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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진보비판> 9. 탈민족주의는 진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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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2-25 05:3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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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진보비판> 9. 탈민족주의는 진보가 아니다

 

 

곽동기 상임연구원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1999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라는 도발적 제목의 책을 펴낸 후 한국 내 지식인 사이에서 민족주의가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민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만들어진 개념에 불과한지, 공격적 민족주의와 방어적 민족주의는 본질에서 같은지, 민족이라는 가치는 인권, 평등 등 다른 가치와 선후차를 따질 수 없는지 등 그동안 ‘상식’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모두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렇게 민족주의가 낡은 개념, 나아가 ‘반동’ 이념으로 낙인찍히면서 민족주의를 버리자는 ‘탈민족주의’가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탈민족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진보는 민족, 조국, 애국 이런 단어들을 기피하게 되었고 이는 고스란히 보수의 전유물로 변질되었다. 민족주의의 비슷한 개념인 애국주의 역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5월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애국가 제창’ 발언을 하면서 ‘애국가 논쟁’이 촉발됐다. 이 논란은 나중에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의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는 발언, 대선 티비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와 이정희 후보 사이의 애국가 논쟁으로 이어졌다.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가 국가인가, 진보인사들이 애국가 제창을 거부했는가 하는 문제들은 사실관계를 잘 정리하면 될 문제다. 여기서는 더 근본적으로 진보운동은 ‘민족’, ‘애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고자 한다.

 

1. 민족주의의 뿌리

 

① 민족주의의 개념

 

애국이란 나라를 사랑하는 것으로 보통 사람들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애국이란 단어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애국이 국수주의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 같은 이들은 아예 ‘애국’을 ‘애국질’이라 비하해 부르며 ‘딸꾹질’이라고 비아냥댄다.

 

이처럼 애국이란 용어는 국수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국수주의는 민족주의로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이런 용어들이 엄밀한 구분 없이 혼용되고 있으며 긍정성과 부정성이 뒤섞여버린 상태로 유통되고 있다. 이 용어들부터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

 

가장 먼저 이 용어들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인 민족주의부터 정리해보자.

 

민족주의의 사전적 정의는 민족의 독립이나 통일, 또는 우월성을 내세우는 사상이나 운동이다. 보통 국민들은 민족주의 하면 백범 김구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를 떠올리며 긍정적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보통 민족주의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그 이유는 민족주의를 서양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원래 영어의 내셔널리즘(Nationalism)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내셔널리즘은 민족주의 뿐 아니라 국민주의, 국가주의, 국수주의 등 다양하게 번역된다. 서양에서는 내셔널리즘을 전체주의에 가까운 국가주의, 국수주의의 의미로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특히 파시즘의 폐해를 직접 겪은 유럽인들은 내셔널리즘을 파시즘의 뿌리로 보면서 증오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임지현 교수처럼 서양에서 유학한 지식인들은 이런 서양식 가치관을 받아들여 한국에 와서도 민족주의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국민들이 흔히 사용하는 민족주의라는 용어는 서양의 애국주의(Patriotism)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애국주의는 민족과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서양에서도 대체로 긍정적으로 인식한다.

 

② 민족주의의 출현

 

민족주의라는 용어가 서양에서 처음 등장한 건 16세기 신성로마제국 시기다. 당시 개신교가 출현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독립 국가들이 출현하면서 국민들을 단결시키기 위한 이념으로 민족주의를 이용했다.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시민 혁명(부르주아 혁명)과 관련 있다. 봉건시대 서유럽은 영주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영지를 통치한데 반해 중앙 권력은 그리 막강하지 못했다.

 

이때 등장한 신흥 자본가계급(부르주아지)은 민족주의를 내세워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세우려 하였다. 봉건 영주 밑에서 신음하던 농민들도 이에 호응해 시민 혁명을 성공시켰다. 물론 막대한 자본을 쥐고 있던 신흥 자본가계급이 시민 혁명을 주도했고 그 결과 탄생한 근대적 민족국가는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 

 

 

 

 

민족국가에서 정권을 쥔 자본가계급은 더 많은 이윤 획득을 위해 시장 확대에 나섰다. 홉스봄(Eric J. Hobsbom)은 자신의 저서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창비, 1994)에서 “한 민족이 경제발전을 이룩하려면 충분한 규모를 갖추어야만 했다”면서 “민족형성이 불가피하게 팽창의 과정으로 인식되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민족주의는 프랑스의 ‘쇼비니즘’, 미국의 ‘명백한 운명’, 독일의 ‘철혈정책’ 등으로 변형되면서 국경을 넓히기 위한 침략전쟁에 동원되었다.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민족주의는 더욱 부정적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20세기 들어와 파시즘으로 변질되면서 인류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었다.

