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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17] 미국을 몰락시키는 건 북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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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10-20 10:2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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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17]  미국을 몰락시키는 건 북한이다


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10월 20일 서울 

몰락하고 있는 미국

 

소련이 해체되자 많은 이들이 미국의 승리라고 얘기했습니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에서 자본주의가 최종 승리했다며 “역사는 끝났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진보 인사였던 리영희 선생은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들의 이기적 욕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소련이 망했으니 미국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2010년대까지도 유지됐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미국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어느새 미국이 몰락하고 있다는 주장이 대세가 됐습니다. 이런 방향 전환은 어떻게 일어난 걸까요?

 

외부에서 가만히 놔뒀는데 미국이 스스로, 저절로 몰락하는 건 아닙니다. 소련 붕괴 후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거부하고 정면승부를 건 것은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합니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을 몰락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사회주의로 자본주의를 때리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소련을 계승하면서 사회주의를 포기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착각하지만 러시아는 분명한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지만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요소를 전면에 도입해 사회주의 색채가 많이 변질됐습니다. 경제 분야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가장 큰 차이는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를 착취계급으로 규정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봅니다. 그러나 중국과 베트남은 자본가를 인정합니다. 

 

중국은 1970년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사기업을 육성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중국에서 사기업은 국내총생산의 60%, 도시 고용의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2년 11월 중국공산당 16차 당대회에서 비준된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은 자본가를 인정하고 당 가입을 허용하자는 내용입니다. 이에 따라 자본가들이 중국공산당에 대거 입당했고 또 공산당원들이 기업가로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2022년 기준 전체 중국 기업가의 약 30~35%가 당원이라고 합니다. 

 

베트남 역시 1986년 베트남공산당 6차 전당대회에서 도이머이(쇄신)를 기치로 내걸고 개혁개방에 나섰습니다. 베트남은 1990년대 초 1만 2천여 개였던 국영기업을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를 주식회사로 전환했습니다. 2000년부터 사기업의 성장이 두드러져 2018년 기준 약 70만 개의 사기업이 베트남 경제를 이끌고 있으며 이 가운데는 빈(Vin) 그룹 등 재벌급 기업들도 있습니다. 현재 베트남의 전체 국내총생산 가운데 국유경제 부문은 30% 이하이며 외국인 투자 부문은 20%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처럼 중국, 베트남은 이미 자본주의 요소가 사회에 깊이 파고들어 자리 잡았습니다. 중국, 베트남에 다녀온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회주의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중국, 베트남의 경제 성장은 사회주의의 성과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성과로 인식됩니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가 됐고, 중국과 베트남은 자본주의화했는데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 나라는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수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북한은 ‘붕괴한 것은 기회주의이며 사회주의의 승리는 과학’이라면서 오히려 사회주의 원칙을 전면에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이행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했기에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북한, 대미 강경 노선을 걷다

 

냉전 후 러시아는 미국과 타협하려 했습니다. 2000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는 나토에 가입하고 싶다고 제안했지만 미국이 거절해 무산됐습니다. 지난 10월 2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발다이 국제 토론 클럽 연례회의에 참석해 당시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는 냉전이 끝나고 사회주의 체제도 버렸기 때문에 당연히 서방이 러시아를 포용하리라 기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방은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 지정학적 이익만 따졌기 때문에 러시아를 배척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도광양회’를 외교 방침으로 삼았습니다. 도광양회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뜻으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받아들이고 결코 미국을 앞서려 하지 않는 정책입니다. 실제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도 중국은 미국의 요구사항을 상당 부분 수용했습니다. WTO 가입 자체가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에 편입되는 것입니다. 

