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언론 스테이건(Steigan)에 게재된 프레드 조스의 글 ‘미 CIA, 1953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우크라이나 나치화’를 번역해 싣는다. 조스는 CIA 기밀 해제 문건을 증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나치화 프로그램을 상세하게 증명하고 있다. 최근 네오나치로 알려진 아조프연대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미국이 나치를 부활했다는 의혹이 꾸준하게 제기돼왔다. 조스의 이 글은 지금까지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에 충분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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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민병대 아조프 연대 대응 방안에 대한 회의 중인 미국과 캐나다 군대. Azov의 웹사이트에서. (2018)
▲나치 민병대 아조프 연대 대응 방안에 대한 회의 중인 미국과 캐나다 군대. Azov의 웹사이트에서. (2018)

미 CIA는 1953년부터 우크라이나를 나치화했다.

미국의 냉소와 악은 끝이 없다. 나치즘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미국에 의해 지속되었고 우크라이나에 지금도 건재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중앙정보국(CIA)이 3,800개 이상의 기밀문서를 해제했다. 그 문서는 1953년 이후 CIA가 우크라이나를 불안정하게 할 목적으로 우크라이나 나치 지도자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의 지지자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나치화하기 위해 두 가지 주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는 상세한 증거를 제공한다.

▲«Gode ukrainske medborgere» 나치 무장조직 아조프 연대 구성원
▲«Gode ukrainske medborgere» 나치 무장조직 아조프 연대 구성원

CIA는 1948년 우크라이나에 도착했고 1953년 나치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CIA 프로그램은 40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머물고 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최고 해방위원회’(UHVR),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 ‘우크라이나 반란군’(UPA)과 같은 반소련 우크라이나 저항 단체에 자금과 장비를 제공하는 준군사 작전으로 전개했다.

CIA는 또한 UHVR의 반데라파, ZP-UHVR, CIA의 외국 기반 가상지부와 영국 MI-6 정보국에 지원을 제공했다. 소련 우크라이나에 잠입했다가 추방된 서방의 우크라이나 요원들을 이용하여 우크라이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초기 CIA의 이 작전은 코드명 ‘공기역학 프로젝트’(Project AERODYNAMIC)로 명명되었다.

1953년 7월 CIA 기밀문서에 이 작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프로젝트 ‘AERODYNAMIC’의 목적은 냉전 및 열전을 위한 반소 우크라이나 저항의 활용 및 확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UHVR, OUN, 서유럽과 미국에 있는 ZP-UHVR 해외대표부, OUN-B를 활용할 것이다.” CIA는 1970년 이전 해제된 기밀문서에서 이미 1950년부터 ZP-UHVR과 접촉했다고 시인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의 여성 나치 UPA
▲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의 여성 나치 UPA
▲Vitali Klitschko – 키예프 시장, 나치 군사조직 아조프 연대의 두 대표와 함께 기꺼이 사진을 찍었다.
▲Vitali Klitschko – 키예프 시장, 나치 군사조직 아조프 연대의 두 대표와 함께 기꺼이 사진을 찍었다.
▲2016년 우크라이나 라다(의회)에서 - 나치 경례를 한 그 남자는 노르웨이 Storting 대통령이다.
▲2016년 우크라이나 라다(의회)에서 - 나치 경례를 한 그 남자는 노르웨이 Storting 대통령이다.

나치 동조자들과 조직원들은 오늘날 키예프의 우크라이나 국가 정부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 침투해 있다.

‘AERODYNAMIC’은 소련 우크라이나에 현장 요원을 배치하여 우크라이나 저항 운동, 특히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OUN의 정보요원과 접촉선을 구축했다. CIA는 우크라이나의 ‘비밀’CIA 군대에 무기와 탄약을 포함한 통신 장비와 기타 물자를 공수하도록 주선했다.

