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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30] 제2의 한미워킹그룹 논란, 문재인 때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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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12-22 20:4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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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30] 제2의 한미워킹그룹 논란, 문재인 때와 다르다


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12월 18일 서울 

■ 미국의 내정간섭 기구인 한미워킹그룹
■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미국의 갈등
■ 제2의 한미워킹그룹을 둘러싼 신경전
■ 문재인과 이재명의 차이? 

 

 

17일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강원도당 대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사사건건 미국에 결재를 맡아 허락된 것만 실행에 옮기는 상황으로 빠져든다면 오히려 남북관계를 푸는 실마리를 꽁꽁 묶는 악조건으로 빠져들 수 있다”라며 “저는 통일부의 방침을 지지한다. 정동영 통일부의 정책적 선택과 결정이 옳은 방향”이라고 했습니다. 정청래 대표의 말뜻을 이해하려면 최근 있었던 ‘제2의 한미워킹그룹’ 논란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10월 29일 한미정상회담 후 11월 17일 회담 결과를 정리한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가 발표됐습니다. 이후 회담 결과 이행을 위한 한미 간 협의가 이어졌습니다. 12월 1일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미국에서 크리스토퍼 랜다우 국무부 부장관과 회담했고 ▲농축 우라늄 ▲핵추진 잠수함 ▲국방비 예산 등을 다루는 태스크포스를 각각 구성했습니다. 10일에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이 미국에서 제이콥 헬버그 국무부 경제 담당 차관을 만나 제10차 한미고위급경제협의회(SED)를 열고 한미정상회담 후속 조치 이행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문제는 12일에 터졌습니다. 외교부가 언론 공지를 통해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 대한 후속 조치 논의를 위해 여러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북한 관련 협의도 이뤄질 것”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그러면서 “개최 일자, 수석대표, 참석 범위 등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미국 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보도가 나오자 문재인 정부 때 논란이 컸던 한미워킹그룹을 또 만드는 거냐며 각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미국의 내정간섭 기구인 한미워킹그룹

 

2018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모처럼 한반도에 훈풍이 불었습니다. 특히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북이 다방면에 걸쳐 교류, 협력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대북 제재가 걸렸습니다. 남북교류를 완전히 차단한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를 두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10월 10일 국정감사장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5.24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들(한국)은 우리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11월 20일 한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가 대북 정책을 조율한다는 명분을 걸고 한미워킹그룹을 만들었습니다. 누가 봐도 미국이 한국 마음대로 남북교류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기구였습니다. 

 

예상대로 한미워킹그룹은 사사건건 남북교류사업을 틀어막았습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이 북한에 타미플루(약)를 지원하려고 하자 이를 운반할 트럭이 대북 제재에 걸린다며 막은 사건이 있습니다.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행사를 취재하러 가는 기자의 노트북을 차단한 일도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중후반기 내내 한미워킹그룹에 끌려다니며 결국 남북관계를 망쳐버렸습니다. 국내에서는 한미워킹그룹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결국 2021년 6월 22일 한미워킹그룹은 사실상 폐지됐지만 그때는 이미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아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한미워킹그룹은 미국이 요구한 게 아니라 한국 외교부가 먼저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외교부는 대북 제재 문제를 효율적으로 협의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했지만 실상은 ‘정부가 남북교류를 추진하는데 우리가 막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미국이 직접 통제해 달라’는 것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원래 외교부는 ‘검은 머리 미국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친미 성향이 가장 강한 부서입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미국의 갈등

 

현재 국내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는 정동영 통일부장관입니다. 

 

정동영 장관은 11월 11일 경향신문 대담에서 “선비핵화론은 실패”했다며 “핵을 포기하면 제재를 풀겠다는 것은 더 이상 안 통하기 때문에 구조를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내년 4월 미중정상회담 전후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내년 3월 한미연합훈련 일정 조정은 불가피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인권 문제로 북한을 압박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국립북한인권센터 사업을 폐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당연히 미국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11월 25일 케빈 김 주한 미국 대사 대리가 부임 인사차 정동영 장관을 만났습니다. 정동영 장관은 케빈 김 대사 대리를 만나기 직전 한 세미나에서 “미국의 승인과 결재를 기다리는 관료적 사고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한반도 문제의 특성”이라며 한국의 독자적 행보를 강조했습니다. 

 

▲ 정동영 장관(오른쪽)과 케빈 김 대사 대리.  © 통일부


한미 당국은 정동영 장관과 케빈 김 대사 대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케빈 김 대사 대리는 대북 제재를 유지하고 인권 문제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북한 비핵화, 한미연합훈련 문제에서도 미국의 뜻을 강요했을 것입니다. 