 

1999년 5월 7일 코소보 전쟁 과정에서 미군 전략폭격기가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의 중국 대사관을 폭격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중국인 3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했습니다. 대사관 폭격은 그 나라 영토를 공격한 것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오폭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수많은 중국인이 미국 대사관 주변에서 항의 시위를 했고 심지어 총영사관에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미국은 피해자에 ‘자발적·인도적 지원금’을 줬고 대사관 시설 피해를 보상해 줬으며, 중국도 중국에서 발생한 시위로 인한 미국 대사관의 시설 피해를 보상했습니다. 

 

이처럼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항상 저자세로 굴복했습니다. 

 

베트남은 미국과 무려 15년이나 전쟁을 했지만 1995년 수교를 단행한 후 관계를 개선하고 2010년대 들어 중국 견제를 위한 공동 전선을 구축했습니다. 2016년 5월 23일 미국-베트남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살상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전면 해제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베트남을 무장시켜 중국을 압박하려는 미국의 구상에 따른 것입니다. 실제로 베트남은 2016년 8월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 사거리 150킬로미터 미사일 발사대를 배치하는 등 중국 견제에 나섰습니다. 또 2018년에는 중국의 모바일 결제 플랫폼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2023년에는 미국과 베트남이 외교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하며 중국 견제 기반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사실 베트남은 영유권 분쟁을 빼면 중국과 대립할 이유가 없는 나라입니다. 오히려 경제 관계를 놓고 보면 중국이 최대 수입국이자 2위 수출국이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중국 포위망을 형성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말려들어 중국 봉쇄에 동참했습니다. 

 

러시아, 중국, 베트남은 혈맹이었던 북한을 고립하는 데도 미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특히 이들은 북한이 가장 어려웠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미국의 북한 봉쇄에 편승해 대북 제재를 찬성하고 북한의 경제 지원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도 북한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미 초강경 노선, 정면돌파 노선을 고수했습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나자 다음 날인 3월 1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요구한 것은 민수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란 것이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2019년 연말에 열린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도 “미국의 본심을 파헤쳐본 지금에 와서까지 미국에 제재 해제 따위에 목이 매여 그 어떤 기대 같은 것을 가지고 주저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얼핏 들으면 ‘민수경제와 인민 생활을 위해 미국과 타협하려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는 평가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는 타협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연막작전이며 미국을 속인 것입니다. 반세기 넘게 미국과 대결하면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가장 강경하게 주장해 온 북한이 갑자기 타협을 이야기할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연막작전을 통해 북한은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해 비핵화를 하려고 했는데 미국이 억지 주장을 하는 바람에 협상이 깨졌다’는 명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핵개발을 한 북한 대신 억지 주장을 하는 미국을 규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북한의 핵보유는 미국이 자초한 일로 미국 책임이라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그리고 이걸 북중, 북러, 북-베트남 관계 개선의 지렛대로 활용했습니다. 

 

이건 어찌 보면 세계사적인 외교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자 한 언론인이 북한의 외교가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북한의 외교술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마도 2019년 연막작전이 그 최고봉이라 하겠습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where It Happened)을 보면 2018년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처음 만났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질문이라면서 “진심으로 정말 현명하고, 매우 비밀스럽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라며 극찬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치인들은 배우와 같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한 것인데 이처럼 북한은 미국을 대놓고 속였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서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낚였다”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북한에 낚여 자신들에게 엄청나게 유리했던 북한의 하노이 제안을 스스로 걷어참으로써 큰 낭패를 보게 되었습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전 차관보는 “북한의 제안을 수용했어야 한다”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당당히 거절할 확고부동한 명분을 얻었습니다. 북한이 미국을 갖고 놀기 위해서 완벽한 연극을 짰고 미국은 여기에 완전히 걸려든 것입니다. 

 

여러 미국 언론과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속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 역시 “트럼프도 별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속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앙일보는 2018년 7월 19일 자 칼럼 「트럼프 ‘거래의 기술’ 왜 힘 못 쓰나 … 북한 협상의 불패 신화」에서 “미국은 북한과의 교섭에서 이긴 적이 없다”라고 한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의 발언을 인용하며 북한의 협상술이 “불패의 신화”라고 평가했습니다. 

