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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178] 전쟁에서 러시아가 지고 있는가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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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6-01 17:1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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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178] 전쟁에서 러시아가 지고 있는가②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5월 24일 서울 


들어가기에 앞서

지난 1주 동안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버티던 아조우연대가 전원 항복했다.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5월 20일 “항복한 아조우와 우크라이나군 소속 나치는 모두 2,439명”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동남부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계속 높여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남부지역을 공략하는 중이다.

한편 인도네시아 언론 트리뷴뉴스는 5월 21일 아조우스탈 공장에서 4명의 나토 교관이 항복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전직 미 특수작전사령부 제8사령관 에릭 올슨, 나토 연합지상사령부 사령관인 미 육군 중장 로저 클루티에, 캐나다 육군 사령관 트레버 카디외, 영국 중령 존 베일리(영국군이 아니라 미 해군 보안작전본부장이라는 주장이 있음)다. 상당한 고위급 인사들이다.

인터넷엔 에릭 올슨으로 추정되는 사진도 돌아다니고 있다. 반면, 에릭 올슨이라고 추정되는 사진의 정보를 보면 5월이 아니라 4월에 촬영되었다며, 에릭 올슨이 사로잡힌 것은 가짜뉴스라는 반박도 있다. 나토 고위 장교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에 대해서 미국과 나토, 러시아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바 없다. 만약 사실로 드러난다면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 전쟁연구소가 밝힌 5월 22일 전황

 

▲(좌)에릭 올슨 전 사령관 (우)인터넷에 회자되고 있는 사진. 앞에서 두번째가 올슨 전 사령관이라고 지목된 인물






(아침햇살177https://615tv.net/402에 이어서)


3. 미국과 서방의 자본주의 체제 파괴

미-러 전쟁은 미국과 서방의 자본주의 체제를 파괴하고 있다.

1) 경제

미국은 돈이 최고의 가치인 나라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 제재를 통해 러시아 경제를 파괴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막상 전쟁이 나자 러시아 경제는 오히려 나아지고, 미국과 서방의 경제가 파괴되고 있다.

영국 언론 이코노미스트는 5월 13일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기록적인 무역흑자를 달성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지난 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수출액이 8% 증가한 반면 수입액이 44% 감소하면서 무역흑자가 급증한 것이다. 국제금융협회는 2022년 러시아의 무역흑자가 2,500억 달러(약 321조 원)로 2021년 1,200억 달러(약 154조 원)의 2배가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러시아가 에너지 수출로 하루에 10억 달러(1조 3천억 원)씩 벌어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방세계가 대러 제재를 한다지만 석유 및 가스 수출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러시아의 수출액이 증가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러시아가 경제제재로 인한 수입 감소로 생필품 부족 등 경제위기를 겪고 있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5월 11일 일본 ANN 방송과 인터뷰한 러시아 사할린 주민들은 “영수증의 가격은 한 달 반 전이랑 똑같다. (경제제재의 영향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괜찮다. 모든 걸 보통 때처럼 살 수 있다”라고 입을 모았다. 러시아는 원자재가 풍부하고 식량자급률이 100%가 넘으며 밀 수출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의 식량수출국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버티는 게 가능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처음 취임한 2000년 식량의 50%를 수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창백해져서 그 이후 식량안보 증진을 목표로 농업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미국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자 러시아 자국산 상품이 등장하는, 러시아로선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만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모스크바타임스는 5월 16일 코카콜라가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자 러시아 음료업체가 콜라와 사이다를 출시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비슷하게 맥도날드가 영업을 중단하자 ‘엉클바냐’라는 햄버거 업체가 생겼다는 소식도 전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를 제재하겠다며 엄포를 놓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이 대러 에너지 제재안을 발표했지만,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반발에 부딪혀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금지하려 했다. 그러자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이 러시아가 아니라 자기 나라의 에너지 안보를 파괴한다며 자기들을 대러 제재에서 면제해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유럽연합이 러시아산 원유 수송을 금지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그리스, 몰타 같은 주요 해운업 국가들이 반발했다.