 

정동영 장관은 케빈 김 대사 대리를 만난 후에도 자기 뜻을 꺾지 않았습니다. 12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한미연합훈련은 한반도 평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다”라면서 오는 4월 미중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인권 문제를 강력히 제기해서 대북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라며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는 모두 제재, 압박, 고립 국면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한 점입니다. 현재 NSC는 국가안보실장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차관급인 안보실 1·2·3차장과 장관급인 외교·통일·국방부장관, 국가정보원장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합니다. 이를 두고 정동영 장관은 “행정법 체계상 문제가 있다”라면서 이재명 대통령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연합훈련 조정에 반대합니다. NSC 개편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동영 장관이 말하는 ‘4월 북미정상회담 설’은 어디서 나온 얘기일까요?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IFANS)는 15일 발행한 「2026 국제정세전망」에서 “양 정상 간 회담 개최 희망, 평화공존, 비핵화 의제의 후순위 등에서 공통분모가 있어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이 다소 커졌다”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4월 중국을 방문할 예정임을 고려할 때, 한미 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전후하여 북미정상회동이 성사될 수 있도록 소통과 협력을 증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사실 내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계기로 북미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은 올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때부터 나왔던 얘기입니다.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 이재명 정부는 통일부를 앞세워 북미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비핵화 주장을 뒤로 미루고, 한미연합훈련을 조정하며, 대북 인권 공세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한미 관세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얘기를 꺼낸 것과 비슷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에 절박하게 매달리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제2의 한미워킹그룹을 둘러싼 신경전

 

12월 1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가칭 ‘한미 대북 정책 조율 협의체’(아래 한미협의체) 설치가 논의되었습니다. 회의에서는 ‘제2의 한미워킹그룹’이 되면 안 된다는 반론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친미 성향이 강한 위성락 실장과 외교부가 한미협의체 설치를 주장했고 정동영 장관이 주도적으로 반대를 한 듯합니다. 언론들도 한미 외교당국이 한미협의체 설치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아무튼 다음날 외교부는 한미협의체를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한미협의체는 정례적으로 열리며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과 케빈 김 대사 대리가 수석대표를 맡고, 16일에 첫 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합니다. 한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의 회의도 아니고 한국 외교부와 주한 미국 대사관의 회의라는 형식부터 이상합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총독부’로서 한국 정부에 지침을 주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한미협의체 첫 회의가 열리는 16일을 하루 앞두고 정동영 장관은 통일부가 한미협의체에 참가하는 문제를 두고 “검토 중”이라면서 “(협의체) 명칭은 바꾸기로 한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외교부가 주도하는 한미협의체에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는 미국과의 협의도 통일부가 직접,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임동원, 정세현, 이재정, 조명균, 김연철, 이인영 등 전직 통일부장관들도 이날 성명을 통해 “제2의 한미워킹그룹을 반대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직 장관들의 성명 발표는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민주당, 진보당,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0명 역시 한미협의체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도 이어졌습니다. 

 

이런 논란 속에서 16일 첫 한미협의체 회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회의 명칭부터가 불분명합니다. 애초에 말이 나왔던 ‘한미 대북 정책 조율 협의체’란 명칭을 쓰지 않고 ‘한미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습니다. 아마도 명칭을 아직 정하지 못한 듯합니다. 

 

회의 결과도 전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물어봐도 한미 양측 모두 입을 닫았습니다. 아마도 그리 성과적으로 진행되지 못 한 듯합니다. 정부 내에서도 반발이 심하니 적극적으로 회의에 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를 두고 미국을 방문 중인 위성락 실장은 “한미협의 건에 대해서 국가안보회의에서 논의가 있었다. 굉장히 긴 논의가 있었고 많은 토론을 거쳐 정리됐던 것”이라면서 “정리된 대로 이행됐더라면 지금보다 나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통일부가 엇박자를 냈다는 뜻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는 않겠다. 논의했고, 조율됐었다”라고만 답했습니다. 통일부가 반대하는 바람에 회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부분을 아쉬워한 것입니다. 

 

문재인과 이재명의 차이?

 

언론은 지금의 상황을 이른바 ‘자주파 대 동맹파의 갈등’으로 풀이합니다. 특히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이른바 ‘자주파’를 대표하는 정동영 장관이 미국과 자꾸 엇서는 게 문제라며 호들갑을 떨고 ‘동맹파’에 힘을 싣습니다. 

 

그런데 17일 정청래 대표의 발언을 보면 이게 단지 정동영 장관 개인의 의지는 아닌 듯싶습니다. 

 

정청래 대표는 “통일부는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를 주 업무로 하고 있기에 이런 문제는 통일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게 맞다”라면서 “한미 관계에서 자주성을 높이고, 남북 관계에서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에 조언하는 당내 특별기구인 가칭 한반도 평화 전략위원회를 조속한 시일 안에 설치하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최근 정청래 대표의 행보를 보면 이는 이재명 대통령실과도 조율이 된 내용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보면 정동영 장관은 대통령실, 여당과 뜻을 함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수언론이 정동영 장관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걸 보면 확실히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세게 나가고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이재명과 문재인, 두 대통령의 정치철학이나 성향, 기질 차이일까요? 아닙니다. 그보다는 조건이 바뀐 게 결정적입니다. 

 

문재인 정권 때는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해도 북한이 대화를 수용하고 북미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북한이 초강경으로 나오고 있어서 정상회담은커녕 실무급 대화조차 안 열립니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 초 대북 전단 살포를 막고 대북 방송을 중단하면서 내심 남북대화가 재개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걸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 정권의 무인기 도발에 관해 북한에 사과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반응이 없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비핵화 요구를 중단하고, 한미연합훈련도 중단하고, 인권 공세도 중단해야 대화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맞서는 모양새가 나온 것입니다. 

 

이걸 보면 이재명 정부가 미국에 맞서도록 만든 것은 북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남북관계를 두고 한국에 부당한 요구를 할 때 한국이 맞설 수 있는 명분을 주고 영향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북한의 강경 태도를 지렛대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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