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준258] 미국의 분열 공작에 유의하자1 > 기고

본문 바로가기
기고

[정조준258] 미국의 분열 공작에 유의하자1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5-29 17:24 댓글0건

본문


[정조준258] 미국의 분열 공작에 유의하자

문 경 환 기자  자주시보 5월 28일 서울 


미국이 극우 정치인인 미셸 스틸을 주한 미국 대사로 지명하고, 윤석열 체포를 막던 ‘백골단’ 출신인 김정현 반공청년단장을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이사로 임명하는 등 내란세력 부활과 이재명 정부 흔들기를 노골적으로 시도합니다. 국내에서는 이명박, 박근혜가 국힘당 후보 지원 유세에 등장하고 윤석열이 한덕수 전 총리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는 등 내란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의 움직임 가운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중요합니다. 이재명 정부를 흔들기 위해 내란세력에도 힘을 실어주겠지만 정부와 범여당, 진보민주개혁세력 내부에 분열을 일으키는 작업도 소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분열 공작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원내 제3당인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1986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 1991년 서울대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대학, 대학원 시절 학생운동을 했는데 특히 진중권 등과 좌파 이론 활동을 하면서 자주·통일운동을 비판했습니다. 1992년 3월 울산대학교에서 법학과 교수로 임명됐습니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건데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 조국 대표.  ©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1993년 5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반년간 수감됐습니다. 1988년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출범한 사노맹은 1991년 4월 3일 박노해 중앙상임위원 등 11명이 검거, 구속된 후 1992년 4월 29일 백태웅 중앙상임위원장 등 39명이 추가로 검거, 구속되면서 와해된 조직입니다. 조국 대표는 사노맹 산하 사회주의과학원 연구실장이었다고 합니다. 

 

사노맹의 총책임자였던 백태웅은 15년 형을 받았지만 1999년 특별사면으로 석방, 이후 미국 노터데임대학교 로스쿨로 유학을 떠나 미국 변호사 자격을 땄습니다. 미국, 캐나다를 돌며 교수 생활을 하다가 현재 하와이대 교수 겸 주 OECD 대한민국 대사를 맡고 있습니다. 조국 대표가 법무부장관 후보자 시절 사노맹 전력으로 공격받을 때 백태웅 교수는 조국 대표를 적극적으로 옹호했습니다. 

 

조국 대표는 석방 후 1994년 태광그룹의 일주학술문화재단 해외박사과정 장학생에 발탁돼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법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로 보아 백태웅 교수나 조국 대표 그리고 사노맹이 반미 성향이었다면 미국이 이런 기회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노맹 출신들이 복역 후 미국 유학을 한 것을 두고 사노맹과 미국의 연계를 의심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지식인, 엘리트를 유학생으로 받아들여 친미 인사로 육성한 뒤 본국에 돌려보내 사회 곳곳의 요직을 차지하게 한 후 미국의 요구를 관철하는 첨병으로 활용합니다. 미국은 한국에도 여러 선을 대고 있는데 정·재계는 물론이고 사회운동세력에도 그 마수를 뻗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제헌의회그룹’(CA)에서 갈라져 나온 사노맹은 출발부터 자주·통일운동과 대립했습니다. 미국은 한국 사회에서 반미, 통일 기운이 성장하는 것을 가장 경계합니다. 사노맹의 활동은 미국의 노선에 부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태웅 교수는 2005년 미국에서 열린 북한 인권문제 토론회에 주제 발표를 맡아 한국의 민주화세력이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역시 미국의 반북 인권 공세와 일치하는 주장입니다. 

 

사노맹이 결성 초기 북한에 선을 대려고 시도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반북 성향의 조직이 북한과 접촉을 시도한 것도 뭔가 이상합니다. 사노맹에 일부 장기수가 관계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 역시 특이합니다. 장기수는 기본적으로 북한에서 왔거나 북한과 직접 연계가 있었던 사람들이라서 사노맹이 북한과 접촉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그럼 반북 성향의 사노맹이 왜 굳이 북한과 관계를 맺으려 했을까요? 유추해 볼 가능성 중에는 북한 내에 반체제 세력을 심고자 하는 미국의 구상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조직이라서 북한의 의심을 받지 않을 거라 여겼을 것입니다. 

