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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숙 칼럼] 설날 아침에 ‘여우난골족’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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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2-16 15:0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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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 고모 고모의 딸 이녀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 고무 고무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 너머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 끝이 빨간 언제나 흰 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서럽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촌 삼촌엄매 사촌누이 사촌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 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 볶은 잔대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옆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릇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 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백석 ‘여우난골족’ 전문

여우난골족 표지(자료사진)
여우난골족 표지(자료사진)ⓒ창비

설날이다. 설은 예로부터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먼데 친척과 가까운 이웃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나누며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안부를 묻는 따듯한 날이다. 위 시의 어린 화자는 설날 큰집에서 만난 친척들과 함께 한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든 장면들을 낱낱이 열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친족공동체의 설날 풍경은 풍성하게 재현된다.

‘여우난골족’의 공동체 분위기는 이들이 함께 나누는 각종 음식과 놀이의 재현으로 더욱 구체적인 감각을 획득한다. 친족의 유대관계와 각종 음식과 놀이 등 전통적 삶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복원되면서 건강하고 풍요로운 공동체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설날의 훈훈함과 따듯함이 이렇게 몸으로 다가오는 시詩는 많지 않다.

그야말로 이제 진짜로 황금닭 해를 보내고 새로운 황금개 해를 맞이한다. 사람들은 ‘여우난골족’처럼 먼데 가까운데서 고향을 찾고 친척을 찾을 것이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보며 부퉁켜 안을 것이고 볼을 쓰다듬을 것이다. 서로 덕담을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나눌 것이다. 또 요즘은 설날 선물도 많은 편이다. 이런저런 곳에서 선물이 들어오고 이런저런 곳으로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설날은 그런 날이다. 설날은 설레여서 설날인지도 모른다.

올해 설은 아무래도 설레임과 선물이 많은 해이다. 설날을 중심으로 해서 열리는 평창 겨울올림픽이 그렇다. 이번 올림픽이야말로 우리민족에게 보내는 최고의 선물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선물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샌 촛불의 분노만큼, 우리가 태운 촛불의 시간만큼 우리에게 선물이 돌아온 것 아니겠는가.

필자는 본래 스포츠중계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스포츠의 상업화와 스포츠인의 영웅화가 달갑지 않은 탓도 있지만 나 자신이 스포츠에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들에겐 박수를 보내는걸 서슴치 않는다. 이상화 선수나 최근에 테니스선수 정현이 그렇다. 인간의 한계 뿐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은 각고의 노력을 누가 시비할 것인가. 또 스포츠에는 경쟁을 뛰어 넘은 화해와 화합을 들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올림픽 경기를 하는 기간만은 휴전을 하며, 전쟁과 대결을 멈추었던 역사에서부터 스포츠 경기는 단순한 경쟁을 뛰어넘어 인류의 평화와 화합에 기여 했다.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14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1-4로 패한 뒤 이진규와 랜디 희수 그리핀이 서로격려를 하고 있다.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14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1-4로 패한 뒤 이진규와 랜디 희수 그리핀이 서로격려를 하고 있다.ⓒ2018평창사진공동취재단

올해 평창 겨울올림픽 또한 감동적인 선수들의 이야기가 넘쳐날 것이다. 특별히 설날 선물처럼 만들어진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이야기는 겨울 올림픽이야기의 정점을 찍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메달을 따지는 못했더라도 남북 단일팀은 이미 금메달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쟁 직전의 상황을 방불케 했던 한반도에서 남북이 함께 단일팀을 구성하여 출전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노벨평화상 후보로 올리도록 하겠다는 조직위의 전언이 있는 것이라면 이번 동계올림픽은 우리민족 설 풍경 중 최고의 풍경을 만들어 낸 것이 분명하다.

설레임이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평양에서 온 공연단의 멋진 공연 또 한 우리에겐 귀중한 선물이다.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가슴 울컥하고 먹먹해지는 감동을 누구나 받았으리라. 관객 모두가 눈물을 닦아내며 일어나 박수를 치는 모습들에서 누구나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르지 않음은 바로 우리가 멀지 않은 한겨레 한민족 친족이라는 사실이다. 만나면 반가워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는 것은 설날이라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 설에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많이 흘리는 설이 된 것이다.

