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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4-15 11:2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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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절을 맞으며 제18차 김일성화축전 개막식이 13일 평양의 김일성화김정일화전시관에서 열렸다.


9.김일성 주석과 수카르노 대통령


지금으로부터 1년 전 1965월 김일성 주석이 적도의 섬나라 인도네시아를 공식방문하였다.

오래 전부터 김일성 주석을 열렬히 흠모하여오던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은 주석을 인도네시아의 꽃밭으로 불리우는 보고르식물원으로 안내하였다.

1817년에 창설된 이 식물원은 규모와 시설에 있어서 열대식물원들 가운데서 앞자리를 차지하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식물원이었다.

식물원 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보고르식물원 방문은 백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식물원에서 처음으로 되는 최상최대의 경사라고 하면서 열렬히 환영하였다.

대통령의 안내를 받으며 꽃들을 돌아보던 김일성 주석은 유달리 아름다운 란꽃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름다운 봄나비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는듯 한 모양, 기묘하게 이루어진 꽃의 구조와 그것의 매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편안하게 균형을 잡은 째임새, 진분홍보라색의 선명하고 단아한 색갈 등 보면 볼수록 우아하면서도 진귀한 감을 자아내는 꽃이었다.

란꽃을 정겹게 바라보던 김일성 주석은 대통령에게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을 보여준 데 대하여 사의를 표시하고 이 꽃의 육종성과를 높이 평가하였다.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이름도 없던 그 꽃은 한생을 꽃육종에 바쳐온 인도네시아의 이름있는 식물학자가 오랜 세월 온갖 심혈을 바쳐 새롭게 육종해낸 꽃이었다.

사실 김일성 주석이 인도네시아에 오는 때에 꽃을 만발하게 피우자는 것은 이미 전부터 품어온 수카르노 대통령의 소망이었고 보고르식물원의 일꾼들과 학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과 식물원의 학자들과 종업원들의 고심어린 노력으로 김일성 주석이 쟈까르따에 방문하는 때를 같이 하여 꽃은 아름답게 피여나게 되었다.

그들이 이 꽃을 놓고 《열대수림 속의 미인》이라고 환성을 올린 것은 결코 순간적인 흥분이나 즉흥이 아니었다.

생기있게 만발하는 난초꽃을 보며 기뻐하는 김일성 주석에게 수카르노 대통령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결심을 정중히 말씀 올렸다.

존경하는 김일성 수상님, 수상님의 사상은 위대하여 세계를 움직이기에 수상님은 온 세계를 가지고 계시는 것이나 같습니다. 수상님이시야말로 자주시대를 밝히는 태양이시며 만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진귀한 꽃에 수상님의 존함을 모셔 <김일성화>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그후 식물학자들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김일성화의 재배방법을 완성하였으며 김일성 주석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지 10돌이 되는 해인 1975년에 활짝 피운 김일성화를 보내왔다.

   














 

 

 

 

 

 

 

 

 

 

 

 

 

 

 

 

 

 

 

 

 

 

 

 

 

 

 

 

 

세기와 세기를 이어 지구상에는 수천수만 종의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어났다. 그 속에는 자기의 아름다운 색갈과 향기로 화초계를 장식한 유명무명의 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여 꽃이름에 대한 유래도 여러가지이다.

해바라기나 백일홍과 같이 꽃의 특성과 관련하여 부르는 이름도 있고 히야신스와 같이 고대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왕자의 이름을 붙인 것도 있다. 그리고 다리아나 게르베라와 같이 과학자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 꽃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김일성화와 같이 꽃에 위인의 이름을 단 일은 없었다.

천하명화 김일성화는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운 꽃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사상의 광휘로운 빛발로 인류의 앞길을 환히 밝힌 김일성 주석의 위대성을 상징하는 태양의 꽃이며 뜨거운 심장없이, 열화와 같은 사랑이 없이 부를 수 없는 위인숭배의 고귀한 결정체이다.

김일성화는 1980년대초 영국에 있는 국제 란과 계통의 학회에 정식 학명으로 등록되었으며 온 세계에 명화 중의 명화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김일성화는 오늘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에서 만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 태양절을 맞으며 만경대고향집을 찾아오는 근로자들 -

8.태양절

태양절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신 민족최대의 명절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1912)415일 만경대의 혁명적이며 애국적인 가정에서 탄생하시였다.

