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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절 특집 4. – 김일성 주석의 낙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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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4-14 18:2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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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1969416일 강선제강소를 현지 지도하는 김일성 주석 (조선의 오늘에서)

4 15일은 조선민족의 영웅 김일성 주석께서 탄생하신 날이다.

김일성 주석님은 1912 4 15 평양 만경대 가난한 농가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시던 김형직 선생과 어머니 강반석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올해로107 탄생일을  맞이하여 세계인들에게 보여주신 그분의 생전 자취를 유럽지역 선군연구회를 통하여 회고해 본다.

코레아뉴스 편집실

- 태양절 특집 4. –   김일성 주석의 낙관주의

 

언제인가 외국기자들이 김일성 주석(1912-1994) 80세에 50대의 건강을 지니신 비결이 무엇인가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때 주석께서는 천적으로 사는데 비결이 있다고 대답하시였 다고 한다.

 

사실 그의 한생은 막아나서는 엄혹한 시련과 난관을 웃음과 노래로 이겨내며위대한 승리를 이룩한 한생이라고 할수 있다.

 

김일성 주석의 관주의는 미래에 대한 확신에서 부터 나오는 것이다.

 

께서 조직 전개하신 15성상의 항일무장투쟁은 그 간고성에 있어서 인류사에 전무후무한 것이였다. 지난 세기 전반기 조선인민혁명군은 빼앗긴 나라를되찾기 위하여 국가적 후방도 정규군의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제국주의와 맞서야 했다. 조선인민혁명군에는 30~40℃를 오르내리는 만주광야의 강추위와 식량, 소금, 신발, 약품과 같은 필수품의 결핍도 이겨내기 어려운 적이였다. 나라를 해방하기 위한 무장투쟁이 앞으로 언제 승리하겠는지는 누구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주석께서는 미래를 락관하시였다. 일제를 멸망시키고 로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여 행복하게 사는 새 사회를 반드시 건설할수 있다고 굳게 믿으시였다.

깊은 밤 우등불가에서 《조국광복회10대강령》(조국광복회; 전민족적인 반일민족통일전선체)을 한조항 한조항 써나가시며 해방된 새조선을 그려보기도 하시였고 해방이 되면 평양으로 함께 가자고 대원들과 약속도 하시였다. 께서는 몸소 노래가사도 쓰시고 연극대본도 만드으며 어려운 전투가 끝난후에는 예술공연무대도 펼치고 운동회도 조직하시였다. 어느해 5.1절 극심한 식량난에시달리던 부대가 개구리료리로 끼니를 에웠을 때였다. 이때 주석께서는 우등불가에 둘러앉은 대원들과 조국에 대한 이야기, 고향의 부모처자들에 대한 이야기, 승리할 래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며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 주시였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주석께서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시고 나라의 해방을 이룩하실 수 있었다.

 

김일성 주석의 락관주의는 인민의 힘을 굳게 믿으신데부터 나온것이다.

청소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제국주의련합세력과의 대결인 조선전쟁(1950-1953)이 일어나게 되자 세계는 이 나라의 운명을 우려하였다. 하지만 단결된 인민의 힘을 믿으신 그께서는 승리를 관하시였다. 한명의 병사가 금싸래기처럼 귀중할 때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고 대학생출신군인들을 교정으로불러주신것, 누구도 전쟁의 운명을 확정짓지 못하고있던 때에 전후복구건설의 설계도를 작성하도록 하신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전쟁의 페허를 갓 가시고 모든 것이 어려웠던 조선이 사회주의공업화의 토대를 닦는것을 목표로 한 제1 5개년인민경제계획수행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다른 나라들은 물론 국내의 일부 사람들도 이 계획이 당시의 형편으로는 도저히 수행할수 없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분은 인민의 힘을 불러일으킨다면 능히 목표를 달성할수 있다고 관하시였다.

 

께서는 강선제강소(당시)동자들속에 들어가시여 어려운 나라의 형편을 하나하나 알려주시며 그들을 증산에로 불러 일으키시였다. 하여 동자들은 6t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t의 강재를 밀어내여 혁신의 기치를 들었다. 이러한 대고조운동이 온 나라에 파급되게 됨으로써 제1 5개년계획의 공업총생산액계획은 불과 2년반동안에 완수될수 있었다. 조선이 세계에 천리마의 나라로 알려지게 된것이 바로 이때부터였다.

 

한 인간의 생리적년령이 생활을 얼마나 천적으로 하는가 하는데 따라 좌우되는 것처럼 한나라 혁명의 성패나 생명력은 혁명적 관주의에 의해 좌우된다는것이 그의 견해였다. 이 견해의 정당성은 그의 생애의 전기간에 걸쳐 진리로 확증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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