CIA의 우크라이나 요원들은 대부분 서독에 있는 미 육군 대외정보부(FI-PP)에서 훈련을 받았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CIA 요원과 서방측 조정자 사이의 통신은 양방향 무전기(WT), 국제 우편 채널을 통한 단파, 비밀 공수 및 육로 운송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크라이나에 들어온 요원들은 최루탄 총, 북극 침낭, 점토 도끼, 참호 도구, 주머니칼, 초콜릿 바, 미녹스 카메라, 35mm 라이카 카메라, 필름, 소비에트 화장실 장비, 소비에트 모자와 재킷, 22구경 권총과 총알, 방수필름용 고무피임약 등이 포함된 키트를 휴대했다. 다른 요원에게는 라디오 세트, 핸드 제너레이터, 니켈 카드뮴 배터리 및 귀환 비콘(휴대용 미사일 시스템의 표지 이름일 가능성이 있음)이 지급되었다.

‘AERODYNAMIC’에 따른 관련 프로젝트는 CAPACHO라는 코드명으로 명명되었다

▲자유연대(Pravij Sector)와 아조프연대는 미국의 자매조직 중 하나다.
▲자유연대(Pravij Sector)와 아조프연대는 미국의 자매조직 중 하나다.

CIA 문서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를 통해 ‘AERODYNAMIC’ 운영이 1970년까지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첩보 소설 ‘bak Jernteppet(철의 장막 뒤에)’보다 더 생생하고 세련된 심리전 작전을 수행했다. CIA는 맨해튼에 출판사를 설립해 우크라이나로 밀수될 반소련 ZP-UHVR 서적을 인쇄하고 출판했다. 새로운 전장은 오데사 근처의 습한 뒷마당이나 키예프의 차갑고 황량한 창고가 아니라 출판 및 방송 미디어 세계가 중심이 된 것이다.

CIA가 맨 먼저 설립한 회사는 ‘프롤로그 연구‧출판협회’로 나중에 ‘프롤로그’로 알려지게 되었다. 프롤로그의 CIA 암호명은 ‘AETENURE’였다. 이 단체는 프롤로그에 우크라이나어로 실렸다. CIA는 프롤로그를 ‘ZP-UHVR의 활동을 위한 비영리 비과세 위장 회사’라고 언급했다. CIA가 프롤로그에 자금을 대는 데 사용한 ‘법적 실체’는 기밀 정보로 남아 있다. 그러나 CIA 기밀문건에는 프롤로그 자금이 “덴버와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뉴욕 사무실로 보내졌고, 프롤로그 자금의 출처를 보여주는 영수증이 뉴욕 금융당국의 심문 자료로 제공됐다”고 적혀 있다.

프롤로그 뮌헨 사무소에 대해 CIA 문서는 자금 지원이 뉴욕의 프롤로그 협력 은행과는 별개의 계좌에서 나온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 계좌 역시 기밀로 남아 있다. 1967년 CIA는 프롤로그 뮌헨과 우크라이나에서 망명한 민족주의 저널 ‘수차스니스트(Suchasnist)’의 뮌헨 사무실을 통합했다.

CIA 문서는 또한 FBI(미국 연방수사국) 요원들이 뉴욕의 ‘AERODYNAMIC’ 요원을 교란시켰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1967년 CIA 지령은 미국의 모든 ZP-UHVR 요원들에게 소련과 우크라이나 SSR의 유엔 담당 외교관 및 유엔 직원들과의 접촉을 FBI나 CIA 프로젝트 사건 담당관에게 보고하라고 권고했다. 뉴욕과 뮌헨의 ‘AERODYNAMIC’ 담당 CIA 요원들은 코드명 AECASSOWARY 요원으로 명명되었다. MI-6의 유명한 요원 ‘007’처럼 간결함이 고려되진 않았다. 뮌헨의 CIA 요원은 코드명 AECASOWARY/6, 뉴욕의 선임 요원은 AECASOWARY/2였다.