우리 나라에 암흑의 비운이 드리웠던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조국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주체의 태양으로 탄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어리신 나이에 조국해방의 큰뜻을 품으시고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간고한 사선의 길을 수없이 헤쳐오시였으며 시련의 고비고비를 넘으시였다.

항일의 눈보라, 전쟁의 불구름, 전후의 시련, 사회주의건설의 온갖 난관을 진두에서 헤쳐오시며 겪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만난고초는 헤아릴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였기에 우리 인민은 착취와 압박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려던 세기적숙망과 념원을 이룰수 있었고 선진적인 사회주의제도하에서 참다운 인간의 존엄과 행복, 영예를 누릴수 있었으며 오늘도 희망과 신심에 넘쳐 살며 싸워나가고있다.

참으로 혁명의 영재이신 김일성동지는 조국의 해방과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절세의 애국자, 위대한 혁명가이시며 온갖 난관을 헤치시며 피어린 싸움마다에서 백전백승의 영예를 떨치시고 미래를 앞당기며 길이 빛날 기적을 이룩하여오신 전설적영웅이시다.

또한 인류해방투쟁사에 불멸의 혁명업적을 쌓아올리신 탁월한 사상리론가이시며 인민을 한품에 안으시여 뜨거운 사랑으로 보살피시고 이끌어주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 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혁명업적은 반만년의 유구한 우리 나라 력사와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력사에서, 새 생활을 지향하는 인민들의 현대력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한다.

주체63(1974)41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당시)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념원과 충정의 마음을 담아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인류해방, 계급해방, 민족해방에 관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이 땅우에 빛나게 실현하며 그이께서 우리 혁명과 세계혁명발전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빛내이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탄생하신 415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선포하였다.

한없이 숭고한 도덕의리를 지니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415일을 태양민족의 영원한 명절로 되게 하여주시였다.

주체86(1997)78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당시) 결정으로 주체의 태양이 솟아오른 415일을 태양절로 제정한다는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다.

태양민족의 크나큰 긍지를 간직한 우리 인민은 태양절에 다채로운 행사들을 진행하며 성대히 경축하고있다. 세계의 혁명적인민들도 이날을 맞으며 여러가지 다채로운 정치, 문화행사들을 진행하고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415일과 16일을 국가적인 휴식일로 하며 이날 전국의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들에서는 국기를 게양한다.




7. 김일성 주석의 친필에 깃든 사연

《박장반》

평양시 교외의 어느 한 농촌마을에는 김일성 주석이 어제날 머슴군으로 지지리 천대받던 농민에게 손수 문패까지 써준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 있어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고 있다.

해방된 이듬해 봄 어느날 이 곳을 찾은 김일성 주석은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기서 제일 고생한 분이 누구인가고 물었다.

부모를 잃고 반생을 지주집 머슴으로 잔뼈를 굳혀온 농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일성 주석이 수십 칸짜리 지주집을 몽땅 그분에게 드리자고 하였다. 그러고는 문패에 손수 그의 이름을 한자한자 썼다.

원래 문패는 집주인의 이름을 쓰는 표식으로 지난날 빈곤한 농민들의 오막살이와는 인연이 없는 것이었다.

김일성 주석의 높은 뜻이 새겨진 그날의 문패는 조국인민 모두가 이 땅의 주인, 나라의 당당한 주인임을 다시금 밝혀주는 사랑의 증표, 영원히 잃을 수 없는 주인의 권리를 새겨주는 존엄의 상징인 것이다.

《옥류교》

 

1950년대 말 어느날 동평양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던 김일성 주석이 나루배가 움직이지 못하여 대동강 웃쪽 사람들이 불편하게 대동교로 에돌아 출근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인민들의 교통문제를 염려하여 대동강에 새로 다리를 놓도록 한 김일성 주석은 참말로 이곳을 흐르는 대동강물은 글자 그대로 옥류라고 하며 예로부터 인민들이 즐겨부르는 옥류라는 이름을 따서 옥류를 건느는 이 다리를 《옥류교》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몸소 그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일꾼들은 김일성 주석이 온 나라 인민의 마음을 담아 다리의 현판을 써주실 것을 간절히 말씀올리었다.

김일성 주석은 인민들의 절절한 마음을 헤아리어 현지지도의 바쁜 속에서도 손수 다리의 현판을 써주었다.

