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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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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4-03 19:2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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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3월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특위 사무실을 방문한 세월호 유족들과 만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101

첫 편지를 보낸 2년 전, 
어떻게든 당신이 잘하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건 헛된 기대였고 공연한 바람이었습니다
절대왕정의 공주로서 성장을 멈춘
당신의 꿈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이젠 이 편지를 끝내려 합니다
안녕할 전망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안녕을 빕니다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당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이미 <한겨레>의 석진환 기자가 왜 가야 했는지 의문을 제기했고(28일치 2면), 권보드래 교수가 세습의 또다른 왕조 싱가포르의 천박성을 따진 글(28일치 23면)을 기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되짚어보는 까닭은 이번 행차만큼 ‘당신의 꿈’을 잘 드러낸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물 내리기 그리고 성적 취향까지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태형이 존재하고 사형 집행률이 가장 높기도 합니다. 돈 많은 아랍의 이슬람 국가나 다를 게 없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171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153위(2015년 ‘국경 없는 기자회’ 언론자유 보고서)에 올랐습니다. 독재로 악명이 높은 미얀마(144위)나 콩고민주공화국(150위)보다 떨어집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을 리씨 집안이 장악하고 있으니 언론 자유는 논할 계제도 아닙니다. <조선일보>는 이번에 리 전 총리를 신격화하기라도 하듯이 칭송했는데, 언론을 사실상 국유화하고 세습 족벌의 지배 아래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랬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통제받는 까닭에 싱가포르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국민으로 꼽혔습니다.(2012년 갤럽 조사) 국민은 입 닫고 눈감고 귀 막고, 그저 국가가 시키는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싱가포르와 리콴유를 존경하는 사람이라면 북한의 세습 병영 체제를 비난할 수 없을 겁니다. 싱가포르는 우리보다 더 오랫동안 북한과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그런 지도자를 두고 당신은 조문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리 전 총리는 우리 시대의 기념비적인 지도자였습니다. 그 이름은 세계사의 페이지에 영원히 각인될 것입니다.” 국민을 ‘최첨단 우리 속 배부른 돼지’로 키우는 사육사가 위대한 지도자라고요? 그런 사육사가 꿈인 지도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칭송할까요.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듯이, 국민도 사육당하는 것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첫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순 없었는데…

당신에게 이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2013년 4월이었습니다. 상습적인 탈세, 병역 회피, 투기, 사기, 표절, 극단주의 등으로 점철된 ‘조각 명단’ 때문에 새 행정부가 출범도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국가기관의 선거부정 때문에 실망하고, 또 그런 최악의 인선 때문에 다시 실망했지만,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인 당신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당신이 잘하기를 바랐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던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대한 진저리쳐지는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임기는 비비케이 거짓말에서 시작해 자원외교, 4대강 거짓말 등으로 채워졌습니다. 국민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국가보다 패거리를 더 챙기고, 마사지 걸 등 추접을 떨면서도 근엄한 척, 경건한 척, 아는 척, 잘난 척 하는 것에 넌더리가 났습니다. 게다가 불치병을 핑계로 병역을 회피한 사람이 걸핏하면 군용잠바에 선글라스 착용하고, 당신의 부친 ‘박정희 흉내’를 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끔찍했습니다. 당신은 적어도 그렇게 천박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둘째는 부친의 출세주의와 기회주의로 뒤얽힌 난잡한 개인사가 당신에겐 반면교사가 되리라 여겼습니다. 부친은 일제 치하에선 일본 천황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서하고 만주군관학교, 일본육사 등 출세 코스를 밟았습니다. 해방이 되자 사회변혁의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민족적 사회주의 계열로 표변해 여순반란사건의 한 주동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동지들을 팔아넘겨 구명도생한 뒤 반공의 화신으로 출세주의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결국 총으로 권력을 잡았고, 총의 힘으로 종신지배체제를 구축했고, 결국엔 총으로 피살되어 열들해의 왕조를 마감했습니다. 그런 개인사를 곁에서 지켜봤을 당신이 그런 부친의 뒤틀린 길을 갈 리 없으며, 자신과 국민을 또 불행에 빠트리는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셋째는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저질러진 불법 부정 행위가 오히려 당신을 더욱 성찰적인 인간, 소통하는 지도자, 배려하는 정치인으로 성숙시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신 자신의 흠결이 당신의 반면교사가 되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원칙과 신뢰, 당신이 입만 열면 하던 말을 그때까지도 믿었습니다.
이런 기대 속에서, 총과 음모가 난무하는 근육질의 정치에서 관용과 온정의 정치로, 배제와 차별의 정치에서 포용과 통합의 정치로, 탈법과 사기의 정치에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로 나아가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매향처럼 언뜻 스쳐가는 연정이 편지에 묻어날 수 있기를 감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건 헛된 기대였고, 공연한 바람이었습니다. 당신은 남자들보다 더 근육질이었고, 음모적이었으며, 완고하고 차별적이었습니다. 거짓에도 능했고, 위선적이었으며, 더 출세 지향적이었고 더 기회주의적이었습니다. 무지하면서 오만했고, 나태하면서 핑계를 대기만 했습니다. 그런 당신을 보는 것은 실망과 분노요, 짜증과 욕이었습니다. 입이 더러워지고, 머릿속이 혼미해지고, 마음은 강퍅해졌습니다. 더 편지를 쓴다는 건 저 스스로 인간성을 파괴하는 짓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편지를 끝내려 합니다. 숫자에 의미를 둔 건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캐나다의 소설가 얀 마텔이 스티븐 하퍼 총리에게 보낸 편지의 횟수와 같아졌습니다. 마텔은 이웃과 다른 생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꿀 상상력이 결여된 하퍼 총리에게, 문학을 통해 그런 이해력과 상상력과 꿈을 수혈하자며 2007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격주로 문학작품을 추천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퍼는 실제로 가장 즐겨 읽는 게 <기네스북>이라고 자신있게 떠벌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마텔은 그가 캐나다 예술위원회 50돌 기념행사에서 딴짓에 몰두하는 걸 보고 저와 총리 그리고 캐나다와 국민을 위해 편지를 쓰기로 했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스티븐 하퍼 총리처럼 나를 지배하는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상상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의 꿈이 자칫하면 나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나중에 책으로 묶은 <총리에게 보낸 101통의 편지>의 서문에서 밝힌 배경입니다.