단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유럽연합 차원의 제재를 결정할 수 없다. 그래서 유럽연합의 러시아 에너지 제재는 실현되지 못할 전망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러시아의 자산을 동결하자 러시아 정부는 앞으로 천연가스를 구매하려면 러시아가 지정한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 입금하라고 선언했다. 유럽연합은 전쟁 초기 이 행위를 제재 위반이라고 규정하고 막았다. 하지만 5월 13일 유럽연합은 러시아가 지정한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거래 대금을 지불하는 것을 “제재를 준수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한편, 미국과 유럽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미국의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3월 8.5%, 4월 8.3%로 집계됐다. 유럽은 3, 4월 연속 7.5% 상승했다. 영국은 4월 9%에 달해 4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성장률도 저조하다. 미국은 2022년 1분기 경제성장률 –1.4%로 경제가 하락했다. 독일 0.2%, 프랑스 0%, 이탈리아 –0.2%로 유럽 나라들도 경제 성장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반면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3월 말 기준 경제성장률이 1.6% 증가했다고 밝혔다. 월별로는 1월 5.8%, 2월 4.3% 증가했고 3월은 2월보다 1% 감소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경제가 침체하는데 물가는 가파르게 상승하면 민생이 파탄 나기 마련이다. 알리안츠의 모하메드 엘-에리안 고문은 5월 11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생계비 위기를 우려하게 되는 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국내 언론은 서방세계가 겪는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 같은 반미국가들에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그 심각성을 매우 강조해서 보도하는 것과 영 딴판이다.

물가상승률 7~9%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실업자가 폭증했던 1998년 IMF 사태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5.1%, 소비자물가상승률은 7.5%였다. 오늘날 서방세계의 경제지표는 결코 가볍게 볼만한 게 아니다.

실제로 서방세계는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가.

영국을 살펴보자.

중앙은행인 영국은행 총재 앤드루 베일리는 5월 17일 식량 가격이 급등한 것에 대해 “종말론적(apocalyptic)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는 조사 결과 영국인의 1/4가량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식사를 거르거나 식사량을 줄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영국의 비영리 상담기구 CA(Citizen Advice)의 최고경영자 데임 클레어 모리어티는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식사를 거르고, 온수 샤워를 할 수 없어 부엌 싱크대에서 간단히 씻는 등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5월 18일 기사 <미국선 “집 구입 미뤄” 독일선 “전기요금 30% 올라” 세계가 고물가 신음[돌아온 인플레이션 ②]>에서 미국과 독일의 실태를 소개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사는 김 씨는 “예전에는 휘발유가 1갤런(약 3.8L)당 3달러(약 3,800원)도 되지 않았는데 요즘은 거의 5달러(약 6,400원)까지 가격이 올랐다”라고 말했다. 같은 주에 사는 정 씨는 “음식점에선 예전에 15달러(약 1만 9,000원) 정도 하던 메뉴들이 20달러(약 2만 5,000원) 이상으로 오른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에 사는 정 씨는 “마트에 가면 매장 선반에 식용유, 밀가루가 없다. 카운터에 가서 ‘식용유 있냐’고 물어봐야 하고, 1인당 1개밖에 살 수 없다”라고 말했다. 역시 베를린에 거주하는 박 씨는 “케밥이 4.5유로(약 6,000원)였는데 현재 6유로(약 8,000원), 베트남 음식점에서 파는 쌀국수도 7.5유로(약 1만 원)에서 9.5유로(약 1만 2,700원)로 올랐다”라고 이야기했다.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은 1930년대 세계대공황과 비견할만하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85%인데, 이는 세계대공황 정점 때 기록한 299%와 맞먹는다는 것이다. 세계대공황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1.5%에서 2.5%로 올렸다가 경제를 수렁으로 빠뜨린 바 있다. 현재 미국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상하려다 세계대공황 때처럼 경제 파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한다.

2) 정치

미국의 정치력이 흔들리면서 서방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

앞서 살펴봤듯 러시아 경제제재를 두고 유럽이 서로 이견을 드러내며 분열하고 있다. 최근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신청을 두고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던 핀란드와 스웨덴 정부가 나토 가입을 신청하자 미국은 지지했지만, 터키와 크로아티아가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나토는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일 수 있다. 만약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무산되면 두 나라는 러시아와의 관계만 악화시킨 꼴이 된다. 실제로 러시아는 5월 21일 부로 핀란드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국에 엇서고 있다. 미-러 전쟁으로 기름값이 뛰자 미국이 석유 증산을 요청했는데 사우디가 거절한 것이다.

더 나아가 사우디는 중국과 위안화로 석유를 거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은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하는 체제를 구축해놓았다. 미국은 이 방법으로 달러의 가치를 보장해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위안화 석유거래가 허용되면 달러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지난 4월 CIA 국장을 비밀리에 사우디로 보내 관계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또 대표적인 친미 국가 이스라엘은 미국의 대러 제재에 불참하고 있다. 그 결과 워싱턴포스트 5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러시아 부호들이 재산을 지키기 위한 도피처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동맹체 쿼드의 핵심국인 인도는 아예 제재 국면을 틈타 러시아 원유를 싼 가격으로 사들여 국익을 도모하고 있다. 미-러 전쟁 발발 후 2개월 동안 인도가 사들인 러시아산 원유의 양은 2021년 인도가 사들인 러시아산 원유의 2배가 넘는다.