저는 이런 옥필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이 글은 대인이 쓴 글이올시다.”

이것이 그때 서예에 깊은 조예가 있다는 한 노인의 말이다.

진정 이민위천의 숭고한 뜻으로 인민을 위한 또 하나의 재부-옥류교를 마련해준 김일성 주석의 사랑이 오늘도 뜨겁게 실려와 대동강의 물소리도 그처럼 유정한 것 아닌가.

《김형직사범대학》

 

1994년이 다 저물어가던 12월 어느날 김형직사범대학에서는 대학현판제막식이 진행되었다.

《김형직사범대학》, 김일성 주석의 활달한 필체를 바라보는 대학의 교직원, 학생들은 현판에 새겨진 가슴뜨거운 사연을 돌이켜보았다.

김형직사범대학의 교직원, 학생들의 간절한 소원을 헤아린 김일성 주석은 몸소 붓을 들고 이 불멸의 글발을 남기었다.

김일성 주석은 지원의 숭고한 뜻을 안고 후대교육사업에 헌신하신 김형직선생님을 그려보며 한자, 희망의 나래를 펴고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들로 준비해가는 청년대학생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담아 또 한자 썼다.

김일성 주석은 현판을 앞에 놓고 김형직선생님의 일생을 뜨겁게 추억하며 교육사업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김형직사범대학은 나라의 교육자들을 키우는 원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김형직사범대학에서는 후대들에 대한 교육사업을 더 잘하여 자라나는 새 세대들을 나라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키워야 하겠다고 뜨겁게 교시하였다.

오늘도 대학의 교직원, 학생들 모두가 뜨겁게 추억하는 그날은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기 며칠 전인 7월 5일이었다.


6. 천출명장 김일성: 미국을 슬프게 하다 (2)

3대승리철학으로 이기다

조선반도에서 총소리가 멎었다. 그러자 백악관과 펜타곤은 미국을 슬프게 한 전쟁의 책임을 두고 옥신각신하고있었다.이때 미국 《뉴욕 타임스》지에 실린 한 서방군사평론가의 론평이 워싱톤의 책략가들에게 훌륭한 《훈시》를 주었다.

《조선전쟁이 왜 실패하였는가. 월가의 상인들이 애초에 북조선을 우습게 여긴것부터가 돌이킬수 없는 오유였다. 그들이약자인가? 아니다. 전쟁행정이 보여주다싶이 그들은 무장장비는 렬세했어도 특이한 전략과 전술, 변화무쌍한 전법에 의거하여 싸우는 강자였다. 미국의 장군들만이라도 때늦게나마 상대한 군통수 김일성이 풍부한 경험을 갖춘 유격전의 능수라는 점에응당한 주목을 돌려야 했다.

매우 타당성있는 주장이였다고 생각한다.

김일성주석은 벌써 1930년대와 1940년대의 항일대전에서 천재적인 군사전략가로, 천출명장으로 명성을 떨친분이시였다.

주석께서는 아직 세상이 알지 못하는 전략과 전법, 뛰여난 령군술로 일본의 100만대군과 싸워 이기시였다.

기고만장의 독술에 취한 미국의 장성들이 이에 대하여 알수 없었다. 패전의 슬픈 눈물은 이 무지가 실어다준것이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선전쟁에서 탁월한 군사사상을 초석으로 하는 3대승리철학으로 제국주의대군을 굴복시키시였다.

그이께서는 무엇보다 조선식의 전략과 전법으로 이기는 승리철학으로 전승을 안아오시였다. 주석께서 창시하신 몇가지전략부터 보자.

기존병법에는 적의 불의의 침공을 맞받아나가는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씌여져있다.

인류전쟁사의 녹이 쓴 철문을 열어제끼면 다음의 사실이 첫눈에 띄운다.

2차 세계대전시 프랑스, 네데를란드, 벨지끄, 그리스, 유고슬라비아(당시)를 포함하여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히틀러군의 불의의 첫 침공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하여 몇주일 지어 며칠만에 점령이라는 치욕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선전쟁에서 기성의 군사공리를 따르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적들의 불의의 침공을 즉시적인 반공격으로 맞받아나가시였다. 미국이 조선전쟁을 확대하는데 필요한 큰 병력과 군사장비들을 끌어들이자면 한달이상 시일이 걸려야 한다는것을 통찰하시고 적의 대무력이 남조선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전전선에서 즉시적인 반공격전으로 넘어갈데 대한 명령을 주시였다. 이것은 참으로 령활무쌍한 전략이 아닐수 없다.

