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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36] 다극화와 반제자주화의 관계 ②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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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1-13 10:0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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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준236] 다극화와 반제자주화의 관계 ②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차이


 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1월 12일  서울 


(이어서)

 

국가 간 관계의 차이

 

다극 체제 안에 있는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교류·협력합니다. ‘나는 나, 너는 너’의 관점에서 서로를 대하면서 자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교류·협력합니다. 물론 상대국도 마찬가지로 자국 이익을 전제로 교류·협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서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교류·협력합니다. 

 

2025년 10월 2일 열린 발다이 국제 토론 클럽 제22차 연례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다극 체제의 본질을 두고 “전 세계 압도적 다수의 국가가 각자의 균형 잡히고 진보적인 발전을 통한 문명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이런 것들이 팽창주의 이념으로 왜곡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그들은 외부 압력에 맞서 이러한 이익을 수호할 힘과 자신감이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오늘날 각 나라들은 일정한 국력과 의지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수탈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이익이 되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반제자주화의 질서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지원·협력합니다. 여기서는 ‘너는 나, 나는 너’, 그래서 ‘너와 나는 우리’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이익’을 위해 지원·교류·협력합니다.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에서 교류·협력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자국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상대국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해 북한은 쿠르스크 전투로 러시아가 곤경에 빠진 걸 보고 러시아의 요청이 없었음에도 파병을 결정하고 러시아에 통보했습니다.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여러 보상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자국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상대국을 지원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어떤 보상을 받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부상병을 치료해 주고, 전사자 자녀를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로 초대해 머물게 해 주었는데 이 모든 것은 무상으로 제공됐습니다. 고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우리가 북한 친구들에게 일부 비용이라도 보상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기분 상해하며 다시는 그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이걸 보면 북한은 반제자주화의 길에서 어려움에 빠진 나라를 순수하게 돕고 보상은 철저히 거부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북한의 전통으로 보입니다. 1962년 카리브해 위기 이후 북한은 소총 10만 정과 탄약 등 수많은 무기와 생산 장비를 쿠바에 무상으로 지원했고 100여 명의 청년 노력지원대도 파견했습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뭘 조금 원조 준다고 해서 냄새피우지 말아야 한다. 거만하지 말고 아주 겸손해야 하며 무엇을 좀 지지하고 지원하는 데 대하여 조금이라도 우쭐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쿠바 지원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쿠바 지원은 2012년에야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쓴 자서전을 통해 처음 공개됐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 직후 국공내전으로 어려움을 겪은 중국 공산당을 지원한 사례도 있습니다. 김명호 성공회대 교수는 2014년 4월 14일 자 한겨레 기고 글에서 관련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글에 따르면 1950년 7월 8일, 저우언라이는 북한 주재 대사 대리로 부임하는 차이청원 등에게 “김일성 동지를 만나면 위대한 승리에 대한 축하 인사부터 해라.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를 도와준 조선[북한]의 당과 인민들에게 감사한다는 말도 꼭 전해라. 너희들은 동북전쟁 참전 경험이 없기 때문에 1946년과 1947년 동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잘 모른다. 동북전쟁 중 ‘사보임강’과 ‘삼하강남’ 전역의 승리는 조선의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당시 조선은 우리의 든든한 후방 기지였다. 군인 가족과 부상병을 돌봐주고, 전략물자 지원과 수송 등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조선 동지들이 중국혁명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는 말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게다가 조선은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도와주기까지 했다. 어느 시대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평양에 간 차이청원이 저우언라이의 말을 전하자 김일성 주석은 웃으며 “그때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해방 직후라 우리 동지들이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할 때였다. 그러다 보니 중국 동지들에게 고생만 시켰다”라고 짤막하게 답했다고 합니다. 

 

1946년이면 북한도 정식 정부와 군대를 건설하기 전이라 힘들 때였습니다. 그래서 간부들이 중국에 무기를 보내는 걸 반대했지만 김일성 주석은 “이왕 돕겠다면 성심성의껏 지원해야 한다. 성의에 많고 적음을 따지지 말라”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당시 중국에 얼마나 많은 무기를 지원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60년도 더 지난 2008년 발행한 『중국 동북해방전쟁을 도와』라는 책을 통해서 당시 구체적인 정보를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아마도 쿠바 지원 때처럼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지원한 걸 자랑하지 말라고 지시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처럼 반제자주화는 다극 체제와 가치관의 차이가 있습니다. 다극 체제는 개인주의에 기초해 개별 나라들의 이익을 우선하면서 연합하며, 반제자주화는 집단주의에 기초해 개별 나라들의 자주성을 존중하며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인류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정치·군사 중심과 경제 중심의 차이

 

다극 체제는 경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질서입니다. 

 

다극 체제를 대표하는 기구인 브릭스는 애초에 2001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의 짐 오닐 회장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4개의 신흥국이 세계 경제를 이끌 것으로 전망하며 붙여준 이름에서 출발했습니다. 4개 나라는 정치 체제나 종교, 문화적으로 차이가 크지만 인구가 많고 영토가 넓으며 자원이 풍부해 경제 잠재력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 나라는 미국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세계 경제 질서를 극복하고 자국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경제 협력을 하기 위해 뭉쳤습니다. 예를 들어 이들 나라는 달러 중심의 국제 결제 체계인 스위프트(SWIFT)를 대체해 자국 화폐로 거래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브릭스는 정치·군사적으로 미국에 대응하거나 안보 협력을 논의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관계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과 인도는 최근까지도 국경 분쟁을 할 정도로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또 미국에 대한 태도도 서로 다른데 인도는 미국과 쿼드라는 안보 협의체에서 함께하고 있으며 브라질은 정권에 따라 대미 정책이 들쑥날쑥합니다. 

 

  © 인도 총리실


상하이협력기구(SCO)는 안보 협력을 하기는 하지만 주로 테러, 분리주의, 극단주의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며 이마저도 아직은 실효성 있는 활동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반면 반제자주화는 정치·군사 문제가 중심입니다. 

 

언론이나 전문가는 흔히 북한이 중국, 러시아 등과 대화와 협력을 하면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경제 협력은 뒷순위이며 정치·군사 협력에 주력합니다. 북러정상회담 결과를 봐도 언론이나 전문가는 러시아 석유 수입이나 북한 노동자 파견 등에 주목했지만 이런 것들은 아직 가시화한 게 없는 반면 쿠르스크 전투 파병, 지뢰 제거 공병 파병 등 군사 협력은 두드러졌습니다. 

 

북한은 미국을 꺾고 반제자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보다 정치·군사 분야에서 힘을 키우고 협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건 정치며, 사회 발전을 주도하고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도 정치라는 북한 특유의 사상 때문입니다. 또한 제국주의는 군사력을 근본 수단으로 대외 팽창과 약탈을 하므로 제국주의와의 대결은 경제 대결이 아닌 군사 대결이 본질이라는 관점 때문입니다. 북한이 군사력 강화를 앞세운 ‘선군정치’를 한 것도 이 때문이며 북한은 지구상에 제국주의가 남아있는 한 항구적으로 선군정치 노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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