이처럼 미국은 세계적으로 대러 전선을 구축하려 하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한편 미국은 국내 정치 상황도 혼란에 빠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5월 20일 AP통신이 보도한 여론조사에서 39%를 기록해 최저치를 경신했다. 반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2021년 11월 63%에서 2022년 3월 83%로 껑충 뛰었다. 미-러 전쟁으로 미국의 정권은 위기에 빠지고 러시아 정권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3) 누가 승기를 잡았나

종합하면 미-러 전쟁을 거치며 러시아 체제는 승승장구하는 반면 미국과 서방의 체제는 파괴되고 있다. 앞으로 군사·경제적 대결에서 특별히 달라질 요소가 없으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경향성이 커질 것이다.

러시아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일찌감치 미-러 전쟁을 끝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러시아가 왜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내지 않아 피해를 늘리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전쟁이 지속될수록 서방세계가 더 큰 고통을 겪는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은 5월 9일 러시아 전승기념일 행사에서 “러시아는 2차 대전이 끝난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끊임없는 안보상 도전을 받고 있다”라며 “조국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시사”했다고 그 의미를 분석했다.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DNI) 국장 또한 5월 10일 “우리는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를 넘어서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나 같이 러시아가 전쟁이 길어지길 바라고 있을 거라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5월 9일 “푸틴 대통령이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출 방법이 없어 걱정된다”라며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 전쟁을 멈출 명분이 필요한데 우리는 이에 대해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쟁을 끝내고 싶은 건 미국 자신이면서 마치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한다. 자존심을 세우느라 허세를 부리는 전형적인 양아치 어법이다.

현재 미국이 전쟁을 끝내자고 먼저 손을 내미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5월 13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통화하여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한 것이다. 1시간 반 동안 통화했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스틴 국방장관이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고 러시아가 이에 합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볼 만하다. 원래 지는 쪽이 먼저 싸움을 끝내길 바라기 마련이다. 그래서 먼저 휴전을 제안하는 쪽이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곤 한다. 이처럼 미국이 러시아에 휴전을 제안했으면 미국이 러시아의 요구 조건을 맞춰주게 될 공산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 전쟁을 멈출 명분”을 찾고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미-러 국방장관 통화에서 러시아가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휴전 제의를 거절했을 뿐 요구 조건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치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지 않고 시간을 끄는 듯한 모습이다. 시간을 끌수록 고통스러운 건 미국과 서방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보다.

한편 흥미로운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동안 오스틴 국방장관은 통화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러시아가 매번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5월 13일 겨우 통화가 이뤄진 것이다. 이에 미국은 왜 러시아가 갑자기 전화를 받았는지 의문을 품고 그 의미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미국의소리 방송은 5월 15일 미국 정보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최근 전황과 관련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국가 간 관계에서 전화를 걸면 받는 게 당연하고 안 받으면 이상한 게 아닌가? 그런데 미국은 러시아가 전화를 받으면 받았다고 그 이유를 분석한다.

미국은 러시아 전승절인 5월 9일 푸틴 대통령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했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선언하며 총동원령을 내리거나 서방세계를 핵공격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다는 “폭탄발언”을 할 것이라는 예측을 쏟아내며 전전긍긍했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전쟁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영국 더 타임스는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가 말하지 않은 것에 있다”라며 그것조차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분석했다.

미국과 서방세계가 이렇게 러시아의 눈치를 보며 행동 하나하나를 예민하게 분석하는 건 그만큼 수세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최근 무시당하는 게 일상다반사다. 미국은 북한에 매일 같이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하지만, 북한은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도 미국의 전화를 무시한다. 한때 미국은 자기 말이면 무조건 관철되고, 상대방이 거부하더라도 힘으로 밀어붙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던 미국이 이제는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없고 상대방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인 삶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4. 주목되는 점

미-러 전쟁 전황은 한반도 주변 정세와도 연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 북한과 중국

5월 6일 중국은 9월 10~25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개최일은 추후 발표하겠다고 한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는 코로나19 상황 악화를 연기 사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는 석연치 않다.

아시안게임은 아직 4개월이나 남았다. 그리고 연기를 발표한 5월 6일 개최지 항저우의 코로나 확진자 수는 2명이었다. 항저우가 속한 저장성으로 확대해도 저장성의 5월 7~20일 사이 코로나 신규확진자 수는 총 8명이다. 저장성의 규모와 인구가 대한민국에 맞먹는다는 걸 생각하면 매우 적다. 중국은 올해 2월 코로나 상황에서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다. 그러니 중국이 코로나 때문에 아시안게임을 연기했다는 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대체 왜 중국이 아시안게임을 연기한 것일까?