주석의 적후 제2전선전략도 어느 병법에서 옮겨놓은것이 아니였다.

병술에는 제2전선을 보조적인 전선으로 설명하고있었다. 1812년의 로프전쟁사의 갈피를 번져보아도 로씨야에서 기병이나농민으로 조직된 적후전선이 형성되여 전쟁수행에서 보충적인 역할을 하였다. 주석께서는 조성된 군사정세와 산악이 많은조선의 조건을 고려하시고 최고사령부의 통일적인 지휘밑에 정규군련합부대들로 적후에 강력한 제2전선을 형성하도록하시였다. 이 전략 또한 비범한것이였다.

적극적인 방어전략 역시 전례를 따른것이 아니였다.

전쟁사의 페지들에는 방어전은 은페호와 참호, 교통호, 공병장애물에 의한 싸움으로 씌여져있다. 적의 공격에 쉽게 무너진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보아도 총길이 380㎞의 방어선상에 5 000여개의 영구화력시설물들로 이루어진 《완성된 방어진지의 표본》으로 알려져있었다. 주석의 전략은 이와 다르시였다. 그이께서는 현대전쟁의 특성을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산이 많은조선의 지형에 맞게 갱도를 기본으로 하는 요새화된 방어진지를 굴설하고 적을 칠데 대한 적극적인 진지방어전략을 세우시였다.이것 역시 독창적인 전략이다.

이번에는 주석께서 창조하신 많은 전법중 몇가지에 서술의 키를 옮겨보겠다.

세 전투의 승리에 대해서만 주목해보자.

첫번째는 조선해군의 어뢰정 네척이 미국의 중순양함 《볼티모》호함선집단을 기습하여 단 세발의 어뢰로 이 함을 침몰시킨 승리이고 두번째는 하루사이에 조선의 프로펠러식비행기 2대가 미전략폭격기 《B29》들과의 싸움에서 《공중요새》를 2대나 격추한 승리이다.

세번째는 조선인민군 용사들이 쫓겨가는 적들이 《림시수도》로 정해놓고 미24보병사단무력을 진입시켜 방어하고있던 대전을 하루밤사이에 완전히 포위하고 적들을 섬멸한 승리였다.

세 전투승리의 군사적크기는 서로 다르지만 그 승리의 요인은 하나, 김일성주석의 기묘한 전법의 승리라는것이다.

바다에서의 승리부터 보자.

주석께서는 적의 함선집단에 대한 공격은 대규모타격무력의 협동공격으로만 가능하다고 하는 지난 시기의 군사교범을초월하시였다. 밤이면 적함선집단이 부두나 연해에 정박하고있다는것을 파악하시고 깊은 밤에 접근전, 기습전으로 적함선집단을 타격할데 대한 명안을 내놓으시였던것이다. 이 명안이 《바다의 움직이는 섬》을 수장시켰다.

하늘에서의 승리도 그렇다.

2차 세계대전시기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공중전들은 프로펠러식비행기들간의 공중전이였다. 조선전쟁시기 분사식비행기의 대대적인 출현은 새로운 공중전법을 기다렸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이에 대하여서도 명쾌한 해답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분사식비행기가 속도가 빠른 반면에 선회반경이크다는 약점을 통찰하시고 그것을 리용하여 선회반경이 작은 프로펠러식비행기로 분사식비행기를 떨구는 새로운 전법들을쓰시였던것이다. 이 전법들이 《공중요새》들을 태평양건너의 제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땅우에서의 승리도 마찬가지로 분석된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병서들에는 포위전법은 정면에서 공격하는 부대들과 량익측에서 타격하는 부대들이 일정한 종심에서합치는 방법으로 실현하는것이라고 서술하고있었다.

그러나 주석께서는 기존병법에 구애되지 않으시고 령활무쌍한 우회전법으로 야간에 미24보병사단을 불의에 신속히 완전포위하고 소멸할데 대한 전법을 쓰시였다. 이 전법이 《상승사단》의 운명을 괴멸로 결정지었던것이다.

