책임자들의 회의를 소집하고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할데 대한 방침을 정식으로 선포하였다. 그가 내놓은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의 방향전환에 관한 방침은 광범한 무산대중에게 의거하여 민족의 자력으로 무산민중의 권익을 보장하는 새 사회를 건설할데 대한 탁월한 방침이었다. 그는 무산혁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늘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쌀을 주고 입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옷을 주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소박하게 표현하면서 실천활동을 통하여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민중을 선진사상으로 깨우쳐주었으며 각종 대중단체들을 조직하고 그 조직들을 확대하여 그들을 하나의 혁명역량으로 조직해나갔다.

 

 김형직선생이 무산혁명에 관한 방침을 제시할 수 있었던 근본요인은 사회주의 10월혁명이 승리한 후 간직한 사회주의사상에 대한 공감, 특히 이를 계기로 간직한 민중중시의 사상관점에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 10월혁명에서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무산대중이 일어나 무산대중이 잘 사는 새사회를 건설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으며 조선에서도 민중을 불러일으켜 민중의 새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그의 <지원의 사상>은 결국 민중을 독립운동의 힘있는 주인으로 보고 그들을 각성시키고 조직하여 자주독립의 힘을 마련할데 대한 민중중시의 사상이었다.

 

독립운동을 지도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광범한 대중의 힘을 믿지 않고 외세에 의존하여 나라의 해방을 달성하려고 헛된 꿈을 꾸고 있을 때에 김형직선생이 밝힌 지원의 사상, 민중중시 사상은 무산대중에 대한 전혀 새로운 관점과 입장을 확립하고 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에 의거하여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수 있는 전환점이었다.

 

투철한 민중중시의 사상을 간직하고 있던 김형직선생은 어린 김일성주석이 언제나 자기 민중을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며 민중의 힘을 절대적으로 믿는 확고한 입장과 관점을 확립해나가도록 혁명적 영향을 주고 실천 속에서 단련시켰다. 김형직선생이 12살의 어린 나이의 김주석이 배움의 천리길을 걷도록 한 것은 김주석이 자기 조국, 자기 민중을 잘 알고 민중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민중을 위해 충실히 복무하는 마음을 간직하도록 하려는 웅심깊은 뜻에서였다. 김일성주석이 아버님인 김형직선생이 밝혀준 민중중시사상을  가슴 속 깊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기에<이민위천>을 자신의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처음부터 민중 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을 조직동원하는 새로운 혁명의 길을 열어나갈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민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민중에게 있다는 철리를 밝히게 되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민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내세우고 민중의 혁명적 열의와 창조적 적극성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민중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될 수 있은 것은 중요하게 김형직선생이 김주석의 심중에 민중중시의 사상을 뿌리깊게 심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김형직선생의 지원의 사상은 곧 무산대중을 독립운동의 주인으로 보고 그에 의거하는 민중중시의 사상이며 지원의 사상을 사상정신적 원천으로 하였기에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민중중심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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