 

③ 저항 민족주의의 출현

 

한편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 민족들에게 민족주의는 민족해방운동의 지도사상 역할을 하였다. 이들에게 민족주의는 민족의 주권을 되찾는 정신적 힘이었고 이를 저항 민족주의라 부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식민지의 해방운동에는 크게 세 가지 운동이 있었다. 첫째는 자본가나 봉건 지주계급이 주도하는 민족주의 운동이며, 둘째는 노동자, 농민이 주도하는 민족주의 운동, 셋째는 민족주의를 배제한 사회주의 운동이다. 이들은 한 민족 안에서 서로 경쟁적으로 발생하였는데 대체로 노동자, 농민이 주도하는 민족주의 운동으로 수렴하였다. 

 

 

 

 

첫째 민족주의 운동은 자본가나 지주계급이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를 지나치게 경계하면서 반제국주의의 입장에 철저히 서지 못해 대중들에게 외면당하면서 실패하였다. 일제강점기 3.1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주의 세력이 결국 분열과 무기력에 빠진 사례로 확인할 수 있다. 홉스봄은 앞의 책에서 “(영국) 보수당은 히틀러가 대영제국을 위협하기보다는 볼셰비즘을 저지하는 강력한 방벽이라는 점을 정확히 인지했다”면서 독일의 침략을 대하는 영국 자본가계급의 한계를 지적했다.

 

셋째의 경우는 민족의식이 강한 노동자, 농민들이 사회주의 운동을 외면하면서 고립되었다. 임지현 교수는 자신의 책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1999)에서 “역사는 민족주의적 본능이 국제주의적 의식보다 훨씬 더 강력한 대중적 힘을 갖는다는 것을, 심지어는 사회주의 사회에서조차 그렇다는 것을 입증한바 있다”면서 당시 민족주의를 배제한 사회주의 운동의 한계를 설명하였다.

 

이처럼 16세기에 출현한 민족주의는 20세기 들어와 한 편에서는 침략의 도구로, 반대편에서는 침략을 막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④ 우리 역사에서 나타난 민족주의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게 민족주의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물론 민족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근대에 들어와서 등장하였다. 그런데 민족주의라는 용어가 없다고 해서 그 전에는 민족주의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민족이란 단어가 생기기 전에도 민족은 있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다.

 

서양의 경우 민족의 분화와 발전이 더디어 민족주의가 16세기에야 출현했지만 동양의 경우 이른 시기에 민족이 분화, 발전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민족주의적 흐름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경우 고려시대부터 뚜렷한 민족주의적 흐름이 나타났는데 중국이나 몽골, 일본 등 외부의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이런 흐름을 더욱 강해졌다. 단군 왕검을 민족의 시조로 섬기고 외적을 물리친 장군들을 추앙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즉, 우리 역사에서 민족주의는 처음부터 저항 민족주의, 방어적 민족주의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런 민족의식은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의 사상적 바탕으로 발전했다. 구한말 민족주의는 척양척왜(서양과 일제를 배척한다)의 기치를 내건 동학농민혁명부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의 3.1운동, 이후 의병과 광복군 활동 등 반일무장활동으로 이어졌다. 김구, 안중근, 신채호, 여운형 등 많은 국민들이 존경하는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은 대체로 민족주의자들이었다.

 

민족주의는 오늘날 일본의 독도 강탈 야욕에 맞서고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반일운동의 뿌리가 되고 있다. 현재의 반일운동은 한일군사협력을 추진하는 정부를 압박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한일군사동맹을 가로막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또 민족주의는 주한미군의 만행을 규탄하고 한미 FTA와 같은 미국의 경제침탈을 반대하는 등 미국의 부당한 개입과 간섭에 저항하는 바탕이기도 하다. 

 

 

 

 

2. 민족주의 관련 논쟁

 

① 민족주의의 양면성

 

민족주의는 긍정성과 부정성의 양면을 보인다.

 

민족주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민족주의가 민족 구성원의 민족의식을 자극해 민족 발전의 강한 원동력이 된다고 여긴다. 특히 민족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민족의 단결을 보장하고 초월적인 힘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강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제가 승승장구하면서 광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다. 