이처럼 조선은 자기식의 전략과 전법으로 이기는 승리철학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다른 하나의 승리철학을 서술할 차례이다.

국제협약들에는 전장에서는 적의 병력과 군사시설물만 공격대상으로 되여야 한다고 밝혀져있다. 그러나 제국들에 있어서는 민간인의 희생과 창조물에 대한 파괴가 문제로도 되지 않았다. 그때문에 세상사람들이 깊이 잠든 4, 4시에 히틀러가쏘련을 침공했다. 바로 미국도 이 4시에 조선침략의 첫 총소리를 냈던것이다. 그것은 인간증오의 4, 인간멸살의 4시였다.

그렇다면 조선의 경우는 어떠하였는가.

김일성주석께서는 서울해방을 위한 총공격시간을 5시로 할것을 명령하시였다. (대전해방을 위한 총공격시간도 5시로 할것을 명령하심.) 그이께서는 적들이 서울에 집중되여있는 조건에서 밤에 전투를 하게 되면 인민들의 생명재산에 피해를 끼칠수 있고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파괴될수 있다고 하시면서 서울해방을 위한 공격을 날이 밝은 시간으로 정해주시였던것이다.

어두운 4시와 밝은 5시는 단순히 60분이라는 시간상차이만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본다.

인간증오의 4시와 인간사랑의 5시이다.

제국들의 침략전쟁, 정복전쟁에 있어서는 천년이 가도 그 4시가 5시로 될수 없다는것이 나의 주장이다.

나는 두 수자를 생각하며 조선전쟁 첫 기슭에서부터 미국이라는 전쟁마차는 인간증오라는 부정의로 하여 패전의 길로굴러갔으며 조선이라는 수호의 기관차는 인간사랑이라는 정의로 하여 전승의 궤도를 달렸다고 확신하게 되였다.

사랑의 5시가 증오의 4시를 이기고있었다.

김일성주석의 사랑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적비행기 3대를 쏴떨군 17살의 한 인민군전사가 부모형제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아시게 된 그이께서는 적구에 있는 그의고향마을에 친히 한개 련대를 보내여 영웅의 부모와 다섯동생을 구출해오도록 하시였다 한다. 이 구출소식은 온 나라를 눈물로 적시게 하였다고 당시 조선언론들은 대서특필하였다는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날 그토록 사랑하시고 믿어오시던 가장 가까운 전우인 김책 내각부수상 겸 산업상이 뜻하지않게 서거하였다는 비보에 접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비통함을 금치 못하시며 떠나간 그를 위해 하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가렬한 전쟁시기라는것을 고려하시여 전우의 령구를 극비밀리에 지방의 어느 한 굴간에 잘 안치하도록 하시고몇년동안 특별위수구역으로 엄격히 봉쇄하도록 하시였다 한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가 확정되였을 때에야 굴속에 안치하였던전우의 령구를 평양에 옮겨오도록 하시였다 한다.

이 이야기들은 사랑과 정을 보석처럼 안고사는 이 녀성필자의 마음도 격정으로 젖게 한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차디찬 병영생활속에, 전쟁의 폭풍속에 사랑과 정이 파묻혔던 세계군력사, 전쟁사에 종지부를 찍으시였던것이다. 그이는 사랑과 정의 열쇠로 병사들의 심장의 문을 열고 인민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신 천출명장이시였다.

무기는 누구나 가질수 있다. 하지만 명장의 사랑과 인민의 보답으로 이루어지는 단결의 성새는 그 어느 나라나 가질수 없다. 조선만이 가진 성새였다.

조선은 또 하나의 승리철학, 사랑과 정으로 이기는 승리철학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또 다른 하나의 승리철학을 론해보자. 세번째 승리철학이다.

조선방문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참관하면서 알게 된 한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그의 이름은 리수복이였고 나이는 18살이였다. 무명고지탈환전투에서 그는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은 육탄영웅이였다.

그가 화염속에서 썼다는 시구들을 잊을수 없다.

《…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이지만

나의 청춘을 바치는것처럼

그렇게 고귀한 생명,

아름다운 희망,

위대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고리끼문학대학에서 배운바에 의하면 시는 인간의 사상감정의 분출이라고 하였다. 영웅의 심장에서 뿜어져나온 그 애국정신이불줄기가 쏟아져나오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게 하였다. 영웅의 그 숭고한 정신세계가 나의 가슴을 친다.