이쯤에서 미-러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를 돌아보자. 올해 2월 4일부터 20일까지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진격하기 시작한 건 2월 24일이다. 그래서 러시아가 중국을 배려해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이 아시안게임을 연기한 것에도 군사적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아시안게임 때문에 전쟁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피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이 대만과의 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상황이 조성되면 실제 군사행동을 할 생각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고 보면 최근 중국의 군사 행보도 의미심장하다. 5월 12일 왕신룽 대만 국방부 부부장은 중국의 공격용 헬기 우즈-10이 대만해협 중간선 경계를 넘어 비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최근 행보도 심상치 않다. 북한은 5월 4일, 7일, 12일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은 통상 미사일을 발사한 다음 날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도하지 않았다.

그동안 북한은 미사일 발사에 대해 흔히 ‘시험발사’를 했다고 밝혀왔다. ‘시험발사’란 미사일이 잘 작동하는지 점검했다는 의미다. 또한 북한의 ‘시험발사’는 위력 시위의 성격이 강했다.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에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위력 시위의 경우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해야 더 큰 효과를 얻는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보도하지 않는다. 여기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첫째는 위력 시위나 점검이 아니라 신기술 개발 차 미사일을 발사했을 경우다. 이런 경우 북한은 자신이 어떤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시험을 했는지 굳이 알려줄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 분석에 따르면 이번에 발사된 것은 순서대로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초대형방사포였다. 이미 개발된 무기들이다.

둘째로 이번 미사일 발사가 실전의 성격에 가까웠을 경우다. 이 경우 북한이 설정한 군사적 목표를 이루면 그만이기 때문에 일부러 보도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으로선 지금이 더욱 위협적인 상황일 수 있다. 위력 시위라면 경고의 의미에 그치지만 지금은 북한의 의도를 알 수가 없으므로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한국군 관계자는 5월 16일 “군은 북한이 단기간에 핵실험을 벌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비하고, 북한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의도를 모르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하는 처지에 빠진 것이다.

미-러 전쟁 초기 북한과 중국이 동시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는 예측이 있었다. 미국이 러시아를 상대하느라 여력이 없을 때가 북한과 중국으로선 군사행동을 벌일 절호의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현재 러시아가 날이 갈수록 더 큰 승리를 거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중국이 실전 성격의 군사행동을 하는 것을 가볍게 보아선 안 될 것이다.

2) 미국이 참전할 수 없는 이유

미국이 미-러 전쟁에서 할 수 있는 군사행동 단계를 4단계로 분류해보자.

현재 미국은 직접 개입하지 않고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하는 데에 머무르고 있다. 이 수준을 1단계라고 하자. 무기를 지원하고 정보를 줘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공격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이 교관을 보내 우크라이나군을 훈련하고 지휘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러시아군에 어느 정도 피해를 주는 게 가능하지만, 전쟁에서 이기기는 어렵다.

2단계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투입해 직접 러시아군과 싸울 수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군을 물러가게 하려면 미군이 직접 참전하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3단계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것이고 마지막 4단계는 아예 모스크바 공격에 나서는 것을 상정해볼 수 있다.

현재 군사력을 비교해볼 때 미국이 3~4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러시아가 이 정도로 몰리면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지도 모른다.

미국이 2단계까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은 우크라이나 영내에서 군대가 충돌하는 정도로는 러시아가 미 본토를 핵으로 공격하진 않을 거라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서방세계 입장에서 위험성이 없는 건 아니다. 미국은 당연히 나토 이름으로 참전할 것이고 러시아는 나토가 참전하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이미 경고했다. 따라서 미국이 2단계에 들어가면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핵공격을 받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유럽은 큰 피해를 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그런 걸 신경 쓰는 나라가 아니다. 자기가 다치지 않으면 그만이다. 마이클 허드슨 미주리대 명예교수는 3월 25일 미국 매체 카운터펀치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지도층은 핵전쟁이 나도 자신들은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은 무사할 거라고 믿는 미국 지도층은 2단계를 결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핵전쟁이 발발하면 그 파장이 북한과 중국에 미칠 수 있다. 러시아와 서방세계 간 핵전쟁이 발발하면 북한과 중국이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 북한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공격하고,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수 있다. 서방세계 대 북·중·러의 3차 세계대전이 촉발되는 것이다.

미국은 미-러 전쟁만으로도 벅찬데 북한과 중국이 가세한 3차 세계대전까지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미국은 2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결국 2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끔 미국을 막고 있는 건 북한과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미-러 전쟁에 직접 참전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미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근본적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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