캐나다 소설가 마텔도 당신에게 이런 충고를 했는데…
이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시작한 편지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끝납니다. 총리 보좌관으로부터 의례적인 답장 대여섯 번 받았을 뿐 총리에게선 한 장도 답장을 받지 않았습니다만, 그는 4년간 편지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보냈습니다. 그가 마지막 편지에서 추천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자신도 읽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난해하지만 두려움과 나태함을 극복하도록 돕는’ 이 책이라도 한번 같이 읽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마텔은 당신에게도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한국어판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가 출간되던 2013년 4월이었습니다. “조금은 뒤로 물러나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독서가 필요합니다. 현재의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광적인 정치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통령님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기를 바라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냉철하게 판단하기 힘들 것입니다. 소설을 읽으십시오.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든 정치인이 원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 더 나은 세계를 이룩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당신이 과연 소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었는지 궁금합니다. 하퍼는 기네스북이라도 즐겨 읽었다지만, 당신은 어떤 책을 즐겨 읽는지 알려진 게 없습니다. 기껏해야 성추행으로 쫓겨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칼럼을 읽고는 주변에 돌려보도록 했던 게 당신의 독서 수준이었으니, 사람들은 더 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문 글이나 제대로 읽었을까 의심할 뿐입니다.

당신은 리콴유에게서 아버지를 보고 느꼈습니다. 그 아버지는 리콴유보다 먼저 공포와 억압으로 왕조를 쌓아올렸습니다. 돌아보면 당신의 꿈은 그런 체제의 부활이었고, 그 체제 안에서 다시 왕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에겐 새로운 세상의 꿈이 필요없었고, 더 나은 세계를 추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절대왕정의 공주로서 성장이 멈춰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발현되는 건 회귀 본능뿐이었습니다. 만인이 우러르고, 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그런 왕녀! 당신의 꿈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상징적입니다. 아이들 250명을 포함해 304명의 시민이,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히 죽어갔는데, 당신은 아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티브이가 생중계를 하다시피 했는데, 당신은 그걸 보지도 듣지도 않았는지, 뒤늦게 대책본부에 나타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만 했습니다. 그게 벌써 1년 전입니다.
대한민국을 개조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그건 어리숙한 정부와 어리숙한 지도자의 실수 때문이라고 합시다. 그 뒤 이 정부와 여당 그리고 그 추종자들이 한 일은 피해자를 조롱하고, 야유하고, 자식 잃은 부모를 불한당으로 내몰고, 돈이나 밝히는 패륜부모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을 비하하고, 놀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을 개조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그 출발이라 할 참사의 진상은 어떻게든 덮으려고 했습니다. 왜 이 정부가 단 한 사람도 구하지 않았는지, 대통령과 이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덮는 데 혈안이었습니다.

국민의 원성에 못 이겨 겨우 하나 한 것이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정부는 이미 따귀 빼고 기름도 뺀 위원회이지만, 그마저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정부는 조사 대상이지 조사 주체가 아닙니다. 왜 한 사람도 구조하지 않았는지 조사를 받아야 할 집단입니다. 그런 정부가 위원회를 관장하고 통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정부가 파견한 공무원이 조사 기획도 하고, 조사 범위와 대상도 정하고, 위원회에 보고한 조사보고서도 결재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조사 인력도 예산도 대폭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위원회를 해체하자고 하지, 참으로 철면피 정부이고 정권입니다.

곽병찬 대기자

진상이 그렇게 두렵습니까? 숨겨야 할 게 그리도 많습니까? 그러고도 이 정부를 어떻게 대한민국 정부라 할 수 있고, 대통령을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철부지 전제군주를 꿈꾸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그런 패륜적 작태를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런 당신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안녕할 전망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안녕을 빕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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