한 육탄영웅과 그를 취재한 종군기자에 대한 이야기도 떠오른다. 적의 중기화점을 가슴으로 막고 진격로를 연 영웅은 가슴에 11발의 총탄을 맞고 살아남은 영웅이였다.

이때껏 전쟁사에 이런 육탄영웅은 없었다고 본다.

그런데 눈과 얼굴에 중상을 입고 온통 붕대를 감고있는 한 종군기자가 이 육탄영웅에 대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였다 한다. 종군기자는 전혀 볼수 없는 형편이였지만, 또 담가에 실린 몸이였지만 끝내 영웅을 취재하여 세상에 전하였다.

쏘도전쟁때도 쏘련의 많은 기자들이 종군활동을 하였다. 일리야 에렌부르그가 종군하며 쓴 글을 보고 그의 《글마디들의신랄성은 까츄샤의 일제사격과 같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조선기자의 위훈을 어떻게 격찬하여야 할것인가.

중상당한 기자가 눈과 얼굴을 온통 붕대로 감은채 불사신의 영웅을 취재하여 병사들과 인민들을 크게 고무한것도 싸우는조선의 기상이고 기적이 아니겠는가.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굴하지 않은 섬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극동군사령관 맥아더는 세계를 향해 《크로마이트 100B계획》이라는 암호를 가진 인천상륙작전을 기어코 성사시킬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 작전수행을 위해서는 0. 66㎢밖에 안되는 조선의 작고도 작은 섬인 월미도를 점령하여야 하였다.

싸움은 1개의 해안포병중대와 1개의 보병중대로 이루어진 조선인민군과 5만여명의 병력과 수백척의 함선, 1, 000여대의비행기를 가진 미군과의 격전이였다. 조선의 위급지휘관과 미국의 5성장군과의 대결이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언론들은 작은 섬은 불바다에 잠기고 바위들이 부서져 가루가 되였으며 바다가 끓고 태양도 검은 화염속에서 보이지않았다, 그러나 조선인민군 해군용사들의 필사전으로 하여 미군의 월미도점령기도는 3일간이나 좌절되였다고 전했다.

세계가 이 좌절에서 본것은 무엇이였는가.

미국의 《무기만능론》의 패배와 조선의 사상정신만능론의 승리를 보았다.

미국도서 《맥아더의 수수께끼》의 저자가 조선전쟁의 실상을 랭철하게 들여다보았다면 패전의 책임을 지고 52년간의군인생활의 종말을 긋게 된 맥아더의 비극의 대답, 조선전쟁에서의 미국의 패전의 대답을 이 작은 섬의 영웅정신에서도 찾을수 있었을것이다.

조선은 또 하나의 승리철학, 사상정신력으로 대적을 이기는 승리철학을 세계에 보여주었던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의 주되는 력점은 무엇인가.

단언컨대 독창적인 전략과 전법으로 이기는 철학과 숭고한 사랑과 정으로 이기는 철학, 불굴의 사상정신력으로 이기는 철학, 3대승리철학이 조선으로 하여금 미국을 이기는 군사적기적을 가져오게 하였다는것이다.

3대승리철학은 동방조선만이 가지고있는 보검이며 백승을 담보하는 특허무기이다.

오늘 세계는 조선전승의 계승을 현실로 보고있다.

1950년대 총포성속의 전쟁에서 3대승리철학으로 대적과 싸워 이기신 김일성주석처럼, 60년간의 총포성없는 전쟁에서선군정치로 대적을 무릎꿇게 하신 김정일령도자처럼 김정은원수께서는 이 시각에도 탁월한 선군령도로 조선의 사회주의수호전을최후승리에로 이끄신다.

장기간의 조미대결사는 세계에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된타격을 받고 녹아난것이 미국의 수치스러운 전통이고 횡포한 미국의 도전을 걸음마다 통쾌하게 짓부셔버리기만 한것이조선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라는것을 웅변으로 보여주고있다. 이 두 전통은 결코 달리될수 없는 력사의 필연이며 법칙이다.이 전통들의 최후의 재현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있다.

미국이 끝끝내 조선땅에서 또다시 총포성을 울린다면 조선의 무서운 타격앞에 1950년대 전쟁때보다 더 비통하고 쓰라린마지막패전의 슬픔을 맛보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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