 

 

 

 

반면 민족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민족주의가 과잉으로 흐르면 배타적인 국수주의로, 나아가 파시즘으로 변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다른 민족, 국가를 침략하게 되고 인종청소와 같은 끔찍한 반인륜범죄까지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양면성은 민족주의가 그 자체로 완전한 이념이 아니라 다른 이념과 결합해야 비로소 완결성을 갖는 이념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민족주의는 민족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념인데, 민족의 이익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여러 다양한 민족주의가 출현할 수 있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하나로 규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가와 민족을 구성하고 있는 계급 사이에 이해관계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본가계급이 생각하는 국가의 이익과 노동자계급이 생각하는 국가의 이익은 공통점도 있겠지만 차이점도 있으며 이에 따라 어떤 계급이 주도하는 민족주의냐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고 민족주의가 양면성이 있으므로 민족주의 자체는 긍정성도, 부정성도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인류가 발전하면서 민족이 출현한 것처럼 민족의 출현과 더불어 민족주의가 나타난 것도 하나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과학의 발전을 되돌아보자. 인류의 발전과 더불어 과학도 발전했는데 과학의 발전이 인류 문명을 진보시킨 부분도 있으나 전쟁무기 개발, 환경 파괴 등 부정적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고 하여 과학 발전은 인류의 적이니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근본주의적 주장은 결코 호응을 얻을 수 없다.

 

또한 과학 자체는 긍정성도, 부정성도 없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역시 올바른 주장은 아니다. 과학은 분명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중요한 원동력이었으며 다만 사회 발전의 한계로 인하여 부정적 측면도 존재하는 것이다.

 

실재하는 민족을 부정하고 민족주의를 터부시하는 것은 현실 도피와 다를 바 없다. 구 소련이 한때 공산주의 이론을 교조적으로 적용해 민족을 부정했다가 어떤 폐해를 낳았는지는 고려인 이주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반면 러시아의 푸틴 정부는 민족주의를 적극 부각해 러시아의 전성기를 구현하고 있다.

 

② 민족과 계급의 관계

 

진보운동 안의 민족주의에 대한 논란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민족과 계급의 관계다. 박노자 교수는 2007년 한겨레 기고 <민족 ‘신화’ 넘어 국경 없는 ‘계급연대’로 가자>는 글을 통해 “계급 모순이라는 기본적인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안병욱 교수는 <초국적 자본 견제할 힘 저항적 ‘민족의식’에 있다>는 기고문을 통해 “한국 사회는 계급·젠더 문제 이전에 국가 간의 이해 대립이 초래한 모순에 의해 더 좌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족문제의 해결 없이 계급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일제강점기 노동자, 농민의 현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현재도 한국 사회가 미국의 영향 아래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기에 노동자들은 미국 자본과 재벌들의 이중착취에 시달리고 있으며 농민들은 저가 수입농산물에 시달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세계 곳곳의 식민지들이 독립을 이룬 후 민주개혁을 통해 계급문제를 일정정도 해결했다는 역사적 사례도 중요하다.

 

또한 민족주의는 IMF 사태나 한미 FTA 체결 등 해외 자본의 국내 침투를 거부하며 계급문제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한때 민족주의를 앞세운 볼리바르 베네수엘라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막아내는 데 큰 성과를 냈다. 국내 노동운동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색깔론 역시 통일운동과 같은 민족주의 운동이 성장하면 극복할 수 있다. 노동계급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면 늘 붙는 ‘빨갱이’, ‘종북세력’ 같은 딱지들은 모두 민족 분단이 만든 기형적 모습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노동계급의 국제연대에도 긍정적 역할을 한다. 이 부분은 엥겔스가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보인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애초에 엥겔스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노동자들의 독립운동이 영국 노동계급의 혁명 역량을 분산시키므로 아일랜드 노동자들도 영국 혁명을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영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 자연히 아일랜드도 독립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영국이 아일랜드를 수탈해 얻은 초과 이윤이 영국 노동계급을 탈혁명화시킨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거꾸로 아일랜드가 독립해야 영국 혁명도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엥겔스는 이 문제를 “진정으로 민족주의적일 때 가장 국제주의적으로 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③ 민족과 개인의 관계

 

민족주의에 대한 두 번째 논란은 민족과 개인의 관계다. 김상봉 교수는 2007년 한겨레 기고를 통해 “홀로주체로서 군림하는 조국과 민족 아래에서 개인은 주체성을 빼앗기고 전체의 도구로 전락한다”고 주장했다. 김상봉 교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론하면서 민족주의를 통해 “개인을 국가의 부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으로 훈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분명 일제 강점기 일왕에 대한 맹세를 본뜬 것으로 군국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문구를 수정하였다.