14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과 일본의 경기에 북한 응원단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14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과 일본의 경기에 북한 응원단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2018평창사진공동취재단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이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방남 일정을 모두 마친 뒤 12일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북으로 돌아가고 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이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방남 일정을 모두 마친 뒤 12일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북으로 돌아가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그렇다고 눈물만 흘리고 있을 일은 아니다. 동계올림픽을 끝내고 다가올 정세에 대해 우리는 충분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이미 미국의 팬스부통령의 망언과 아베총리의 행동들에서, 주변국가들의 차가운 시선과 노골적인 반평화 발언과 행동들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민족적 요구를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들이 노리는 반평화 반통일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뿐 우리에겐 긴장이거나 공포의 연장이거나 죽음일 뿐이다.

뒤돌아보면 올림픽의 평화 정신은 많이 왜곡돼 왔던 사실이 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미국과 한국 등 서방세계의 반대로 반쪽 올림픽이 됐었고 1984년 LA 올림픽 때는 구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 불참으로 반쪽 올림픽 됐었다. 허나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한반도 전쟁위기라는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남북한과 전 세계가 함께 하고 있다. 평창 평화 올림픽이다. 이런 분위기가 올림픽의 진정한 정신일진대 열강들의 치졸한 행태들로 또 다른 반평화 올림픽으로 변질 되지 않도록 지혜와 힘을 쏟아야 한다.

“낮설지 않습니다”는 김여정의 말은 어떤 선물보다 값진 한마디였다. 그 말은 대립과 갈등이 우리간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강대국과의 북 또는 남간의 대립과 갈등 일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그런가운데 김여정이 내민 평양방문 요청 ‘김정은 친서’는 선물중에 제일 소중한 선물이다. 문재인대통령에게도 국민모두에게도 설날 선물로는 귀중한 선물을 받은 것이다. 문재인대통령은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말고 국민의 선물, 국민의 염원을 귀히 여기고 반드시 선(線)을 넘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극장에서 삼지연 관현악단을 비롯한 북한 예술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김여정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극장에서 삼지연 관현악단을 비롯한 북한 예술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청와대제공

김영남과 김여정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그들의 세련된 모습 속에는 안정감이 있었고 특히 시종일관 웃음기를 놓지 않은 김여정의 모습은 다정한 동생의 느낌마져 들었던걸 부인하지 못한다. 백석의 표현대로라면 “평양에 사는 키가 작고 아담한 웃음을 놓지 않는 여정이”였다. 대통령과 나란히 또는 가까이서 함께 경기를 관람하고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는 노정객의 가슴에 내려앉은 한은 우리네와 같은 민족화해와 통일이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 챘으리라.

설 쇠는 기간 내내 평창 겨울올림픽은 뜨겁게 치러질 것이다. 국민들의 희망이고 세계인의 바램이 그렇다. 보수언론과 보수정객, 그리고 보수단체들이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해 딴지를 걸고 있음은 시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행위들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열강들의 한반도 간섭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만들려고 했던 나라, 나라다운 나라, 평화와 통일로 나가는 나라가 되도록 촛불 정신을 끝가지 바로세우고 평창 올림픽을 응원하자.

돌아오는 22일 농민들은 평창에서 한바탕 신나는 설날 놀이를 준비하고 있다. 놀이야 함께 놀아야 재미있는 법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북에서 온 응원단, 선수 그리고 해외에서 달려온 응원단들이 어우러져 큰 잔치놀이마당을 열어보려고 한다. 평화(平和)는 목구멍(口)으로 넘어가는 음식(禾)을 함께 나눈(平)다는 것이다. 그래서 잔치엔 술도 있고 떡도 있고 떡국도 끓일 것이다.

먼 길 달려온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얼싸 안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따끈한 떡국 한 그릇에 서로의 얼었던 몸을 녹여보는 것이다. 이제 비로서 설다운 설 친족공동체, 민족 공동체의 전통적 미덕을 함께 나누도록 할 것이다. 이렇게 평창하늘 아래 평화의 한반도깃발이 출렁이는 모습은 상상만해도 가슴 설레지 않는가. 농민들의 의지로 평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남과북이 꽃피는 봄날 통일농사를 지어 함께 나누어먹는 꿈이 꿈으로 머물지 않도록 싸워나가야 한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무술년 개띠 해의 한반도평화의 서막을 열어제끼는 세계의 힘찬 응원이다. 전 세계가 우리민족에게 설날 선물을 준 셈이다. 이 귀한 선물을 걷어차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더 이상 역사를 후퇴 시키지 말고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 기필코 평화와 통일의 나라를 만드는 초석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여우난골족’이기에.....

戊戌(무술) 元旦(원단) 歸廬齋(귀려재)에서 한도숙 세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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