 

1998년 금창리 사건도 비슷했습니다. 북한이 금창리에서 대규모 지하시설 공사를 하자 깜짝 놀란 미국은 사찰을 요구했습니다. 북한은 핵시설이 아니라며 사찰을 거부하면서 대신 3억 달러의 참관료를 내고 구경하는 건 허용하겠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비밀 핵개발을 하는지 꼭 알아야 했던 미국은 결국 3억 달러어치의 식량을 참관료로 내고 문제의 ‘금창리 지하 시설’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땅굴이었습니다. 미국은 이 정체불명의 지하 시설을 만드는 데 10년 이상 걸렸을 것으로 추정했고 규모나 형태, 시설을 볼 때 어떤 용도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수수께끼라고 털어놓았습니다. 

 

2019년의 연막작전은 금창리 2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북한이 얻은 성과를 생각해 보면 이게 금창리 사건을 능가하는 최고봉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북미대결 과정을 거치며 세계에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아부할 게 아니라 초강경으로 대하며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졌습니다. 실제로 러시아, 중국 등이 이 노선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러시아는 미국이 합의를 깨고 나토를 동진시키는 동안 항의만 할 뿐 실력 행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4년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전쟁 지원을 시작으로 더 이상 참고 당하지만 않겠다는 것을 힘으로 보였습니다. 그래도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지 않자 2022년 전면전으로 대응했습니다. 한때 나토 가입을 추진할 정도로 미국과 타협하려 했던 러시아가 대미 강경 노선으로 선회한 것입니다. 지금도 러시아는 미국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협상하지만 조금도 밀리거나 타협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도 미국의 무역 전쟁에 맞서 도광양회 노선을 버리고 대국굴기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고 불이익을 줘도 항의만 할 뿐 실질적 대응을 자제하며 대립을 피했지만 지금은 미국이 하는 만큼 똑같은 대응을 하면서 대결합니다. 이번에 미국이 관세를 인상하자 중국도 똑같은 비율로 관세를 올린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북한, 선군정치로 미국을 치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선군정치를 전면화했습니다. 선군정치란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삼는 정치방식입니다. 

 

선군정치라는 용어는 1997년에 처음 등장했다고 하지만 군대를 앞세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는 북한의 전통이고 특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련 붕괴 후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위기 극복을 위한 임시방편으로 도입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북한의 뿌리인 항일무장투쟁 때도 군대를 먼저 만들었으며 유격대 활동이 선봉이고 중심이었습니다. 여기에 전민항쟁이 따라오고 결합하는 노선이었습니다. 이것도 선군노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45년 해방 후에도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을 창설했고 9월 9일 정부를 수립하는 등 군대를 중요하게 여기고 군대 문제를 무엇보다 먼저 다뤘습니다. 북한군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더 강해졌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군대를 자본가 계급을 위해 노동계급을 억압하는 폭력 수단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 후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기에만 일시적으로 필요할 뿐 궁극적으로는 사라져야 할 존재로 여겼습니다. 또한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지 않고 오히려 경제 발전에 필요한 막대한 재정, 인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비생산적, 소비적 존재로 봤습니다. 

 

소련은 북한이나 중국과 달리 군대를 ‘당의 군대’가 아닌 ‘국가의 군대’로 규정했습니다. 다만 군 정치위원을 통해 공산당이 군대를 통제했습니다. 그러다 소련의 마지막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고르바초프가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군대 규모를 줄이고 특히 ‘군대의 중립’을 표방하며 정치위원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그리하여 서방에서조차 미군보다 더 강력하다고 평가하고 심지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대’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소련군은 순식간에 허물어졌습니다. 