 

애국애족이 과연 개인의 주체성을 억압하는 것일까? 오늘날 개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단위는 국가다. 따라서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이겨내고 국가의 발전을 이루는 것이 개인의 주체성을 보장하는 데서 기초가 된다. 그리고 나라의 독립과 발전의 원동력은 애국애족의 정신이다. 개인이 개인주의에 기초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면 집단도 저절로 발전하리라는 자유주의적 발상은 거대 자본과 제국주의적 침탈 앞에서 무기력할 뿐이다.

 

물론 과거 파시즘이 애국애족을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는 파시즘의 문제지 애국애족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히틀러가 이끌었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일명 나치당)을 두고 ‘사회주의’와 ‘나치즘’을 연결시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원래 민족과 개인의 관계 문제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양에서는 논란거리겠지만 집단주의가 발달한 동양에서는 큰 논란거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개인주의가 확대되고 유럽 사조가 무분별하게 유입되면서 국내에서도 민족과 개인의 관계 문제가 논란거리가 되어버렸다. 이 문제는 유럽을 비롯한 서양 사상과 이론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나치즘의 폐해가 너무 커서 민족주의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지만 동양은 정서가 다르다. 사회주의 복원을 주장하는 중국의 시사평론가 궈쑹민은 중국에서 ‘좌파’는 ‘애국자’며 ‘우파’는 ‘매국노’라고 하면서 ‘애국주의’는 외국의 좌파엔 없는 중국 좌파의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탈민족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박노자 교수조차 임지현 교수 등의 민족주의 비판에 대해 중산층이 민중들의 움직임에 불편한 심기와 경멸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만큼 유럽 유학파들의 민족주의 비판은 유럽보다 더 극단적이라는 말이다.

 

앤서니 스미스 영국 런던정경대 민족주의연구센터장도 자신의 저서 ‘족류: 상징주의와 민족주의’(아카넷, 2016)를 통해 지식인을 중심으로 민족주의를 부정하면서 정치적 열정이 사라져버렸다고 평가했다. 민족주의를 버리고 개인주의를 택한 이들이 공동체에 대한 정치적 변화 의지를 버린 결과 공동체는 ‘애국’을 표방한 극우세력들이 독차지하게 되었다.

 

‘족류: 상징주의와 민족주의’를 번역한 김인중 교수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민족주의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비판하더라도 “내가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끼고,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에 뭔가 도움 되고 싶다는 열망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건 목욕물 버리다 아기까지 함께 버리는 모양새다”고 주장했다.

 

3. 진보는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1999년 임지현 교수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책을 출간한 후 한국 사회에는 탈민족주의 바람이 불었다. 민족은 실재하지 않고 상상 속에 존재(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참조)한다는 주장이나, 근대 이전엔 민족주의가 없었다는 주장이 넘쳐났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이런 주장들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으나 수많은 미디어들이 반복해서 ‘민족은 낡은 개념이다’, ‘순혈주의가 문제다’, ‘다문화사회가 되었다’고 주입하면서 차츰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는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어떻게 봐야 할까?

 

먼저 민족주의의 진보성을 인정해야 한다. 민족주의는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 간섭을 막아내는 원동력이며 민족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열정의 토대다.

 

지금 한국 사회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심각한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은 무너져가는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한일 동맹을 강요하고 있으며, 한국을 든든한 군사기지로 삼아 북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고, 한국에 신자유주의를 이식하며 한미 FTA로 경제를 침탈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보란 미국의 예속과 간섭, 그리고 미국에 기생하는 사대주의 세력에 맞서 제2의 자주독립운동을 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상·정신적 바탕에 민족주의가 긍정적 역할을 한다.

 

주변 외세의 방해로 유지되는 분단은 ‘헬조선’ 탈출구를 가로막고 있다. 통일은 남북 모두에게 경제는 물론 정치, 국방, 외교,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비약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남북경제협력이 침체기 한국 경제의 활로가 된다는 건 자본가들도 인정한다. 기업가들이 나서서 5.24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통일의 과정에서 기형적인 ‘종북공세’가 무너지면 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통일이 되면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 자주적이고 주동적인 외교가 가능해지며 남북연합군은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의 영토 침략 기도를 분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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