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준232] 2025년 특집 ② 북한의 선군정치 그리고 국제주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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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1-09 21:31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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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32] 2025년 특집 ② 북한의 선군정치 그리고 국제주의 연대
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12월 25일 서울
(이어서)
‘선군’
북한은 자신의 독특한 정치 방식인 선군정치의 개념을 “군사를 제1국사로 내세우고 인민군대의 혁명적 기질과 전투력에 의거하여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보위하고 전반적 사회주의 건설을 힘 있게 다그쳐나가는 혁명 영도 방식이며 사회주의 정치 방식”이라고 합니다. 북한은 항일무장투쟁 시기부터 군사를 앞세웠지만 특히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선군정치를 전면화했습니다.
북한은 선군정치를 통해 국방력 강화에 국력을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억제하는 능력은 물론 미국 본토를 초토화할 능력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9월 29일 독일 베를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북한이 스스로 전략국가라고 말하는데 전략적 위치가 달라졌다”라며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의 하나가 돼 버렸다”, “냉정하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3대 국가’라고는 하지만 러시아, 중국은 미국이 먼저 핵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미국 본토를 공격할 뜻도, 의지도 없습니다. 반면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전쟁 위협, 경제 제재, 외교 고립으로 겪은 고통을 “천백 배”로 갚겠다는 의지가 강하며 미국이 공격할 조짐만 보여도 핵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장담했습니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다양한 종류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했고, 하와이, 괌 등 주요 미군 기지를 겨냥한 극초음속 미사일, 주한·주일미군을 겨냥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전략 순항미사일, 초대형 방사포 등도 대량 생산했습니다. 또 군항과 항공모함 전단을 겨냥한 핵무인 수중 공격정도 개발했습니다.
![]() ▲ 10월 10일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 노동신문 |
이런 핵 억지력은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막는 건 물론 미국이 위협을 느껴 북한과의 대화를 간청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미국이 느끼는 두려움은 지난 10월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미국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에 잘 나옵니다. 영화에서 주연, 조연들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날아오는 약 30분 동안 정신이 탈탈 털려 누구는 자살하고, 누구는 구토하는 등 공황 상태에 빠집니다.
실제로 2022년 1월 11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했을 때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자국 서부 공항에 15분간 긴급 이륙 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아마 북한이 동쪽이나 북쪽으로 미사일을 쏠 때마다 미국 지휘부는 초긴장 상태에 들어갈 것입니다.
언제든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타격해 불모지로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은 미국의 지휘부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널리 퍼져있습니다. 털시 개버드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하와이 하원의원 시절이었던 2018년 1월 13일 하와이주가 실수로 탄도미사일 경보를 발령하는 바람에 일대 혼란이 발생한 사건을 겪었습니다. 다음날 방송에 출연한 개버드 국장은 “지난 수십 년간 북한과 협상에 실패한 대가를 하와이 주민들이 치르고 있다”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아무 조건 없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핵 억지력뿐 아니라 전반적인 군사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2023년 7월 25~27일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당시 국방부장관은 “조선인민군은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에서의 영웅적 위훈을 빛내며 부단히 위력을 강화함으로써 세계에서 제일 강한 군대로 되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은 2024년 쿠르스크 전투를 통해 미국과 서방 연합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쿠르스크 전투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체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국경 분쟁 같은 게 아닙니다. 우크라이나를 앞세운 미국과 서방 연합세력이 작심하고 준비한 전투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선 전체에 있던 최정예 부대 수만 명과 미국과 서방 연합세력이 지원한 최고 성능의 무기를 끌어모아 2024년 8월 6일 쿠르스크로 진격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과 서방의 용병도 다수 참가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순식간에 서울시 면적의 두 배가 넘는 넓은 면적을 점령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이 8월 28일 파병을 결정하고 러시아에 통보, 10월 전후로 병력을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0월 22일 공격작전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쿠르스크 전투는 북러연합군 대 미국과 서방 연합세력의 전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4월 26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참모총장은 쿠르스크 전투 종료를 선언합니다.
쿠르스크 탈환을 마치고 러시아 정부와 언론은 북한군이 전투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마리나 김 러시아 국가두마(의회) 의원은 “(북한군은) 뛰어난 군사적 기량을 갖춘 세계에서 가장 대단한 군대 중 하나”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도 3월 18일 자 보도에서 “쿠르스크 전선에 잘 훈련된 북한군이 등장하면서 전황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북한군은 매우 구조화된 군사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여러 미국 언론은 쿠르스크 전투에서 북한군이 두려움을 모르고 맹활약했다며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했습니다. 북한군과 직접 교전했던 우크라이나 제225독립강습여단의 올레흐 시랴예프 사령관은 막심한 피해를 감당할 수 없어 북한군을 만나면 교전을 피하라고 부대에 지시할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쿠르스크 전투는 미국이 북한과의 전쟁을 피하게 하는 생생한 사례가 되었을 것입니다.