 

사노맹은 당시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지 않게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일종의 ‘극좌’ 노선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세력이 반북 활동을 하는 게 미국과 극우적폐세력에도 유용합니다. ‘진보도 북한을 반대한다’, ‘진짜 사회주의세력이 비판하는 걸 보면 북한은 가짜 사회주의다’는 식으로 선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1990년대 초 국내외 사회주의자를 모아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한기홍이 변절한 진보·통일운동가를 모아 1990년대 말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만들어 북한 체제 붕괴 활동을 한 것도 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국 대표의 정치 경력을 보면 거센 풍파와 고초를 많이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이 한국 정치에서 추구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던 측면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촛불정부를 표방하며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지리멸렬하게 된 중요한 계기는 바로 이른바 ‘조국 사태’입니다. 미국은 ‘조국 사태’를 통해 윤석열을 정국의 핵심 인물로 등장시키고 죽어가던 국힘당을 되살려냈고 끝내 집권으로 연결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보내 윤석열에 힘을 실어 줬는데 그 전후로 윤석열을 차기 대통령으로 간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국 대표는 당시 법무부장관으로서 모든 사태의 당사자이자 책임자였습니다. 

 

미국은 윤석열 탄핵 이후 촛불정부로 등장한 이재명 정부를 또 흔들고 있습니다. 노골적인 내정간섭도 하고, 내란세력에 힘도 실어주며, 내부 분열도 일으킵니다. 12.3내란을 막아낸 우리 국민은 하루빨리 내란세력을 청산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다 죽어가던 국힘당은 6.3지방선거에 뻔뻔하게 후보를 내고 기세등등하지만 민주개혁진영은 선거 경쟁 구도 속에서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걸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열의 중심에 공교롭게도 또 조국 대표가 있습니다. 

 

조국 대표는 법무부장관 청문회에서 국가보안법을 두고 찬양고무죄부터 폐지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국가보안법 전체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사노맹 경력을 두고도 “그때나 지금이나 전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고 답해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것만 보면 대단히 진보적인 인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실제 삶은 그의 주장만큼 진보개혁적이지 않았습니다. 

 

이재명 정부 들어 그의 주장을 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게 많습니다. 

 

조국 대표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보완수사권이 전면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결코 안 된다”라면서도 “검찰의 수사권은 기소와 공소 유지를 위해 매우 제한적이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해야 한다”라고 해서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정치검찰의 탄압을 받은 상징적 인물이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 검찰개혁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습니다. 

 

또 내란전담재판부법 제정을 피하고자 조희대 대법원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예규를 제정하기로 하자 조국혁신당이 “매우 환영한다”라며 “내란전담재판부 구성을 촉구하는 법안 발의의 필요성도 상당히 낮아졌다”라고 해 민주당이 추진하던 사법개혁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에 조국혁신당을 향한 비판이 쏟아지자 이틀 후 태도를 바꿔 내란전담재판부법에 찬성한다고 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윤석열 정권 시기인 2024년 5월 17일 조국 대표가 “윤 대통령이 명예롭게 자신의 임기 단축에 동의하고 우리가 말하는 개헌에 동의한다면 지금까지의 국정운영 실패, 무능, 무책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법을 바꿨다는 점에서 기여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 해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습니다. 

 

사실 사노맹은 당시에도 돈 문제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조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급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원 1인 당 수백만 원에서 1천만 원의 자금을 할당했는데 1980년대로서는 꽤 큰 액수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위장 결혼식으로 축의금을 확보하거나, 부잣집을 털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련한 자금을 가지고 백태웅 교수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한국 사회를 자기들 뜻대로 요리하고 활용하기 위해 국힘당 내란세력을 기본으로 활용합니다. 하지만 진보개혁진영에도 자기 세력을 심어 놓고 공작을 합니다. 내부 분열이 불거질 때마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페이지  |   코레아뉴스  |   성명서  |   통일정세  |   세계뉴스  |   기고

Copyright ⓒ 2014-2026 [정조준258] 미국의 분열 공작에 유의하자1 >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