AECASSOWARY 요원은 1959년 비엔나 세계청소년회의에 잠입한 다른 ‘AERODYNAMIC’ 팀에 참여해 같이 운영했다. 우크라이나 젊은이들과 접촉하는 비엔나 잠입 작전은 CIA에 의해 코드네임 LCOUTBOUND로 명명되었다.

이 문서에는 내가 지금 여기에서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료가 있다. 모든 것을 포함하기에는 기사가 너무 길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서부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나치화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서부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나치화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요약하자면, 미국의 초점은 우크라이나 나치 지도자 스테판 반데라 세력의 유지와 육성에 집중되어 있으며, CIA는 그들이 찾은 모든 기회를 이용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나치화된 우크라이나를 만들었다.

1958년 CIA는 독일에 있던 스테판 반데라를 몰래 미국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당시 소련 KGB는 이미 이 계획을 알고 있었고, 스테판 반데라가 숨어있던 지하실 계단에서 총을 쏴 죽였다.

지난 7월 13일은 스테판 반데라가 나치 조직 OUN-B와 UPA 부대와 함께 벌인 볼린 대학살 7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시 나치는 큰 길을 따라 볼린으로 가는 나무에 어린 아이들을 산채로 매달았다. 바로 그 자리에 이 비극적인 학살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볼린으로 통하는 길목 나무에 어린아이들이 산 채로 매달려 있다.
▲볼린으로 통하는 길목 나무에 어린아이들이 산 채로 매달려 있다.

79년 전 이날, 세계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 중 하나인 볼린 대학살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나치 무장세력은 갈리시아에서 수만 명의 민간인(폴란드인, 러시아인, 유대인)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이 피비린내 나는 일요일, UPA 부대는 볼히니아에 있는 100개의 폴란드 정착촌을 아침 일찍 공격해 닥치는 대로 죽였다.

우크라이나 나치들은 총알을 낭비하지 않고 무방비 시민을 도끼로 자르고 칼로 찌르고 망치로 때렸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살해 후 시신과 마을을 불태워버렸다.

▲볼린 대학살이 일어난 현장
▲볼린 대학살이 일어난 현장

1943년 7월에 총 500개 이상의 폴란드 마을이 파괴되었고 약 2만 명의 폴란드인이 살해되었다. 79년 후, 새로운 ‘재판소’(법정)가 기다리고 있다. 이 사악한 우크라이나 나치 살인자들의 손자들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 사람들을 계속 살해한 범죄를 저질렀다.

▲오늘날 스테판 반데라는 우크라이나 신나치에 의해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오늘날 스테판 반데라는 우크라이나 신나치에 의해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스테판 반데라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그의 생일은 공휴일과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수도 키예프로 가는 주요 도로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리보프와 리브네에는 나치 독일의 유명한 나치 인물의 이름을 딴 거리와 장소가 있다. 리보프에는 독일 나치 유니폼을 입어야 출입이 가능한 식당과 나이트클럽이 있다. SS기호가 깃에 붙어 있는 장교 나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권이 있다. 이 얼마나 아픈 현실인가?

다음 사실을 추가한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에 적용되지 않는다. 동양의 형제들과 평화를 원하는 매우 좋은 사람들도 그곳에 많이 있다. 단지 그들은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감히 항의하지 못할 뿐이다.

NRK, Tv2 또는 노르웨이 주요 언론에서 이런 진실에 대해 읽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이 속고 있고 진실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유로마이단 쿠데타 현장을 찾은 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보 빅토리아 눌런드
▲유로마이단 쿠데타 현장을 찾은 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보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보 빅토리아 눌런드는 미국 의회에서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50억 달러를 들여 우크라이나 통제권을 러시아로부터 탈환했다고 밝혔다.

‘민주주의 영웅’으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젤렌스키는 700명의 국회의원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국가보안국(SBU) 수장을 체포했다. 서방은 젤렌스키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에 박수를 보낸다. 앞서 그는 국내 18개 야당의 활동을 금지시켰고, 야당 지도부 대부분을 구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르웨이 언론은 이런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