‘국제주의 연대’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횡포를 부릴 때 세계 각국이 힘을 모아 맞서면 충분히 미국을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미국이 반제자주연대를 막기 위해 분열 공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세계는 미국을 추종하는 나라, 미국에 협력하는 나라, 미국과 타협하는 나라, 미국과 대립하는 나라로 나뉘었습니다. 또 미국과 대립하는 나라들도 제각기 자기가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경쟁하고 견제하는 바람에 단결하지 못했습니다.
냉전 시기에는 사회주의권이 미국과 가장 대립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들도 단결하지 못하고 서로 갈등을 빚었습니다.
소련은 자신을 사회주의 종주국으로 내세우며 다른 사회주의 나라를 통제, 지휘하려 했습니다. 심지어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나라를 대상으로 군사적 대응까지도 단행했습니다. 중국은 ‘소련과 중국을 분열시켜야 미국에 유리하다’는 키신저 전략에 이용당해 미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함께 소련을 견제, 압박해 결국 소련 해체에 일조했습니다.
북한이 선두에서 미국과 대립할 때 과거 북한과 가까웠던 러시아, 중국은 미국 편에서 북한을 압박했습니다. 러시아,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이 대북 제재나 북한 규탄 결의안을 제안하면 여기에 동조했습니다. 형식적으로만 손을 들어 준 게 아니라 실제 대북 제재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베트남 역시 미국과 경제·안보 협력을 위해 북한을 외면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이 베트남에 식량 지원을 요청했지만 미국 눈치를 보느라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베트남전쟁 때 북한이 백여 명의 전투기 조종사를 파병하고 수많은 무기와 전쟁 물자, 돈을 지원했는데 이를 배신한 셈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반제자주 국제주의 연대’의 가치를 저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제주의 연대를 중요하게 여기며 러시아, 중국, 베트남을 비롯해 반제자주 노선을 따르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과 협력하기 위해 노력했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고 합니다. 이는 김일성 주석 시기부터 내려온 일종의 ‘전통’인 듯합니다.
김일성 주석은 항일무장투쟁 시기 발발한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의 공격을 받는 소련을 지원하기 위해 대사하, 대장강 전투 등을 통해 일본군을 후방에서 교란했습니다. 1949년 3월 김일성 주석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환영 연회를 마련하고 직접 축배사를 하면서 “김일성 동지는 동방에서 제국주의 침략에서 소련을 피로써, 무장으로써 옹호한 참다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이며 공산주의 운동의 귀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김일성 주석은 해방 직후 어려운 시기에도 국공내전을 하던 중국 공산당을 도와 중국 동북지방에 여러 군사 간부와 부대를 파견했고 무기를 지원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10만 정의 무기와 탄약, 광목천 등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김일성 주석이 직접 동북 전장을 방문해 전략전술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또 공산당 부대가 국민당 부대의 공격을 피해 북한 영토를 거쳐 이동할 수 있도록 허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지원은 국민당의 공세로 위기에 몰렸던 공산당이 전세를 뒤집고 승리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62년 카리브해 위기 이후 소련이 쿠바를 외면하자 북한은 수많은 무기와 생산 장비를 지원했고 100여 명의 청년 노력지원대도 파견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일성 주석은 “뭘 조금 원조 준다고 해서 냄새피우지 말아야 한다. 거만하지 말고 아주 겸손해야 하며 무엇을 좀 지지하고 지원하는 데 대하여 조금이라도 우쭐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쿠바 지원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쿠바에 소총 10만 정과 탄약을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사실은 2012년에야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쓴 자서전을 통해 처음 공개됐습니다.
이런 ‘국제주의 연대’ 정신에 따라 북한은 21세기 들어서도 반제자주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북한은 2018년 북미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하면서 중국이 고립 위기를 느낄 때 북중정상회담을 전격 추진해 북중관계를 일거에 전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올해 북중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은 대만 문제,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문제 등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는 지점들에 관해 전적으로 중국을 지지한다고 밝혀 중국에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2019년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할 때는 북-베트남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를 돈독히 했습니다. 올해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행사 때 또럼 베트남공산당 총비서가 환대받고 주석단에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 바로 옆에 선 것을 보면 당시의 성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쿠르스크 파병을 통해 북러 양국 관계를 혈맹 관계로 발전시켰습니다. 쿠르스크 전투가 끝난 후에도 공병부대를 보내 지뢰 제거와 마을 재건 사업을 지원했습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부상병을 치료해 주고, 전사자 자녀를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로 초대해 머물게 해 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상으로 제공됐습니다. 고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우리가 북한 친구들에게 일부 비용이라도 보상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기분 상해하며 다시는 그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올해 지구적 차원에서 반제자주화가 태동하는, 세계사적으로 중대한 열매가 맺어졌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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