 

소련이 해체되고 경제위기에 빠진 러시아는 무기를 보관할 돈도 없어서 결국 군함, 잠수함, 전차를 고철 가격에 서방 기업과 일본에 팔아 치웠습니다. 심지어 전략 무기인 핵잠수함도 팔아 치웠습니다. 당시 전차 한 대가 자동차보다 더 싸게 거래됐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빚 갚는 대신 무기를 줬습니다. 

 

그랬던 러시아가 북한의 선군정치를 보고 다시 군사력 강화에 나섰습니다. 여러 최신 전략 무기를 개발했고 재래식 무기도 대대적으로 개량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과 유럽의 최신 무기를 지원받은 우크라이나군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소련의 마지막 원수이자 국방부장관을 지냈던 드미트리 야조프는 1985~2006년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인물입니다. 야조프는 소련 해체를 막기 위해 쿠데타를 했다가 실패했지만 1994년 사면되었고 1998년부터 러시아 국방부 국제군사협력본부 주임군사고문을 맡았습니다. 아마 이때 북한에서 선군정치를 배워서 러시아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도 군대에 자본주의 바람이 들어 내부에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중국은 국방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이에 따라 군대가 자금 마련을 위해 시장 경제 활동에 적극 뛰어들었습니다. 인민해방군은 식당, 가라오케 등 소규모 서비스업부터 호텔 경영, 의류·차량·항공기 제조업 등에도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밀수에도 개입한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장쩌민 국가주석이 1998년 군대에 상업 활동 금지 명령을 내리고 밀수 근절 투쟁에 적극 참여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2001년 4월 1일 미군 정찰기 EP-3이 중국 영공을 침범했다가 중국군 전투기와 충돌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중국군 전투기는 바다에 추락했고 미군 정찰기는 하이난섬 중국군 공군기지에 비상착륙했습니다. 미국은 자국 병사와 정찰기를 보내라고 요구했고 이에 중국은 미국의 사과를 받고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북한은 1968년 영해를 침범한 미국 정찰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뒤 미국의 항의에도 끝내 돌려주지 않고 지금까지도 반미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1969년에는 영공을 침범한 미국 조기경보기 EC-121을 격추해 동해바다에 수장시켜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중국의 모습과 비교됩니다. 

 

이처럼 미국에 굴욕적이었던 중국 인민해방군이 시진핑 정부 들어 대대적인 개혁의 칼을 빼 들었습니다. 2012년 심화 국방·군사 개혁으로 공산당의 군 통제력, 중앙의 지역(군구) 통제력을 강화했습니다. 또 2016년 군대의 영리활동을 전면 금지해 그때까지도 지속되던 상업 활동을 실질적으로 중단시켰습니다. 또 항공모함을 취역하고 각종 미사일과 차세대 전투기를 개발해 지금은 미국을 추월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렇게 인민해방군은 미국도 함부로 전쟁을 하지 못할 정도의 강군이 되었는데 이 역시 선군정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북·중·러가 각각 미국의 군사력을 압도하는 수준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북한, 대미 연합전선을 구축하다

 

북한은 미국과 손을 잡고 대북 제재에 동참하던 러시아, 중국을 돌려세워 대미 연합전선을 구축했습니다. 반미국가들을 분열시켜 하나씩 공략하려던 키신저 전략을 완전히 파탄시킨 것입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앞선 글 「[정조준215] 북한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의 변화」를 참고하면 됩니다. 

 

이번 북한의 당창건 80주년 열병식 과정에서 북한을 중심으로 러시아, 중국, 베트남이 손을 잡고 단결한 모습이 나왔습니다. 이는 지난 8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을 백악관에 불러들여 회의한 모습과 비교됩니다. 당시 사진이 유럽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는데 보기에 따라서는 어린애들 견학 장면 같기도 합니다. 두 장면을 대비하면 한쪽은 강한 힘이 느껴지고 다른 한쪽은 약하게 느껴집니다. 

 

▲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 장면.

 

▲ 백악관이 공개한 논란의 사진. ‘힘을 통한 평화’라는 문구가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 백악관 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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